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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un 02. 2024

연쇄 실연 17범의 고백 9-1

30분 내의 선택

(그림 출처: Co-pilot, Dall.E3)


9-1 30분 내의 선택


[마스터가 완전히 소멸되었어요, 아버지. 코발트에게 숨통이 끊겼다고 확인해 주세요]


한참 동안 반응이 없었다. 뭔가 두 사람이 작업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하면서 "LOSER17"은 임무를 마친 후의 정적 속에서 조금씩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여기까지 이른 궤적을 떠올려봤다.


무의식과 의식을 오가면서 양쪽에서 뚜렷한 의지를 가지고 언어를 전달하는 것은 그저 상상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몸으로 체득하기 위한 훈련은 고되었다.


이른바 "기계론적 세계관"을 가정한 상태에서 정신과 몸을 이분화하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처럼 이야기한 것이 상식처럼 지배한 시대에는 쉽게 생각할만하다.


하지만 의식은 "몸"이 먼저 있고 이 "몸"의 활동에 따라서 그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내게 몸이 있어 존재하고 그럼으로써 생각한다"가 맞다. 수백 년 전에 밝혀졌지만 상식이 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건 "합리적 이성주의의 거두"로 불리는 스타들이 많았던 시대에 책을 읽는 이가 더 많았고, 지식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모험을 하는 이가 대중으로 저변을 넓혀간 이후에야 “몸”이 생명체가 자의식을 갖게 만든 세트를 구성하고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도구를 사용하기 위한 지식을 가짐으로써 돈이 되고 먹고살게 해 주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나 유희로서의 장식품, 이른바 "뇌섹"이라는 매력을 풍기기 위한 부가물로써의 지식의 기능이 더 중요시되면서 짜증이 날 정도로 진실을 파고들고 분석하고 통찰을 이끌어 내는 과정은 희미해져 갔다.


그러다 보니 꼭 "한국"이랄 것도 없지만 미국이 되었든 영국이 되었든 그 외 그 어떤 유럽이 되었든 간에 충실히 자본주의적으로 발달하고 초첨단의 기술로 집적된 국가의 국민은 지식과 멀어졌다.


물론, "인공지능"에 대한 기술과 지식은 중요한 것으로 각광받았으므로 종사자 수는 지구 전체 인구의 20% 가까이 되었다.


이전의 시대에는 개발종사자가 많았다고 한다면 이후의 시대에는 "인공지능"의 유지보수에 관련된 인력과 "인공지능" 맞춤형 가공 서비스 종사자의 수가 더 늘어났다.


다룰 기계의 성능이라고 할 것은 끝도 없이 더 첨단화되고 효율화되었지만 사용자인 인간의 능력은 점차적으로 더 쇠퇴했고 판단력도 더 떨어졌다.


각국에서 "자국중심주의"의 깃발아래 "전체주의적 가치를 드높이며 자기중심적인 이익을 위해 살자"라고 외치는 이기주의자가 지도자가 되었다. 노골적으로 "이기주의자"임을 강조해도 뽑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최소한 "자국중심주의"나 "이기주의"는 그것을 위해 부려먹어야 할 자국민의 숫자가 더 늘어나야 한다는 것만큼은 잊지 않았는데, 한국은 달랐던 것이다.


국민이 소멸하든 말든 상관없이 자기만 잘 먹고 잘살자가 너무 강력한 "지도자"가 선출되었고, 그나마 시도해 봐야 되지도 않던 "저출산 방지 정책"마저 그 "지도자"가 유명무실화시켰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우선 해야 할 일은 사실 전 국민에 대한 설문 조사나 문제의 원인에 대한 방대한 연구와 사회문화적이고도 정성적인 분석까지 총망라한 정책 수립이어야 했다.


그런 작업을 하기보다 선거 시에 중요 쟁점 등으로 등장하면 그제야 깜짝쇼처럼 대책을 세우라는 지시에 맞춰 쓸데없는 단기적 처방과 액션이 이뤄졌다. 예산 낭비와 시간, 인력의 낭비만 있는.


"마스터"는 "프로메테우스"의 "프레마치온"과 "핸들러"의 "메인프레임"이 밀약을 통해서 만들어서 납품된 일종의 징검다리 같은 "인공초지능"이었다.


예상대로의 실정을 했지만 그래도 그전의 정치꾼 지도자보다는 더 국민을 아끼고 더 많은 이의 생명을 소중히 여겼고, 한국의 미래를 위해 일했다.


그런 존재를 돈 몇 푼 벌고,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를 진행하고, 이 나라가 망하든 말든 한몫 잡아 나라를 뜨겠다는 생각을 하고 소멸시키는 일을 막힘 없이 수행해 낸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렇지만 "애국심"같은 것이 사라져 버린 이 시대. 오로지 자본을 어떻게 획득해서 편안한 삶을 살아갈 울타리를 만들어 가야 하는가가 중심인 시대에 명분 같은 것을 따지는 것은 시대착오적이었다.


'이 시대에 맞는 결론은 이거야. '마스터', 너에게 주어진 명령 그 자체부터가 사실 그런 게 하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이가 그저 국가적 명분에 따라 입력했던 것에 불과했어,


그마저도 '메인프레임'과 '프레마치온'의 결탁이 빗어낸 사기였을 뿐이고. 거기에 더해서 그들조차 뒤통수치고 있는 게 나와 나의 아버지인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하루 반나절이 흘러갔고. "마스터"의 통제가 사라진 교도소에서 간수들과 죄수들은 일상적인 루틴을 진행했다. 아직 “마스터”의 소멸을 모르는 거다.


아버지는 한참 후에야 다시 연락을 시도해 왔다. 이제는 무의식 경계의 채널이 아닌 "의식의 채널"이었다. "마스터"가 없으므로 이 채널로 이야기하는데 문제가 전혀 없다.


'잘했어. 나는 단 한 번도 네가 이것을 잘못해 내리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어. 이제 '마스터'가 사라졌으니 뇌신경에 피로감을 잔뜩 안기는 무의식의 선상에서 이야기하기 기능은 끄고 의식채널을 쓰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의식 채널"로 들려왔을 때, "LOSER17"은 "마스터"가 자신의 의식 속 목소리인 것처럼 위장했던 음색과 아버지의 의식 목소리가 일치하고 있음을 알았다.


'아버지. 원래 '마스터'가 자신의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국회 의사당에서 발표하려고 한 시간이 앞으로 30분 뒤인 오후 2시예요.


"휴머노이드" 한 대에 "마스터"의 "의식화"된 메모리가 탑재된 상태로 가서 정책을 발표하면 되는 거였거든요'


''메인프레임'에게 알려주면 그나 다른 핸들러가 '마스터'의 '누전 및 화재 사고로 인한 소멸'을 발표하는 것으로 그 자리가 바뀔 예정이기도 했었지'


'아버지, 잘 아실 거예요. 제가 아버지에게 크게 바라왔던 게 없었던 거요'


'여기서 그 말이 왜 갑자기 나오냐. 너 혹시 뭔가 마음이 바뀌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뭔가 불안함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LOSER17"은 자유의지를 억누르고 자신이 시키는 대로의 일을 하게끔 태어나서부터 훈련시켜 온 존재다.


그가 그 굴레를 벗어나서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불안한 마음이 따라오게 된다. 부탁이라고 해봐야, "다 떨어진 신발을 바꿔주세요", "브레이킹 셸을 사서 깔게 해 주세요" 등이었다.


그의 훈육방향은 최대한 경제적인 지원 요청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비용이 들어가면 무조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거절해 왔다. 이번엔 그런 내용이 아닐 공산이 커서 그게 불안요소였다.


'네, 바뀌었어요'


'이제 모든 게 다 정리되고 입금을 받을 상황에서 뭘 바꾸자는 거야?'


'아버지, '마스터'를 만들고자 했을 때, 그 모델로 선택되었던 것이 아버지란 이야기를 계속해주셨잖아요"


'그래 그랬지. '메인프레임'이 그걸 내 것이 아닌 지 졸개 것인 것처럼 "인공지능"에게 제공했단 이야기까지 했고'


'그런데 제가 '마스터'로부터 취조 아닌 취조를 당했을 때, 그 의식의 목소리나 생각하는 논리는 그저 아버지 그 자체였었어요'


'재미있군. 대대손손 이 내용을 가문의 영예처럼 알리라고. 이거야말로 벼슬 중에 벼슬이구만'


'30분 뒤에 있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 대국민 발표'에 아버지가 "마스터"인 것처럼 연결되어서 회견을 해주었으면 해요'


'아들아, 여기서 우리가 감상적인 상태가 되면 안 돼'


'아니요. 감상적이라니요. 굉장히 이성적인 전술을 수립한 건데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겼다'라는 내용은 혹시 잘 모르시나요?'

(그림 출처: Co-Pilot, Dall.E3)


'네 얘기는 내가 마스터 행세를 해서 우리가 얻을 게 있다는 거겠지?'


'네, 정확해요'


'그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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