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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골목여행, 숨은 명소 찾기

관광 지도에 나오지 않지만 이야기를 머금은 그 곳

by 하얀잉크
북촌 골목여행은 알려진 명소를 돌아보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하지만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지도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지나치기 아쉬운 명소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 소박하지만 저마다 다채로운 이야기를 머금은 북촌의 숨은 명소를 찾아보자.



사연도 많은 계동길 석정보름우물


북촌에 살면서 흥미로운 것이 도처에서 우물을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산책하며 발견한 우물만 떠올려도 4개나 된다. 계동의 석정보름우물, 화동의 복정우물, 원서동 우물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뒷 편 종친부터의 우물. 우물이 대단한 문화재도 아니고 뭐 대수롭냐 하겠지만 도시 개발로 종적을 감춘 우물을 종로 도심 한 복판에서 만나는 일은 신나기만 하다.


상수도가 개발되기 이전에만 해도 우물은 마을의 중심이었다. 주민들의 주된 음수이자 생활용수의 공급원 역할을 하던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였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말이다. 이제는 거기에 우물이 있었나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지만 우물들은 저마다 독특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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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계동길에서 만나게 되는 석정보름우물은 얽힌 사연도 많아 더욱 특별하다. 중앙고등학교로 올라가는 길 우측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이 바로 석정(石井)보름우물이다. 계동길을 지나다니는 이들 중 우물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기록에 따르면 우물이 돌로 쌓여져 동네 이름이 석정골이라 불렸다 한다. 본래 석정보름우물은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것은 물론 우물물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 인근 궁궐 궁녀들도 몰래 떠나 마시며 아이 낳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속설 하나에도 매달리던 남아선호 사상이 지배하던 시절 이야기다.


석정보름우물이란 이름을 얻게 된 연유는 우물에 얽힌 사연 때문이다. 정조 임금 시대 양반댁 도령을 사모하던 망나니 딸이 우물에 투신하여 갑자기 우물이 요동치며 흘러 넘치는 변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원혼제를 지내 주니 범람은 멈췄으나 그 뒤 보름은 물이 말고 보름은 흐려져서 보름우물이라 불리게 되었단다. 보통 우물에 전설 하나 쯤은 얽혀 있지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다.


석정보름우물은 천주교에서 의미 있는 성지이기도 하다. 1794년 중국에서 압록강을 건너 온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주문모 신부가 계동 최인길(마티아) 집에 숨어 지내면서 조선땅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고, 이 우물물로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1845년 한국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도 이 물을 성수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타까운 것은 골목이 어둑해지는 시간이 되면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에 뒤덮여 우물이 시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물은 문화재인가? 그렇다라고 생각했던 물음에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문화재는 응당 보호되고 보존되어야 한다. 그것이 가치가 적고 많고를 떠나서 말이다.




세종대왕이 세운 600년 된 보물


국보 1호는? 숭례문! 보물 1호는? 흥인지문! 철없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이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 가운데 국가가 법적으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하여 지정한 유형 문화재가 국보와 보물이다. 그런데 북촌에 국가에서 지정한 보물이 있다? 그것도 세종대왕이 세워 600년이나 되었다니 귀가 솔깃한다.


경복궁, 창덕궁 이야기가 아니다. 보물이 위치한 곳은 현대사옥 앞마당이었다. 옆으로 최근 아라리오에 인수되어 뮤지엄으로 재개관한 공간 사옥이 보인다.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을 비롯한 각종 경기장, 부여박물관, 청주박물관, 워커힐, 르네상스 호텔 등을 설계하며 우리나라 대표적인 근대 건축가로 손꼽히는 김수근 선생이 직접 설계해 자신의 사무실로 썼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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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자칫 봉화대나 굴뚝처럼 보이는 유적이 우리가 찾던 보물이다. 작은 첨성대처럼 느껴졌다면 정답이다. 조선 전기에 지어진 천문관측대이다. 제법 규모가 크고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그래서 국보로 지정된 첨성대에 비해 초라한 모습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농업국가였던 우리나라에서 천문관측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지금까지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관측대는 4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경주 첨성대(통일신라), 개성 만월대의 첨성대(고려), 서울 창경궁 내의 관천대(조선 후기)와 북촌의 관상감 관천대이다. 특히, 관상감 관천대는 창경궁 관천대 보다 앞선 조선 전기 15세기 전반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즉, 당시 천문기기의 개량과 발명에 관심이 지대했던 세종대왕이 세종 16년 설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계동 현대사옥의 부지는 본래 휘문고등학교가 자리했던 곳이다. 1980년대 휘문고가 강남으로 이전하고 현대그룹이 들어서면서 관천대에 대한 조사와 정비가 거듭되어 1984년 원위치에서 완전 해체 복원하여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본래 사적 제296호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해체 후 다시 복원한 연유인지 우리나라 천문학 역사와 천문학 기기의 발전을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로 재평가받아서인지 2011년 보물 제1740호로 승격되었다.


계동길이 시작되는 입구에 위치한 현대 사옥은 북촌골목여행에서 쉽게 지나치기 쉬운 곳이지만 한 번쯤 보물로 지정된 600년 된 천문관측대를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중앙고 앞 마을의 수호신, 은행나무


중앙고등학교는 캠퍼스가 아름다운 덕분에 주말이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통한다. 또한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욘사마 학교로 나와 1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발길 하는 명소이다. 개인적으로는 봄에 만개하는 벚꽃과 목련의 풍경이 일품이라 멀리 가지 않고 봄꽃 축제를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곳에 명소가 하나 더 있으니 숨은 명소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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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중앙고 교문 옆에 우뚝 선 은행나무가 주인공이다. 종로에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즐비하지만 이 은행나무가 의미 있는 이유는 오랫동안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숭앙받았기 때문이다. 수령이 500년 되었으니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중기 중종 시절부터 계동의 역사와 함께한 셈이다.


조광조의 개혁정치부터 조선의 흥망성쇠, 일제강점기의 시련, 대한민국의 태동까지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지켜보았을 나무는 오늘날 우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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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액자 사이의 한옥 풍경


마지막으로 소개할 숨은 명소는 중앙고에서 가회동 11번지로 향하는 골목 사이에 숨어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최지우 집으로 출연했던 곳, 지금은 새로운 한옥이 들어선 그 앞 시멘트 벽 너머로 계동 한옥촌 풍경이 펼쳐진다. 지나는 이들이 잠시 발길을 멈추고 풍경을 감상하고 아이들은 까치발을 들고 그 풍경을 보기 위해 애쓰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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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딸아이가 까치발을 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시멘트 구멍 사이로 보라고 했더니 그것이 근사한 액자가 되어주었다. 액자 사이로 한옥 기와지붕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뒤에 커다란 건물은 대동세무고등학교이다.


이 밖에도 북촌에는 찾지 못한 많은 명소들이 숨어 있다. 그 명소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 더욱 북촌골목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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