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촉감으로 기억하는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캘리포니아)

by 온정

우린 비행기를 타고 신혼여행의 시작점이자 마지막 지점인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했다. 앞서 말했듯 샌프란시스코는 친오빠가 살던 곳이었지만, 우리가 신혼여행을 갔을 시점에는 그가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오빠 없는 그곳은 어떤 느낌일까나.


라스베가스에서 샌프란시스코 가는 길

창밖의 예쁜 하늘을 보다가 잠시 눈을 붙였더니 금방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우린 숙소로 가기 위해 Bart라는 열차를 타고 Montgomery역으로 갔다. 출구로 나오는 순간,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건물들이 한눈에 보였다. 호텔까지 가기 위해 각자 캐리어를 2개씩 끌고 고층 건물들 사이를 15분 동안 걸었다. 요란한 캐리어 소리가 민망할 새도 없이, 샌프란시스코의 중심부는 아주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금방 허리까지 닿으려 하는 나의 긴 머리칼이 바람에 격렬하게 춤을 추다 이따금씩 내 얼굴을 찰싹찰싹 때렸다. 그 덕에 정신이 바싹 들면서, 순간 느꼈다.

‘아, 내가 정말 샌프란시스코 땅을 밟고 있구나!’

확실히 촉감과 냄새로 느낀 기억은 오래도록 남는다. 1년 내내 따듯한 캘리포니아라고 우습게 보고 방문했다가, 무섭게 치였던 바람으로 기억되는 샌프란시스코. 그럼 내가 기억하는 샌프란시스코의 냄새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길거리에 노숙자가 많아서 나는 특유의 지린내였다. 그 을씨년스러운 바람과 지린내를 맡고 있으니 내가 정말 샌프란시스코에 서있음을 확실하게 체감했다.

내가 조금 요상한 촉감과 냄새로 표현하긴 했다만, 샌프란시스코는 뭔가 콕 찝어 형언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는 도시이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대자연을 보고 왔는데도 여행 막바지에 “오빠, 오빠는 이번 여행 중 어디가 제일 좋았어?”라고 물었을 때, 남편이 큰 고민 없이 “솔직히 큰 기대를 안 했던 곳인데, 샌프란시스코가 너무 좋았어.”라고 대답했으니 말 다했다. 물론 그 직후에 “아. 근데 생각해보면 모뉴먼트 밸리도 너무 좋았고, 그랜드 캐년도. 아, 못 고르겠다. 못 고르겠어. 다 좋았다, 정말로." 라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렇듯 샌프란시스코는 생각보다 뭐가 많은 곳은 아니지만, 그 도시만의 낭만과 매력이 가득한 곳이다. 그래서 와도 와도 또 오고 싶은, 그런 곳이다.



우리의 숙소는 차이나타운 근처에 위치해있었다. 이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자면, 샌프란시스코는 겉으로 보기엔 안전해 보이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위험한 지역도 많아서 신경 쓸 점이 많았다. 그래서 호텔을 찾을 때 구글에 “San Francisco Crime heat maps”를 검색해보고, 비교적 진하게 표시되는 지역은 모두 피했다. 치안만 걱정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세계에서 집값이 비싼 것으로 상위권을 다투는 지역이기에 숙박비가 굉장히 비쌌다. 에어비앤비 가격이 라스베가스에서 묵은 트럼프호텔 수준이었으니, 말 다했다. 가성비 따지랴 안전한 지역 찾으랴 숙소 찾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 그나마 친오빠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며 찾은 곳이, 바로 차이나타운 근처의 '그랜트 플라자 호텔'이었다. 언덕에 위치한 탓에 우린 캐리어를 끌고 경사가 꽤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야 했다. 그리고 도착하고 보니 지금까지의 숙소 중 가장 콩알만 한 숙소였다. 너무 좁아서 캐리어를 펼 차리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여행하기에 좋은 위치였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3일 동안 꽤 만족하며 지냈다.


짐을 정리한 뒤, 우린 가벼운 몸으로 나와서 번화가인 유니온스퀘어로 향했다. 역시나 샌프란시스코의 길거리는 노숙자들의 성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매달 내야 하는 집세가 어마어마하니, 그걸 감당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원룸에 해당하는 이곳 스튜디오의 월세는 바로 내가 버는 월급 수준이다. 내 월급을 밝히긴 어렵지만 말이다. 물론, 위치나 경우에 따라 많이 다르긴 하다.

몇 발자국이 멀다 하고 나타나는 그들이 현지인들에게는 워낙 익숙해서일까. 몇몇 사람들은 길을 가다 말고 자연스럽게 물이나 음식을 건네주기도 했다. 사실 처음 마주했을 때는 나도 괜히 오지랖을 부리고픈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만. 안전을 위해서는 그저 내 발걸음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깨달은 바였다.

커버사진/ 샌프란시스코의 유니온스퀘어
샌프란시스코 유니온스퀘어

우린 현지인(이래 봤자 친오빠)의 추천을 받고 North India라는 인도 음식점으로 갔다. 두 종류의 커리와 난을 시켰는데, 서버가 밥은 안 시키냐며 계속 눈치를 주는 것이다. 우린 난을 좋아해서 밥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주문하는 내내 서버의 눈칫밥을 먹는 바람에, 얼떨결에 밥도 주문해버렸다.


커리를 기다리며, 우리는 처음 만났던 순간을 회상했다. 일면식도 없던 남편을 소개로 처음 만났던 날. 우린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인도 커리집을 갔다. 만난 지역이 내가 어렸을 적 종종 가던 곳이어서 아는 커리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위가 너무 예민해서, 낯선 사람 앞에서는 밥을 거의 먹지 못하는 나다. 하지만 왠지 남편과는 첫 만남에서부터 맨손으로 난을 뜯어 커리를 찍어먹어도 편했더랬다. 남편은 이전에 소개를 받으면 처음 만날 음식점을 찾다가 스트레스로 위통이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소개팅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상대방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메뉴를 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하물며 상대방을 잘 안다 해도 음식점을 고르는 일은 지상 최대의 과제 아니겠는가. 그래서인지 그때 남편은 내가 먼저 “혹시 커리 드세요?”라고 물어본 것에 대해 굉장히 놀랐었다고 한다. 어찌 됐든 그렇게 찾아간 침침한 커리집에서, 우리는 난을 뜯어먹으며 목에 갈증이 날 때까지 수다를 떨었었다.


우린 “그렇게 우리의 운명은 커리로 시작됐지.”, 라며 웃었다. 생생한 그때를 떠올리고 있자니 결혼까지 하게 된 우리의 모습이 참 신기했다.


그렇게 추억 여행이 끝나갈 때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초록색, 주황색 커리가 나왔다. 닭고기와 양고기가 들어간 시금치 커리와 마살라 커리였다. 남편은 앗뜨, 앗뜨, 하면서 뜨끈한 난을 찢은 뒤 건네주었다. 그 덕에 나는 바로 커리를 곁들여 맛을 보았고, 뒤이어 남편도 커리 찍은 난을 입에 넣었다. 그 후 우린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뒤이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단연코 내 평생 최고의 커리였다. 그리고 가장 반전이었던 것은 바로 밥이었다. 해외여행 중 ‘밥’을 잘 찾지 않는 우리로서는 굳이 여기서 밥을 시킬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밥을 입에 넣고 씹는 순간 다음과 같은 말들이 술술 나왔다.

“뭐 이렇게 특별한 밥이 다 있어? 분명 날아다니는 인도 밥인데, 또 동시에 쫄깃쫄깃해. 아, 이래서 서버가 우리에게 밥은 안 시키냐며 째려본거였나봐. 우리 식당은 밥이 제일 맛있는데 진정 밥을 안 시키신다고요? 이런 뜻이었나 봐. 솔직히 아까 조금 기분 상했었는데, 지금은 저 서버한테 정말 감사해야겠다.”

감동의 커리집이었다. 친오빠에게 맛집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연락했더니, 버클리 근처에 가면 더 맛있는 커리집이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왠지 우리 기준에는 이것보다 맛있는 커리집은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쌀쌀한 샌프란시스코의 길을 걸어 다니다가 먹은 따듯한 음식이라 더욱 맛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샌프란시스코의 North India 커리

저녁 식사를 즐기고 나니 바깥은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샌프란시스코의 밤은 그 바람을 닮아 역시나 을씨년스러웠다. 숙소로 돌아가던 길, 우리는 Macy’s라는 몰에 들렀다. 웬 또 쇼핑? 사실 여행의 끝을 달려가는 우리에겐 아직 미션이 하나 남아있었다. 친정엄마가 예쁜 시계 하나씩 사라며 돈을 주셨기 때문이다. 아웃렛에서도 찾아보았지만 맘에 드는 게 없었고, 미리 봐 둔 브랜드가 Macy’s에 입점해 있기에 찾아간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애걔? 다른 브랜드의 시계들 사이에, 아주 기본적인 디자인 몇 개만 전시되어있었다. 실망도 실망이지만 다른 곳을 또 찾아봐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싫었다. 아무래도 신혼여행이라 어쩔 수는 없다만, 난 여행 중에 쇼핑하는 시간이 정말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충 아무거나 사버릴 수 있는 위인도 못되었다. 결국 우린 나중에 다른 매장을 찾아보기로 미뤄두고는, 숙소로 들어가 하루를 마무리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밤거리
분위기도 좋았던 North Ind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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