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man May 28. 2024

에코, 찔러 보기

MCU의 누아르를 맡아보려 하다

이 드라마 시리즈는 사실 한참 전에 봤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글감으로 작동하지를 않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제대로 흥행하지 못했고, 내가 보지도 않았던 "호크 아이" 시리즈에서도 연기한 "알라콰 콕스"의 장애를 극복한 연기가 아쉽게도 영화적 재미와 제대로 연결되지 못한 것 같다.

(출처: Inside The Magic)

"미즈 마블"이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인도의 역사를 조명했듯이 이 영화는 "인디언" "촉토족"의 역사를 조명했다. 최근의 "What If... 시즌 2"에서 등장했던 부족을 다시 이곳에서 등장시킨 것이다.


극 중 메인 빌런인 "킹핀"으로 인해서 "데어데블"과 교차를 이루면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애니메이션과도 연결된다. "호크 아이"의 외전이기도 하며, "영 어벤저스"를 구성하는 "미즈 마블"과 "케이트 비숍(호크 아이의 딸)", "캐시 랭(앤트맨의 딸)"과도 이어지는 촘촘한 연결을 갖고 있다.

(출처: Medium)

그러나 이 작품이 만들어질 무렵에 제기된 너무 많은 작품 간의 중첩되고 축적된 스토리로 인해 새로운 시청자나 관객이 들어오기가 힘들어진 "MCU 월드 진입 장벽"이 지적당하면서 "마블 스포트라이트" 프로그램으로 다른 스토리의 인물과의 연결을 최소화하면서 "에코"란 인물의 서사에 집중했다.


굉장히 공을 들인 작품이라는 인상을 깊이 받았고, 청각 장애인으로서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지닌 "인디언 여성"이 빌런과 히로인을 오가는 주인공으로 등장함으로써 미국 내에서 천대받고 차별받는 "인디언"에 대한 조명을 하고 있어서 캐릭터를 살리는 취지에도 동감할만하다.


잘려나간 정강이 아래에 보조 장치를 끼우고, 실제의 쉽지 않은 액션을 계속 소화한 여배우 "알라콰 콕스"의 명연은 "미즈 마블"의 "이만 벨라니"와 일면 비교될만한 급에 이를 만도 했지만, "청각 장애"와 "절단 장애"를 극복하고 펼치는 안쓰러움을 뛰어넘는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출처: Polygon)

차별을 넘어선 모두가 평등하게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세계를 그 방향으로 끌어가고자 하는 EU를 포함한 서방 선진국의 "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들"에 일부 항목에 충실하게 부합되는 훌륭한 노력이다.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을 그것만으로 사랑하고 인정하고 존경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보다 의미 있는 것을 세상을 향해 내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모범생이 가진 가치를 인정한다.


치밀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한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내고, 흥행시키고자 하는 오랜 시간 동안 검증된 시스템에 머문 상태로 20여 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흥행을 올리던 MCU와 이를 포함한 디즈니가 이전의 매력을 계속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져 가는 데에는 관성에 빠져버린 매너리즘이 떠오르게 된다.


거의 모든 새로운 작품에 들어간 정치적 올바름에 입각한 "강박관념"은 인종과 성별, 장애 등에 의한 차별을 벗어나기 위한 영화 속의 배역 설정이 되어 이제 작품의 완전성을 올리는 노력을 반감시키더라도 무조건 추구해야만 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보이기까지 한다.


재미와 감동을 주지 못하는 작품이 되어버린다면 그 내용 속에 아무리 올바른 상징과 비주얼, 스토리, 설정을 넣는다고 해도 기대하는 만큼의 효과를 만들어내기보단 역효과를 만들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영화 속의 주인공인 "에코"가 보다 행복한 삶을 향해 나갈 수 있게 된다는 출구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처럼 설정이 되고, 장애로 인한 어두움과 빌런인 "킹핀"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스토리가 제대로 된 결말로 가지 않았다는 미진함을 낳는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촌스러운 스토리 설정이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킹핀"이 그저 전형적인 악당으로서 "에코"에게 사랑과 연민, 가족애를 어필하고자 하는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고, 제대로 서로 증오와 분노에 빠져서 싸우면서 치명타를 입힐 수밖에 없는 관계로 그려졌다면 좋았었을 듯했다.


극 중 빌런인 "킹핀"이 선과 악, 애정의 욕구와 탐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술에 물탄 듯한 인물을 연기하게 되다 보니 색다른 복잡성을 가진 빌런을 봤다는 느낌보단 이도저도 아닌 빌런 캐릭터에게 극 중 인물이 왜 당하고 있는 것일까 싶은 의구심이 고개를 쳐든다.

( 출처: GQ)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보다 강력한 의식이 작품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악당은 인종 차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여자나 장애인이라고 해서 그 약점을 공략하지도 않고, 두루뭉술수리한 악행과 더불어 늘어지는 느낌으로 서로 투쟁을 한다.


후반부에서 "킹핀"이 나타난 이후에 갑자기 맥이 빠져버리면서 모든 긴장이 새어나가는 느낌은 마치 극의 영혼이 밖으로 빨려나가서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 작품에 대해서만큼은 선입견을 누르고서라도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어떤 작품에서도 유익함을 건져낼 수 있다는 바람이 견고한 벽을 만난 작품 같았다.


그럴듯한 누아르의 느낌과 조상 대대로 연결되어 있다는 "촉토족"의 여성 전사의 영혼의 연결성 같은 내용은 만들어진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균형 잡히고 나름 임팩트 있는 스토리처럼 보인다.

(출처: Nerdist)

그러나 문제는 그런 스토리를 보면서 마음속에 어떤 울림이 생기거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코"라는 인물이 어떤 방식으로 성장해 나가고 마음속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고 더 나은 존재로서 각성한 뒤에 정의를 수호하는 전사로 변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작품에서 혹 그가 등장한다고 해도 자신의 독립 시리즈 안에서 서사를 제대로 어필하지 못한 것은 다른 캐릭터와의 시너지를 내지 못하게 될 것 같다.


그저 액션을 보여주고 "킹핀"과의 색다른 갈등의 모습, "촉톡족 인디언의 신비감"을 나열하고 종합한 것만으로는 인물에 매력을 불어넣어 주기에 모자람이 많았다. 다른 인물이 주인공을 지지하고 끌어올리는 상승 작용도 부족함이 엿보인다.


흥행 전략보다 도덕적 우위와 차별을 벗어난 인류의 시대를 앞당겨보겠다는 강박관념이 이 작품의 흥행을 떨어뜨리고 매력을 억제한 일등 공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흥행 작품이 될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업 장르인 "히어로물"이라면 재미와 감동을 먼저 갖추고 나서 그다음에 차별의 제거를 부수적으로 끼워넣던지 아니면 시청자와 관객으로 하여금 그 가치를 추구하는 자신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느끼도록 스토릴 만들어야 한다.


무엇이 선행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린다면 우린 매번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봐야만 했던 "대한 늬우쓰"와 "공익광고"를 보고 나서 받았던 느낌을 본편에 연결해서 봐야만 하는 학생이 된 듯한 느낌에 빠지게 될 수 있다. 계몽과 계도의 대상이 된다는 느낌을 강조하는 것은 흥행의 패착이 된다.


물론, 내가 쓰는 작품에서도 강박관념과 편집증에 가까운 것처럼 이해될만한 다소 재미와는 멀어져 있는 문장이 쓰일 경우가 있다. 창작가가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는 법은 이 단점을 제대로 보고, 자신의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다.


 

이전 29화 분노의 질주:도쿄 드리프트, 찔러 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