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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Nov 14. 2015

<I am Bruce  Lee>-자기 자신되기

고유의 존재로 남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왠지 지금의 시대에도 맞는 모습 아니니?
영화 속 다른 배우들과 확실히 구분되잖아"


어느 날 나도 모르게

"I am Bruce Lee"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정말 "그 이유를 보는 동안

알 수 없었다"


"도"의 개념을 인용하며, "물은 흐르거나 (어떤 형태 안에도 그대로 담기거나) 충돌하거나 하지. 물이 되어야 해. 나의 친구여"


왜일까? 왜 갑자기

이 다큐멘터리를

열심히 보게 되었을까?


가만히 살펴보니, "엽문 1편"에 대한

감상문을 적었던 적이 있었고

그 글에서 남성들의 "마초" 본능을

사로잡은 배우였다는 말을 남긴 적은 있다.


한 발자국 더 기억을 더듬자면,

두 번째 직장에서 형 동생 하던

직장 선배가 부르스 리의 광팬이었다.


그 형의 집에서 평생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부르스 리의 작품들을

2000년도 초반에 서너 편 이상

연달아 보았던 적은 있다.


부르스 리가 나올 때마다 그 형은

"왠지 지금의 시대에도 맞는 모습 아니니?

영화 속 다른 배우들과 확실히 구분되잖아"

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었다.


그가 나온 영화를 보면 정말로

그러하다.


다른 배우들은 모두 그 시대에 맞는

외양과 연기를 하고 있지만

그만은 지금 당장 영화를 찍어도

생생한 인기 배우가 될 것 같은

연기와 액션, 카리스마를 느끼게 만든다.

내일 당장 그의 영화가 개봉되어도 히트작이 될 것이다.

왜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


좀 더 더듬이를 앞으로 내밀어보면

내가 글을 쓰는 주제도 영향력이 있다.

"나"나 여러분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남이 바라는 존재로서만의

자기 자신이 아니라, 의당 자신이

되어야 하는 그런 "자신".


실제로 역사에 남지는 않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부르스 리는 영화배우이기 이전에

일단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한

사람이었고, 고유의 존재로 남았다.

영화 화면을 벗어나서 그러한 존재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가

무척 궁금했던 것이다.



"이소룡은 종합격투기(MMA)
의 창시자"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 중 하나는 이소룡이

독일계 중국인이었다는 것이다.


외모 자체가 선이 뚜렷한 인물이

되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그가

고유의 존재인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모자라다.


그다음에 알게 된 것은

그는 무술이라는 것이 형식 속에

갇혀 있어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을

깊이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물처럼, 현실에서 바로

그 싸움의 현장에 적합하게

담길 수 있는 효과적이고 강력한

무술을 익히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강한 힘을 동작으로 표현해낼 수 있어야만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가 "당산대형"으로부터 보여준

영화 속 액션의 혁신적인 변화는

무술 자체에 대한 그의 해석의

파격성이 만들어 낸 것이다.


영춘권을 엽문으로부터 배웠지만

자신의 파격적인 해석에 걸맞은

무술을 스스로 창안하였다.


복싱과 킥복싱까지 결합된

"절권도"는 무술의 역사를

넓고도 깊게 파고들어가고,

동서양 철학의 내용들을

녹여서 만들어 낸 것이었다.


오로지 영화 그 자체, 또는,

연기에만 몰입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이 바로 그의

무술 액션이다.


요즘은 범용화 된 개념이긴

하지만, 무술에 대한 융복합 개념을

만들어 내고 이를 실제로 새로운

무술을 만들어  내는 데 사용했다.


그의 영화보다도 더 생명력이 길게

내려오고 있는 것은 케이블 TV의

영향력 있는 채널을 구성하고 있는

종합 격투기(MMA: Mixed Martial Arts)다.


그를 추종했던 추종하지

않았건 인터뷰에 참여한 무술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소룡은

MMA의 창시자"라는 것이다.


그는 요절함으로써 전설로 남았지만

불운의 연속 인양, 요절한 그의 아들

"브랜든 리"는 안타깝게도 전설이

되지는 못했다.


압도적인 이소룡의 존재감은 그의

내적인 역량과 독창성, 새로운 역사를

창출한 실행력에 있다.


치밀한 마케팅에 의해서 만들어지거나

흥행 배우가 되기 위한 조건들에만

의지해서 성공한 배우가 아니다.


그의 또다른 메세지는 "자기자신을 탐색하라"는 것이다. 물이 되고, 또한 자기자신이 되라는 이야기같다.



이견이 많을 비교이겠지만
이렇게 보면 위대하기 그지 없다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 부르지만

모차르트는 음악의 아버지라기 보다는

신동 또는 천재라고 부른다.


바흐는 만든 작품 중에 실제로는

훌륭하지 못하다고 여길만한 작품이

한 반수 가량된다고 한다. 반면에

모짜르는 짧은 인생 동안 만든 대부분의

작품들이 일정 이상의 수준을 갖고 있다.


(실제로 바흐가 만든 초기 작품이나

지역에 흩어져 있는 음악들을 흉내 낸

곡을 찾아서 들어보면, 그 수준이 기대하는

것보다는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바흐는 그의 시대 이전부터

그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지방

토속음악들을 수집하고 각각의

음악들을 모방해서 비슷한 작품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수많은 시도를

끈질기게 해왔다.


그럼으로써, 현재 클래식 음악이

왜 위대한가를 납득시킬 만큼

완전한 음악을 마치 창시자로

불릴 수 있을 만한 수준으로

창조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무술, 격투기라는 영역에서

이소룡은 바흐 같은 역할을 하고자

하는 야심을 갖고 실제로 꾸준히

이를 실행했고, 요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차르트처럼

이를 수준 높은 지점까지 올려놓았다.


이견이 많을 비교이겠지만

이렇게 보면 위대하기 그지 없다.


어떻게 하면 "자기자신"이 되는가에
대한 훌륭한 일례가 될 수 있다


지금의 시대에는 인기 만점의 연예인이

되기는 가능할지라도, 이소룡의 시대처럼,

동시에 위대한 존재가 되기는 어렵다.


역량을 떠나서 수많은 관점 상에서

어느샌가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쉽게 곤두박질치고, 평가 내린 내용에

대한 생명력도 오래가기 어렵다.


하지만, 여러가지 측면에서

"자기자신"되기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와

어떻게 하면 "자기자신"이 되는가에

대한 훌륭한 일례는 될 수 있다.


물론,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자기자신"을 주장하는데에만

"자기자신"되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남들과 똑같이

살아가라는 정보나 말에 대해서는

선별적으로나마 눈과 귀를 닫아야할

필요도 있다.


나는 당신의 기대에 맞춰 살기 위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당신도 나의 기대에 맞춰 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덕분에 오늘날의 액션 영화가

훨씬 생동감 강한 액션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고 격투기의 진정성이 시청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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