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족을 그리 잘 챙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는 비루한 변명을 덧붙여본다. 공부나 일, 사람들의 평가 등 바깥일들에 집착하느라 가족을 챙기는 건 늘 후순위로 밀렸다. 언제까지나 부모님의 챙김을 받는 쪽이었고, 집에만 돌아오면 긴장이 풀려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집에서의 나는 제 몫을 못하며 살았다.
결혼을 한 뒤엔 비교적 달라지긴 했다. 당연한 것처럼 누리던 부모님의 내리사랑으로부터 한 발짝 멀어졌고, 남편과 둘이 벌여놓은 살림은 우리 둘이 직접 책임져야 하니 이전보다 부지런해져야 했다. 끼니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다. 그리고 나의 배우자가 안녕한지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챙겼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릇이 작은 사람이었고,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쉽게 지쳐서 남편에게 챙김을 받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나는 왜 이 정도밖에 못할까. 자주 자책했다. 나의 마음 주머니는 이미 나의 삶만으로 꽉꽉 차서,빈틈을 잘 찾을 수 없었다. 넉넉한 사람, 주변을 잘 챙기는 사람이 되는 건 다음 생에나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 내가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달콩이가 왔다. 달콩이는 보호자의 챙김 없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밥도 줘야 하고, 물도 다 마시면 채워줘야 하고, 목욕도 시켜줘야 하고, 빗질도 해줘야 하고, 산책도 시켜줘야 하는 존재였다. 나에게 여유가 있든 없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야만 하는 일들이었다. 달콩이를 의무감으로 챙기는 날도 있었지만, 기꺼이 보살피는 날이 더 많았다.
사람이 하루에 몇 번이나 진심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짜 웃음, 때 묻지 않은 웃음을 몇 번이나 터트릴 수 있을까. 달콩이가 우리의 가족이 된 뒤로 나는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이상 그렇게 웃는다. 달콩이가 하품만 해도, 장난감만 물고 있어도 너털웃음이 절로 난다. 그런 행복을 선물해주는 달콩이에게 고마워서, 바라보기만 해도 사랑이 퐁퐁 샘솟아서,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달콩이가 괜찮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기꺼이 돕는다.
요즘 달콩이를 돌보며 가장 많이 신경 쓰고 있는 건 '식이 알러지'이다. 강아지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한정적이고, 그중 먹는 즐거움의 비중이 무척 클 텐데, 지금 달콩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겨우 사료뿐이다. 어렸을 때 닭고기가 들어간 간식을 먹으면 몸을 긁길래 닭 알러지가 있나 보다 했는데, 그 뒤로 다른 걸 먹어도 왕왕 가려워했다. 그나마 알러지 반응이 없는 오리고기나 양고기 같은 몇 가지 단백질원을 찾아냈었지만, 그마저도 반복적으로 먹다 보니 알러지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알러지 반응이 없는 사료를 찾는 과정 역시 만만치 않았다. 성분 좋은 사료를 검색하고, 사보고, 먹여보고, 알러지 반응을 관찰하고, 안 맞으면 버리거나 당근 마켓에 내놓았다. 맞는 사료를 겨우 하나 찾긴 했지만, 평생 한 종류만 먹으면서 살 순 없으니 사료 찾는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달콩이는 매번 영문도 모른 채 사료 테스트에 임한다.
그 착하고 예쁜 눈을 보면서도 간식 하나 주지 못하는 보호자의 마음은 애석하기 짝이 없다. 알러지가 심할 때 잠도 못 자고 몸을 박박 긁는 달콩이를 보고 있으면, 말도 못 하고 그저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가며 긁는 달콩이가 너무 불쌍해서 나는 울고 싶어 진다.
하지만 운다고 달콩이의 피부가 나아지는 게 아니니 적당히 속상해하고 뭐든 행동으로 옮긴다.달콩이가 긁는 데에 환경적인 요인도 있을 거라고 추측한 뒤로 나는 더 부지런해졌다. 달콩이가 쓰던 강아지 방석을 모두 치우고 그 자리에 알러지케어 이불을 사서 놔주었다. 집에 먼지나 머리카락이나 달콩이 털이굴러다녀도 일단 미루고 보던 내가, 이제는 틈틈이 청소를 한다. 집먼지 진드기 퇴치에 좋다는 피톤치드를 여기저기 뿌리고, 달콩이가 쓰는 물건들의 위생에 신경 쓴다. 사실 남편과 나는 '개가 흙도 씹어먹고 해야 건강하게 크는 거지.'라는 주의였다. 뭐든 잘 먹고 잘 뛰다 보면 건강하게 살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웬만한 음식에 모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달콩이를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었고, 결국 우리는 기존의 생각을 버린 채 하나, 하나 노력하기 시작했다. 달콩이는 무척 세심한 돌봄이 필요한 강아지였다(그 마저도 예민한 우리 부부를 닮은 거라 생각하니 할 말은 없다만...). 우리는 여전히 원인이 불분명한 달콩이 알러지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매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반려동물에게는 보호자의 손이 필요하다. 간결하고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아무리 게을러도 나는 움직일 수밖에 없다. 달콩이를 돌보면서부터, 빈틈을 찾을 수 없던 나의 마음 주머니가 알아서 빈틈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마냥 없어 보이던 시간과 여유가 자리를 내주었다. 나도 누군가를 살뜰히 챙길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달콩이 덕에 알아가고 있다.
내가 달콩이를 보살필 때의 그 마음을 달콩이 역시 느끼는 것 같다. 달콩이의 눈빛이, 행동이, 나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돌본다는 건 마치 한쪽 방향으로만 건네는 관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반대 방향으로 더 큰 마음이 돌아온다. 그 넉넉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양분 삼아 나는 조금씩 어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