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중에 연습한 곡을 무대에서 부르기 위한 진용을 짜고, 평화를 찾다
토요일 아침에 내가 연습을 하는 강의실에 들어가는 시간에 문이 닫혀 있었던 기억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있으니 왠지 모르게 낯선 기분이 들었다.
지휘자님이 내린 지침은 원래 연습을 시작하는 시간보다 15분 전에 입실해서 호흡과 발성 연습을 하고 그다음에 정각에 바로 노래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여 번의 정기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 그 지침대로 단원들이 그대로 출석했던 날은 유감스럽게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랬으므로 10여분 전에 도착한 때 닫혀 있는 문은 달라 보였다.
그 안에서 일찍 나온 지휘자님과 일부 단원이 음악을 진지하게 틀어놓고 앉아서 듣고 있어서, 언제나 먼저 인사를 전하며 시끌벅적 입장하던 루틴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답지 않은 입장이었으므로, 먼저 와 있었던 (신입 중에 친해진 4명이 구성한) 보이즈의 두 분이 나중에야 온지도 몰랐다는 반응을 주어서 이 낯선 시작이 모두에게 감염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의 수시 연습에 비해서 사람들은 다행히 더 모였고, 테너도 5분까지 늘어나 있고 베이스도 9명이나 왔으므로 남성 파트 부분이 좀 더 웅장하게 울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베이스 파트 1과 베이스 파트 2에서 성실하게 연습에 참여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저마다 자신의 실력에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성실하게 연습에 참여하는 것이고, 테너들은 자신이 있는 이가 온다.
그 둘의 다른 동기와 다른 실력이 결합해서 둔중하고 성실한 베이스 사운드와 유려하고도 사려 깊은 테너의 사운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남성 파트만의 곡을 연습한 뒤에 오래간만에 칭찬을 듣기도 했고, 전체 합창을 할 때도 "서울 시향인 줄 알았어요"같은 말도 들었다.
실력과 화음의 조화에 개선이 있는 것과 더불어, 이제 바야흐로 한 달 남짓 남은 유자페스티벌 공연에 가능하면 이 인원 모두가 참여하길 독려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만큼 남녀 단원들도 여기에 호응해서 그 어느 때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실수와 더불어 좀 더 자신 있는 가창을 했다.
다만, 캐럴 한곡은 난항이 지속되었고, 원곡의 영문 가사를 한국어 가사로 개사하는 시도가 부른 뒤에 이뤄지게 되었다. 약간의 수정으로 반전이 생길 수 있다면 취할 수 있는 조치다.
그리고 나머지의 새롭게 배운 캐럴 곡과 새로운 캐럴 곡은 비교적 쉽게 잘 불렀고, 남녀 각 파트로 나뉜 곡과 전체 합창곡 중에 가곡에 대해서는 이제 최소한의 합창단이라고 불릴 수 있는 면모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강연장의 단상으로 모인 단원 전부가 올라가 파트별로 무대배치를 하고 자리를 대략 잡았다. 이번엔 안 왔지만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원을 위해서 한 줄씩을 가상으로 비워놓기도 하고, 날개를 만드는 법과 남녀 나눠서 입출입 퇴장하는 법, 악보를 파지 하는 법 등을 배웠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대부분 무대 체질인 우리가 점점 더 꼭 필요한 만큼의 긴장감을 가지고 더 잘 부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보다 1시간씩 더 연습을 하게 되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거나 불만을 이야기하는 이가 없었다. 최소한 연습을 빠지지 않고 가능한 참여하는 대부분의 단원은 충분한 동기를 갖고 자발적이다.
턱시도에 넣을 행커치프를 배부받는 순간 근무지 투입 전에 수류탄을 지급받는 군인이 된 것 같은 이미지가 잠시 흘렀지만, 경연이 아닌 공연이므로 그런 이미지는 곧 사라져 버렸다. "유니세프"의 이념대로 우리가 부를 노래에는 평화과 사랑, 공존 등의 의미 있는 가치들이 들어 있어야 한다.
참여하는 동기에는 다른 욕심도 섞여 들게 되지만 적어도 노래를 부를 때, 가사가 담고 있는 의미는 그 단어의 의미가 대부분이 생각하는 그 의미로 전달될 것이라 믿는다.
신입 7기의 점심시간에는 집행부가 빠진 채로 6인이 참석했고, 지난번 점심에 참여했던 한분이 "평화의 나무 합창단" 소속이기도 해서 점심 식사를 맛있는 "호랑이 곳간"에서 마친 뒤에도 시간을 맞춰 나를 포함한 3명의 남자가 각출해서 작은 꽃다발을 사들고 공연장을 갔다.
나름 괜찮게 연습을 마치고 뿌듯했었던 마음이 이 프로페셔널하게 합창 공연을 하는 "평화의 나무 합창단"의 퍼포먼스에 일순 압도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18년의 역사를 가지고, 길거리 공연도 마다하지 않고 "평화"를 전달하려고 하는 정확한 의미 아래에 모인 단원들의 합창은 메시지가 확실하게 서 있었고 또렷하게 들리는 동시에 일사불란하고 제대로 연주되고 있어서 감동적이었다.
이런 실력 있는 합창단 소속의 여성 단원분이 우리 합창단에도 참여하고 있는 것은 이렇게 공연을 보는 경험을 갖게 될 때마다 경외감과 더불어 또 다른 의미의 뿌듯함을 느끼게 만든다.
정치적인 메시지가 있고, 잘못된 정치를 하는 위정자에 대한 비난, 불평등을 감수하고 차별받는 비정규직의 설움을 담은 창작 합창도 있었다.
이런 합창을 하는 데에는 특정 집단 등으로부터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고, 사회적으로 따가운 시선도 감수할 내공도 필요한데, 그것들이 높은 수준의 합창으로도 연결되는 힘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합창단이 연습하고 있는 2곡도 합창곡으로 나와서, 자연스럽게 우리와의 비교도 해볼 수 있었다. 역사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그 때문에 연령대도 상대적으로 높아 보였고, 곡을 이해하고 부르는 능력도 비교할 경지를 넘어선 합창단이긴 했지만, 비즈니스 용어로 벤치마킹할 수 있었다.
이 중에 단 한곡만을 동영상으로 찍어 신입 기수분들의 단톡방에 공유했고, 이것이 더 실력을 가다듬도록 만드는 좋은 자극이 될 수 있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보다 연배가 높으시고 사업도 하시는 두 분의 형님들도 집에 일찍 가야 한다는 등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 나와 있을 수 있었다는데 감사하는 것을 들었고, 나 역시 집에서 빨리 돌아오라는 호출이 없어 잠시간의 휴일의 여유로움이란 호사를 누렸다.
원래 한국이란 사회는 모계 사회가 아닌가 싶다는 약간의 푸념 섞인 아저씨들만의 이야기도 오갔지만 그것이 바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이전의 시대와 달리 남자들 스스로가 더더욱 남성으로서의 권위를 자발적으로 내려놓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사회의 변화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의 시대에 가정에서 한쪽이 오로지 배우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가사 노동을 배분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한 시간을 스스로 내고 나눠서 살아가는 것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너무나도 중요한 덕목이다.
노래와 가정, 일에서 우린 "평화"를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심적 고통(?)이 좀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