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으레 나이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한다. 특히 서른, 마흔 같은 기점을 계기로 어떤 선택을 하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이 나이대'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같은 의문을 갖는다. 나이대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은 없지만 흔들림을 안고 사는 우리는 불안과 자기 확신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사는 건 아닐까.
이십대, 삼심대, 사십대의 한 개인을 놓고 볼 때 사람은 변한다. 성장한다는 의미에서 '변화'는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고 반대로, 성장을 하기 위해서 애써 변화를 만들기도 한다.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맞을까?' 스스로 의문을 갖기 시작할 때.
작게는 기상시간, 운동계획부터 크게는 환경까지 일상의 변화를 주기 위한 시도를 한다. 평소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이 유학을 간다고 공부를 잘 하게 될까? 단순한 환경변화는 근본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과정 없이는 잘 할 수 없다. 변화의 주체는 자신이어야 하고, 환경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변화해야 환경의 변화가 의미있다. 변화와 생각, 행동. 현재의 편안함에서 빠져나와 무엇을 시도하고 도전하느냐가 살아가는 일, 자신의 삶이 된다.
이십대의 마지막 날, 나는 스위스의 어느 한 B&B에 있었다. 결혼을 하자마자 혼자, 용감하게 이탈리아 유학을 간 딸에게 친정엄마와 남동생이 놀러와서 유럽의 소도시를 함께 여행하는 중 이었다. 산 속 깊은 곳의 작은 호텔에서 밤 12시에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남동생이랑 귀기울여 들었다.
이십대에서 미지의 삼십대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어떠한 기대보다 그 순간을 마주했던 마음이 생생하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새로운 시도나 도전을 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어렴풋이 알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자주 잊고 다시 기억해내지만.
뭔지 모르겠지만, 잘 될꺼라는 믿음.
목표를 정하기 전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해내고자 하는 일에 대한 도전,
그에 맞는 사고방식을 갖고 하나씩 실행하기.
커리어 고민을 심각하게 하며 헤매던 8년전 봄, 어느 사이트에서 누군가의 고민에 달려있던 댓글이 인상적이어서 캡쳐를 했던 글이다.
그때의 위로를 가끔 들춰보고 든든해진다. 이십대, 삼심대, 그리고 지금의 사십대, 고민과 시도와 도전들이 뭉쳐지고 또 단단해질 수 있도록. 거창하거나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증명해내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 바르게 서기 위한 일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마냥 바쁘지만은 않다.
작은 일들이 삶에서 갖는 의미가 위대해지고 쫒던 것들의 무의미함들이 뒤섞여서 평평해지는 감각을 느끼면서 스물 아홉과 서른의 경계에서 들었던 종소리가 생각이 났다. 아무쪼록 그때 그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