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미서부 신혼여행기

프롤로그

by 온정

5월 1일, 샌프란시스코 공항.


렌터카를 반납한 남편과 나는 가까스로 공항에 도착했다. 다행히 늦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충분하지도 않았다. 헐레벌떡 뛰어가서 체크인을 한 뒤, 출입국 심사를 받으려 줄을 섰다. 그제야 한숨을 돌 나는 고개를 들어 공항의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아, 정말 떠나야 할 시간이구나.


친오빠와 헤어지며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서려있는 샌프란시스코 공항. 이번엔 여기서 오빠를 떠나는 그런 슬픈 상황도 아닌데. 그저 신혼여행이 끝났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뿐인데. 괜히 또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빠듯하게 들어온 탓에 탑승 시간은 금방 찾아왔다. 나와 남편은 앞으로 꼬박 13시간 동안 날아갈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윽고 방송이 나왔다.

“저희 비행기는 인천공항까지 가는 A항공 B편입니다.”

벌써 세상은 깜깜해졌다. 그저 주황색 불빛들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창가에 앉은 나는 옆에 앉은 남편을 바라보지도 못한 채, 그저 그 까만 창밖만을 응시했다.


두다다다다다다….

비행기는 내 마음도 몰라준 채 거침없이 활주로를 질주하더니, 이윽고 붕, 뜨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발가락 끝에서부터 시작해서, 머리 꼭대기까지 열이 올라오는 것이다.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남편의 손을 잠시 뿌리치고는 목을 만져보았다. 불덩이마냥 뜨거웠다. 아니, 이게 뭐지? 열기와 함께 온몸이 가려워진 탓에 손톱으로 박박 긁어보았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 같지 않았다. 날 걱정하는 남편의 눈망울을 쳐다보다가 깨달았다.


“오빠. 아무래도 내 몸이 여길 떠나는 게 너무 싫어서, 두드러기가 올라와버린 것 같아.”


머릿속에서, 해변의 모래알 반짝이듯 여행의 모든 순간들이 반짝였다. 카납에서 본 밤하늘이. 돌기둥 사이로 올라오던 붉은 태양이. 소란스럽게 내 얼굴을 파묻던 남편의 등판이. 샌프란시스코에 떠오르던 거대한 달이.


이윽고, 난 눈을 감고 심호흡을 시작했다.

‘슬퍼할 이유가 뭐 있어? 정말 행복했잖아. 이 기억들을 잘 간직해두었다가, 다음에 또 찾아오면 되는 거야. 괜찮아. 괜찮아….’


나 자신에게 거는 주문에, 거짓말처럼 두드러기가 가라앉았다. 샌프란시스코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큰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그나마 일찍 알아채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13시간 동안 좁은 좌석에 앉아서 온 몸을 긁을 뻔했다.

열흘 동안의 여정 속에는 인생의 행복과 역경이 모두 담겨있었다. 난 그곳에서 보고, 듣고, 사랑하고, 아프고, 고민하고, 회상하고, 후회했던 모든 감각들을 기록했다. 그 기억이, 그 냄새가, 그 감정들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도무지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미서부 신혼여행 이야기.


그토록 찬란하게 빛났던,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미서부 로드트립 중 네바다, 애리조나, 유타를 지나며.

찬란했던, 미서부 신혼여행기 1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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