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쇼핑 후 얻은 세 가지 깨달음

라스베가스(네바다)

by 온정

추억의 IHOP에서 식사를 마친 우리는 Las Vegas North premium outlet으로 향했다. 쇼핑이라니, 아마 지금까지의 일정 중 가장 신혼여행과 어울리는 일정이지 않을까? 이전에도 미국에서 아웃렛을 몇 번 가본 적 있지만 여기처럼 저렴하면서도 좋은 물건이 많은 곳은 처음이었다. 역시 명성은 괜히 생기는 것이 아닌가 보다.


일단 우리는 편한 러닝화부터 열심히 찾아다녔다. 신발을 갈아 신고 편하게 쇼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간 내 다리가 아팠던 것이 발을 꽉 조이는 신발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시작부터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들을 다 돌아보았지만 왠지 맞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브랜드에서 아주 깃털 같은 러닝화를 발견했다. 마침 같은 디자인으로 남성용도 있어서 우리는 얼떨결에 커플 운동화를 맞추어 신었다. 드디어 발도 가벼워졌겠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쇼핑을 시작했다. 평소 옷을 살 때마다 손을 덜덜 떠는 나도 이 참에 꽤나 열심히 옷을 주워 담았다.
“이 브랜드를 이 가격에….??! 이건 사야겠어…!”


우리 둘을 위한 것도 사긴 했지만, 사실 무엇보다도 선물을 가장 많이 구입하게 되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며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난 항상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참 분에 넘치는 많은 것들을 받았다. 결혼식이란 한 남자와 평생을 약속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크지만, 나의 주변 사람들을 제대로 돌아보게 된다는 사실에서도 무척이나 의미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가 식구들은 뭐, 말할 것도 없고. 내 결혼 소식을 듣자마자 축가를 불러주고 싶다고 자청했던, 뮤지컬을 전공한 내 친구. 그녀는 결혼을 하는 주인공에게도, 지켜보는 하객들에게까지도 잊을 수 없는 결혼식을 만들어주었다. 또 결혼식 일주일 전 직접 우리 집까지 와서 정성을 다해 네일아트를 해준 내 친구. 그녀는 내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 들었는데, 난 그 얘기를 듣고 왠지 코끝이 찡해졌더랬다. 또 신부대기실에서 다소 긴장해있던 내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나의 친구들. 그녀들 덕에 나는 여유가 넘치는 신부로 돌변하여 결혼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평소엔 아주 장난꾸러기 같지만 내가 가본 어느 결혼식보다도 사회를 잘 본 내 친구. 어찌나 적정선을 잘 맞춰가며 차분하게 사회를 보던지, 모두들 입을 모아 그를 칭찬했더랬다. (사실 이 친구의 선물은 아웃렛에서 사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풀 예정이다.)


감사한 지인들을 열거하고 있자니 도무지 끝이 나지를 않았다. 남편도 나도 앞다투어 그들의 이야기를 꺼내고, 그 김에 지나간 결혼식을 회상하며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샀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버려, 우린 무려 6시간 정도를 쇼핑에 쏟은 뒤에야 아웃렛을 떠날 수 있었다.


쇼핑백을 바리바리 챙겨서는 오늘 묵을 숙소인 ‘Trump 호텔’로 향했다. 모두가 아는 바로 그 ‘트럼프’가 맞다. 라스베가스는 시내 전체에 호텔이 즐비하기 때문에, 서로 경쟁을 하느라 시설에 비해 숙박비가 저렴한 편이다. 특히 트럼프 호텔은 중심가와 조금 떨어져 있어 더욱 합리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었다.
호텔 문을 열고 로비로 들어갔는 내 평생 이렇게나 럭셔리한 호텔은 처음이었다. 겉모습도 금색으로 이루어져 눈부셨지만 내부는 더욱 호화로웠다. 한 여성 직원이 체크인을 진행해주었는데, 우리에게 허니문 기념 손편지와 초콜릿을 선물해주었다. 그런데 그녀는 뒤이어 내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6일 뒤 나의 생일이었다.) 어떻게 내 생일까지 알았냐고 물었더니 여권에서 확인하셨다고. 아니, 정신없이 여행하느라 까먹고 있었던 생일까지 챙겨주시다니! 그저 모두에게 해주는 서비스일 뿐이겠지만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편지에서도 난 괜히 감동을 느꼈다.
“오빠, 여기 직원 엄청 친절하고 예쁘다. 그치?”
“음, 글쎄. 내 눈엔 네가 더 예쁜데?”
“풉.”
그 와중에 이미 존의 법칙을 통달한 새신랑과, 그에 아주 만족하고 있는 새신부였다.

우린 방으로 올라가 묵직한 쇼핑 뭉치를 내려놓고는 바로 짐 정리를 시작했다. 분명 쇼핑을 한가득 하면서, 이 많은 것을 캐리어에 어떻게 집어넣냐는 둥, 캐리어를 하나 더 구입해서 수하물 신청을 해야겠다는 둥 고민했었던 우리다. 하지만 포장을 뜯어서 캐리어에 차곡차곡 넣어보니 아주 잘만 들어갔다. 역시나 쇼핑이란, 즉 물질이란 이렇게나 허무한 것이었다. 평생 살아가며 이렇게 많은 것을 사본 쇼핑은 처음인데, 그저 캐리어 구석에 쑤셔 넣으면 다 들어가 버리는구나. 아, 소유란 무엇인가…(?) 까지 갈 단계는 사실 아니었고, 조금 허탈하긴 했어도 우린 꽤나 만족했다. 필요한 것들로 잘 골라 샀기 때문이다.

이렇게 난 오늘 쇼핑을 한 뒤 세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 감사한 사람에게 선물을 산다는 건 이토록 행복한 일이로구나. 둘째, 쇼핑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법이로구나. 아, 소유란 무엇인가. (으이구, 또 시작이다.) 마지막으로, 쇼핑이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만 체력을 고려하면서 해야 하는 것이로구나. 특히 마지막 교훈은 오늘 밤 아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커버사진/ 라스베가스 스트립
라스베가스 트럼프호텔의 샹들리에
라스베가스 트럼프호텔 숙소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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