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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번째 연습>-폰 워리어, 바위 치기, 7기 모임

한주 빼먹으며 머릿속을 정리, 솔로 도전하다 전사, 7기 모임 결성

by Roman

1. 단톡방에서의 피로

오래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겪었던 피로가 다시 떠올랐다. 단체 채팅방에서 반복되는 논리적 오류, 감정적 언사, 권위적인 말투. 익숙한 패턴. 피하고 싶었던 유형. 결국 마주쳤다.


논리적 오류는 여전히 유효하다. 의도 확대, 인신공격, 허수아비 치기. 지적해도 고쳐지지 않는다. 습관이자 성향이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운 좋게도 아들의 전국 단위 농구 대회 일정이 겹쳐 한 주 연습을 쉬었다. 통영에 내려가 있는 동안 마음이 정리됐다. AI를 활용해 대화 내용을 정리하고 대응법을 찾았다. 감정은 가라앉았고, 평정심을 되찾았다. 명상보다 효과 있었다.


그 주 이후, 해당 인물은 연습에 나오지 않았다. 연습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마음이 가벼웠다.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때는 진지하게 탈퇴를 고민했다. 과거의 운영 방식, 지금의 구조, 시대착오적인 분위기. 후원자로서 자발적으로 기부하고, 회비와 공연 비용도 일부 부담하는데, 왜 단원들이 미리 의견을 제지 당하며 끌려다녀야만 하는가. "유니세프"는 갑도 을도 아닌 구호단체다.


그런데 단원들은 왠지 을처럼 행동하길 요구받는다. 기독교 극단주의자가 지휘자가 되어 어지럽혔다는 전적은 단원 중에 불순 세력을 발견하면 즉시즉시 격퇴해야 한다는 행동 방침으로 이행해야할 당위같은 것이 될 수 없다.


공연에 대한 의욕, 자발적인 기획, 단원들의 비용 분담. 이런 흐름조차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유니세프가 기획한 범위 안에서만 활동하길 원한다. 성가곡은 과거의 논란 때문에 금지. 특정 장르도 제한. 자율성은 최소화되고 문제 생길 것으로 이미 예측되는 의견은 조롱을 당하고 배제되어야 한다면, 왜 이 단체에 매주 토요일 오전을 쓰고 있는지, 나 자신에게 다시 묻게 된다.


어떤 말도 납득되지 않았다. 공연 욕심이 문제라면, 왜 오디션을 보고 들어왔는가. 지휘자가 커리어를 위해 공연을 만든다 해서 그게 문제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심 없이 봉사만 하라는 건 모순이다. 그런데 정작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내가 봤을 땐 인정에 대한 갈망과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


욕심 없는 활동을 원한다면, 합창단이 아니라 기부만 하면 된다. 소극적이고 피동적으로 제한될지라도 우리가 하는 합창 또한 본질적으로는 각 단원의 사적 동기의 결합에서 출발한다. 그걸 부정하면서 활동을 지속하는 건 자기모순이다.


2. 솔로 도전 –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가요 편곡곡을 연습하던 중에 솔로 파트를 넣자는 지휘자님의 제안이 있었다. 처음엔 테너 두 명이 멜로디를 맡았지만, 테너 인원이 적어 다시 파트로 복귀. 이후 베이스에서 자원자를 받았다. 아무도 없다는 말에 손을 들었다. 반주자님이 웃었다. 그 순간까진 좋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테너에서 한 명이 자원했다. 오디션이 열렸다. 음역대가 테너에 유리한 곡. 결과는 뻔했다. 그래도 나섰다. 기적을 바랐다.


베이스 파트장, 나, 테너 순서로 오디션. 결과는 명확했다. 계란이 바위를 친 게 아니라, 바위가 계란에 던져진 형국. 감정까지 표현해내는 테너의 노래를 들으며, ‘나도 저렇게 부를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기 합리화일 뿐.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자리로 돌아왔다.


확실히 배운 건 하나. 테너 음역대 곡에서 베이스가 무리하게 나서면 안 된다는 것. 명심.


3. 7기 모임 – 자각의 시작

7기 중심으로 별도 모임이 추진되고 있다. 6기는 별도 모임 같은 것은 없었다. 그래서 함께하는 형식이 됐다. 이렇게 회식을 단합대회 형식으로 시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7기가 수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에도, 단체 운영에서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신입이라는 이유로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는 구조. 사회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에게는 납득되지 않는다. 단지 기수 순서나 자발적으로 참여한 집행부에 의해 권한이 제한되는 건 이 시대에 이르러서는 왠지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이 모임은 공식적인 문제 제기보다는, 흐름을 공유하는 자리다. 웃고 떠들다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각은 시작됐다.


주저리 주저리 사족:

살다가 만나기 싫은 이들은 통상 아래에 적혀 있는 내 글 "<논리적 오류 모음>-알면 적어도 피할 수 있다"에서 나오는 오류를 밥먹듯이 쓰는 자들이 되곤 한다. 잘 통하니까 지금까지 써왔겠지만, 그 패턴이 오류임을 알아도 그 습관을 고칠 정도의 수준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한다.

https://brunch.co.kr/@rpyatoo/133


종종 잘 쓰는 오류는 관심법이나 독심술로도 불리우는 의도하지 않은 상대의 의도를 머리 속으로 들어가 파악해서 채근하는 방식의 기술인 "의도확대의 오류"다. 물론 정당한 추정과 합리적인 추리가 어떤 이의 행동의 의도의 근거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집단이나 개인에 대해서 정당한 추정과 합리적인 추리의 과정을 설명하는 과정없이 불특정 다수나 개인에 대해서 잘 아는 바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특정 경험을 근거로 들며, 특정의 의도를 갖고 있다고 뒤집어 씌우면서 채근하는 방식의 논의는 모함이나 선동에 차라리 가깝다.


회사에서도 당하기 싫은걸 취미활동을 하며 당하고 싶진 않다.

의도 확대의 오류 (링크)
의도하지 않은 행위의 결과를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할 때 생기는 오류
예 1) 너는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한다. 그런데 담배는 폐암의 원인이라고 하지 않는가! 네가 폐암에 걸리고 싶어 하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예 2) 정직하지 못한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아이에게 쓴 감기약을 먹일 때도 달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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