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물한 번째 연습>-캐럴송, 기존곡 연습, 점심 모임

새로운 캐럴송을 연습하고, 성가곡은 아뿔싸, 베/소/집/테 점심 모임

by Roman

빠듯하게 보낸 토요일이었다. 업무가 있는 날이든 없는 날이든 빈둥빈둥 보내고 있는 토요일이란 없다. 정해진 오전 합창단 연습, 집복귀 후 아이와 피시방, 돌아와서 다시 농구 연습장으로 이동 훈련.


어느새 하루는 다 가 있고, 이렇게 오전 중에 벌어진 합창단 연습 내용을 복기하기 위해 스크린을 킬 때쯤이면 에너지는 거의 탕진된 상황이다. 글을 쉽게 적으려고 녹취앱을 사용하기도 해 봤다.


그런데, 압축하면 할수록 실제 벌어진 일에 대한 복기와는 뭔가 거리가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난, 이 합창단 참여기를 통해서 인간으로서 배우고 느끼고 흡수한 것을 그려내고자 하는데, 여기에 인공지능에 의지하면 글 자체는 말끔하게 써질진 몰라도 내가 배운 것, 몸으로 체화된 것은 사라진다.


아주 안 쓰진 않더라도 글 전체를 맡기진 않는 게 맞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다만, 먼저 쓴 것을 다시 요령 좋게 압축 요약하는 기능으로 인공지능은 시간과 노력 대비 결과물이 너무 훌륭하기 때문에 쓰지 않을 수는 없다.


오늘은 여느때보다 더 피곤한데 그것은 예기치 않은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번개 점심 회식이 있었고, 적지 않은 분이 나와주셔서 그간 서로 간의 이야기에 굶주린 분들이 점심을 먹는 것만큼이나 이야기를 즐겼기 때문에 모든 것이 완료되었을 즈음에는 오후 서너 시가 되어 있었다.


1. 번개 점심의 위력

갑자기 오늘 "보이즈"의 왕형님께서 연습 중간에 7기 중심으로 번개 점심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전체 단톡방에 올렸고, 식당은 내가 선정해야 했기에 연습만큼이나 심혈을 다해서 선정했으나 결과는 찾아간 곳이 너무 인기가 좋은 탓에 베이스와 소프라노, 집행부, 테너 12명이 우르르 몰려가서 앉을 상황이 되지 않았다. 예약도 불가할 정도로 맛집을 골랐던 것이 잘못이었다.


다만, "알잘딱깔센"이란 별명을 아무 이유 없이 붙였을 리가 없는 "베이스 파트장"님이 현장에서 가까운 다른 중국 음식점으로 안내했고 무사히 12명이나 되는 인원이 편안하게 모여서 적정한 가격의 가성비 좋은 색다른 맛의 중식을 먹고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런 모임이 새로 온 기수에게는 필요했다는 공감대가 생길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 와서 연습만 하고 냉정하게 서로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드라이한 과정에서 하나둘씩 떠나는 사람이 생겨도 그 이유를 알 수 없고, 말릴 수도 없으며,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마땅히 알아야 할 타 단원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가 되지 않았음을 잘 알 수 있었다.


모임을 최소화하고 정확히 합창 연습에만 몰입하는 정예의 합창단이 되는 것도 중요한 운영 방향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 각자 밥값 내고, 각자 커피값 내는 모임이라도 인간 간의 교류가 고픈 사람 간의 모임은 나름 생산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자리였다.


이미 또 다른 일정이 있었던 분들이 간 뒤에도 8명이 남아서 커피숍에서 오디션 때 무슨 곡을 불렀는지, 종교관이 어떠한지, 취미가 무엇이고 원래 노래 관련해서 했던 활동은 무엇이었는지 등등을 이야기하니 이야기가 끝도 없이 연결되고 즐겁기 그지없었다. 집에서 아이로부터 연락이 계속 오지 않았다면 아마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겠지만, "육아"를 위해 집으로 향했다.


2. 새로운 캐럴 3곡과 기존 2곡의 연습

오늘 연습은 사실 좀 긴장이 되는 것이었다. 왜냐면 12월 20일에 잡혀 있는 공연을 위해서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공연의 레퍼토리를 채우기 위해서 지휘자님이 선정한 새로운 캐럴 3곡을 연습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휘자님의 급한 사정으로 반주자님이 대신 교육을 진행했다.


이미 배운곡을 포함해서 전체합창과 남성중창, 여성중창 총 13곡을 앙코르곡까지 포함해서 준비해야 하는데, 기존에 연습했었음에도 빠지게 된 곡도 있었지만, 새롭게 연습해야 할 캐럴곡이 총 4곡이어서 전체 단톡방에선 "내일의 죠"의 '하얗게 태웠어' 이모티콘을 올리며 이게 멋지다고 생각한다는 표현을 했지만, 반어적인 표현에 가까웠고 나 역시 이 두 달 안에 이 강행군을 어찌 해낼지 막막했다.


그런데 반주자님이 음정과 박자 정도를 맞추는 수준에서 큰 기대와 압박과는 다른 방식의 수업을 진행한 것도 도움이 되었지만, 익히 알고 있는 멜로디와 분위기, 박자가 있는 곡들이어서 새로운 곡이었고, 다 영어 가사였지만 아주 힘들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고 오히려 용기가 나는 분위기였다.


반주자님이 나름 성공적으로 캐럴에 대한 연습을 마친 후에 "알토 파트장"님과 반주 가능한 단원분께서 기존에 배웠던 곡 2곡에 대한 추가 연습을 1시간가량 더 하면서 여기에 이의를 다는 단원은 없었다. 그만큼 연습이 시급하단 공감을 모두 갖고 있음을 알게 해 줬다.


또한 캐럴곡이라 할 수 있는 연습곡 하나는 자신감에 충만하게 해 줄 정도로 잘 연습이 되었고, 이제 바야흐로 하나 레퍼토리에 남아 있는 그레고리안 성가곡을 용기 있게 "베이스 파트장"님이 선정하여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시도했다.


지휘자님이 심혈을 기울여 연습을 지도했을 때도 불안했던 그 곡은 과연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산산이 부서지는 빛같이 파편화된 파동으로 흘러내렸다. 다만, 처음과 마지막에 도파민을 자아내는 짧은 화음의 교차만이 작은 희망을 선사해 주는 정도였다. 이 곡을 잘 부르기 위해서 자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르는 것은 역시나 직접 부르는 것과는 달랐다.


여기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번개로 마련된 점심회식을 하면서 서로 간의 용기를 다지고 일부 파트에서 오지 않은 인원이 돌아와서 같이 다시 의기투합해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만들게 될 것을 믿는다.



연습이 평일에도 진행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또한 있었기에 월요일 저녁에 진행할 예정이다. 직장에서 해야 할 일에 특별히 더 시간을 써야만 할 것이 없다면, 참여할 것이다. 이제 이 연습에 참여하고 공연을 준비하는 것은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같이 참여하고 있고, 공감대를 갖고 있는 인간임을 식별할 수 있는 또한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우리"라고 하는 것은 동일한 목적에서 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정형화된 행동을 하는 편의적으로 가공되어 인식되는 인간 종류가 아니다. 저마다의 합창단 참여 이유가 있고 저마다의 욕심이 있으며, 저마다의 이 합창에 부여하는 의미가 있다.


이것이 공동의 목표와도 동기화될 수 있는 흐름을 갖는 것이 그것이 합창이 되든 다른 것이 되든 집단이 하는 작업을 성공시킬 수 있는, 이 시대가 원하는, 방법이다.


이미 기업차원에서도 직원에게 동기부여하고 일을 시키는 방식은 더 이상 탑다운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필요하다. 강력한 권위를 바탕으로 밀어붙여서 높은 성과로 유도하는 것의 효과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인의 동기를 이해하고 그 동기를 조직의 동기와 결부되는 것으로 만들어 가는 작업을 성공해 내는 것이 바로 이 시대의 기업이 조직의 리더에게 원하는 자질이다.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그래서 먼저 들어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고, 성공적인 기업 중에 적지 않은 기업의 경영자는 설사 들은 말대로 해주지는 않더라도 직원의 말을 듣는 시간을 업무 보고와는 별도로 잡는다. 물론, 안 들어도 되는 산업도 있고, 그런 조직도 충분히 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고 자기의 동기에 대해서 아무 관심 없이 밀어붙이기만 하면 이젠 튕겨나간다.


사람이 사라지면 아무리 뛰어난 조직도 인공지능만으로는 온전히 커버할 수 없는 큰 구멍이 생기는 것이고, 합창단 같은 조직에서는 사라진 단원 하나하나의 목소리는 질적인 저하와 직결된다. 모두가 다 남아 있어야만 할 필요는 없겠지만 필요한 단원이고 필요한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이렇게 밥이라도 같이 먹고 듣는 자리를 만드는 것만큼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또 없는 것 같다.


일단, 서로 사람이란 걸 먼저 식별해야 서로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Copilot_20251108_222305.pn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