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피임 수술을 했습니다. 정관수술
이번 주에 특별한 수술을 했다.
제왕절개 수술은 여러 번 할 수 있지만,
이 수술은 평생 한 번밖에 할 수 없다.
두 번 할 이유가 없는,
정. 관. 수. 술.
우리 집에서는 귀엽게 고라니 수술로 부른다. 유명한 드라마 대사에서 한 글자만 뺀 것인데, 자세히 말하기는 좀 그렇다.
참고로, 이번 글은 정관 수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상상하기 싫은 장면을 상상하게 되거나, 속된 말을 만날 수도 있으니, 점잖으시고 정결하신 분들은 신중히 읽을 지 말지를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새해에는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중,
정관 수술을 해볼까 싶었다.
원래 나는,
오래 심사숙고하는 편인데,
요즘 나는,
도전에 꽂혀있다 보니,
당장 해버리자 싶었다.
바로 예약을 잡았다.
예약을 잡자 수술이 현실로 다가왔고,
두려움이 조금씩 밀려왔다.
출산을 경험한 엄마들은 하찮은 수술로 유난 떤다고 하겠지만, 내 인생 두 번째 수술이니 이해해 주시길. 첫 수술은 포경 수술이었다. 다 비뇨기 쪽이다.
두려움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지는 못했다.
충분한 잠과 꾸준한 달리기 덕분이 아닐까 싶다.
수술을 어떻게 하나 찾아보니,
피부에 구멍을 낸 다음,
칼로 째지 않고 구멍을 내서 하는 수술을 무도정관수술로 부른다. 무도정관수술이 통증이 적다고 한다.
정관을 꺼내어,
자르고 묶고 지지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상상하니,
다시 두려움이 찾아온다.
하루에 한 번은 그날 벌어질 일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괜히 예약을 미리 했나 싶었다.
두려움 말고도 밀려오는 감정이 하나 더 있다.
부끄러움이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곳을 보여야 한다니.
대중목욕탕처럼,
모두 벗는다면 부끄럽지 않겠지만,
나만 벗는 것은 부끄러움이 클 것 같다.
부끄러움을 넘어 수치스러운 기분이 들 것 같다.
분명 도와주는 간호사가 있을 텐데, 여자면 어떡하지?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하루에 한 번씩은 찾아와서 나를 괴롭혔다.
생각보다 아프거나 부끄럽지 않을 것임을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도 그랬다.
수술 당일이 되었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접수를 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병원 코디네이터로 추정되는 남자분이 나를 불렀다.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가는 공간에서
수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아프지 않고 금방 끝나니 걱정하지 마시란 말이 큰 위안을 주었다.
그러나 정관이 두 개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다시 두려움이 되돌아왔다.
생각해 보면 두 쪽이니 당연히 두 개 일 텐데 나는 왜 하나로 생각했을까?
수술실 쪽으로 가자,
남자 간호사님이 문 앞으로 마중 나와 있다.
접수를 받는 분 말고는 모두 남자였다.
슬리퍼로 갈아 신고 수술실로 따라 들어갔다.
초면인 간호사님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지와 속옷을 벗으라고 했다.
나는 옷걸이에 바지를 걸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팬티까지 벗어야 하죠?"
당연한 말을.
엉덩이에 주사를 한 방 맞고 수술대에 누웠다.
간호사님은 수술을 위한 이런저런 준비를 했다.
그중 가장 민망한 것은 제모였다.
바리깡로 시작해,
면도기를 거쳐,
청소기로 마무리했다.
나는 나에게 최면을 걸어야 했다.
'여기는 미용실이다...'
준비가 끝나자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의사 선생님과 나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하반신을 드러낸 채로.
양말은 신은 채로.
수술은 빠르게 끝났다.
수술 부위 주변에 맞은 마취 주사는 따끔한 정도였다.
수술 자체는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은 정도를 넘어 신기할 정도로 느낌이 없었다.
몸속에 있는 관 두 개를 끄집어내어 자르고 지지는 데,
아무 느낌이 없다니.
수술을 하지도 않으면서 하는 척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정관을 지지는데 고기 굽는 냄새가 아니라,
머리카락 태우는 냄새가 난다는 게 수상했다.
수술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미리 학습을 했던 터라 눈앞에 선했다.
정관이 몸 밖으로 나와 고초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무서웠다.
아래쪽에서 벌어지는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미리 안내받은 사후관리 사항들을
입으로 중얼거리며 되뇌었다.
두 사람에게 안 들릴 정도로 섬세하게 볼륨을 조절했지만,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기도 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
정관을 꺼냈던 구멍을 꿰매는 것으로,
수술은 끝났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갔다.
다시 간호사님과 단둘이 남았다.
간호사님은 실로 꿰맨 자리를 잠시 지혈해 주었고
정자가 만들어지는 신체 부위를 꼼꼼하게,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느껴지도록,
테이프로 꽉 붙여주었다.
모든 과정 중, 집에서 혼자 테이프를 뗄 때가 가장 고통스러웠다.
뒷정리도 끝났다.
간호사, "이제 옷 입으셔도 됩니다."
환자, "느낌이 전혀 없네요. 너무 신기하네요."
간호사님은 슬며시 웃었다.
환자, "관에는 통각수용체가 없나 봐요"
간호사, "네, 없어요."
환자, "마취가 깨도 안 아픈가요?"
간호사, "네, 아프진 않고, 조금 뻐근하긴 할 거예요."
수술실에 들어가 나오기까지 15분 정도 흘렀을까?
간호사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죽마고우와 헤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속된 말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 상황에 죽마고우 보다 더 찰떡인 말이 있다. 바로 불알친구다. 더 정확히는 '일방 불알친구'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열 번의 카페보다 한 번의 목욕탕이 나은 것일까?
수술실을 나와 신을 갈아 신고 통로를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오는데,
왠지 모를 웃음이 새어 나왔다.
겨우 참았다.
아내가 함께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면,
참지 못하고 깔깔대며 웃었을 것 같다.
처방전 한 장과 작은 통 하나를 가지고 병원을 나왔다.
그 통은 나중에 수술 성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용도를 쓰일 예정이다. 보이는 곳에 잘 두고 4개월 뒤에 가져오라고 했다.
수술은 끝났지만 걱정거리가 몇 가지 생겼다.
당분간 지켜야 할 것들 때문이다.
1. 달리기와 수영을 하지 못한다. (10일)
2. 술을 마시지 못한다. (10일)
3. 또 하나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건 노코멘트. (2주)
4. 약 때문에 아침을 먹어야 한다. (5일)
운동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먹지 않던 아침을 먹고,
운동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4일을 보냈다.
운동 없는 삶이 괜찮을까 싶었지만,
생각보다는 마음 상태가 좋다.
겨우 4일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잠이라도 잘 자서일까?
가벼운 산책이라도 해서일까?
살다 보면 얼마간,
운동을 못할 수도 있고,
잠을 충분히 못 잘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운동을 못하는 걸 당연히 여기지 않고
걱정하고 있는 내가 고맙고 대견하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하려는 마음이
문제를 일으킬 때가 많다.
좋은 습관이라고 해도
완벽하게 지키려는 태도보다는,
조금 여유로운 태도가 더 좋은 것 같다.
운동은 5일 뒤에나 할 수 있다.
그때까지 잘 쉬고,
조금씩 많이 걸으면서,
그날을 기다리려 한다.
초등학생이 소풍을 기다리듯.
수술을 하고 난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하길 잘했다'는 것이다.
고민을 미루지 않고 바로 실행한 점은,
더 잘했다!
'하고 나면 잘했다 싶은 일'을 많이 하면서 살려고 한다.
운동도 그런 일이고,
잘 자는 것도 그런 일이다.
정관수술,
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