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원한(3)

by 주애령

“그럼, 피의자는…… 아니 현순 씨 작은아버님은 어디 계셔?”


“집에 계셔. 순경이 지키고.”


“재심문하느라 출두하거나 형사들이 자택에 가면 기자들이 냄새 맡겠네.”


“그게 문제지.”


성 기자가 눈을 반짝였다.


“우리, 가볼까?”


“뭐?”


“지금이 제일 좋을 때야.”


성 기자는 일어서서 침대에 널린 옷가지를 주워 들었다.


“지금 경찰들 죄다 실종 노인 수색하러 나갔다고 했지? 움직여도 아무도 몰라. 난 기자니까 형사인 너보다 마음을 더 여실 수도 있어. 그리고 지방은 음주 운전해도 되니까 얼마나 좋냐? 빨리 가자. 샤워하고 면도하고 나올 거니까 기다려.”


박 경사가 취재는 안 돼,라고 말하기도 전에 성 기자는 화장실 문을 닫아버렸다. 물소리가 확 쏟아졌다.



한밤중 시골길은 노래하듯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성 기자는 운전하면서 박 경사에게 질문할 때 말고는 입을 열지 않았다. 박 경사는 최대한 대답해주려고 애쓰면서도 과연 성 기자가 정경수에게 살해 동기를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대답을 들을 거냐고 묻자 성 기자는 대답했다.


“나도 몰라. 원하는 말이 나올 때까지 계속 질문해야지.”


박 경사는 성 기자의 차를 멀찌감치 세우게 하고 정경수의 집으로 가는 골목을 살폈다. 차도 없고 사람도 없었다. 역시 형사들은 노인 실종 수색에 동원되어 아무도 없었다. 땅바닥에 빨간 테이프만 붙여져 있었다. 박 경사는 주변 들판까지 둘러봤지만 모기 한 마리도 없었다.


“사건 현장이 뭐 이리 허술해? 이건 기사로 쓸 수도 있다.”


성 기자가 농담을 했다. 박 경사는 농담을 받는 대신 성 기자의 휴대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녹음은 안 돼.”


“야, 봐줘.”


“안 돼. 이리 내놔. 끝나고 줄게.”


“알았다, 현순 씨 봐서다.”


박 경사는 성 기자의 스마트폰을 받아 자신의 휴대폰과 같이 전원을 껐다. 만일의 경우 위치추적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오늘 밤 살해 동기를 알아내지 못하고 성 기자에게 피의자를 만나게 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수사팀장의 보호도 끝장이었다.


10분 정도 걸어서 두 사람은 정경수의 집 앞에 다다랐다. 빨간 벽돌과 하얀 창틀을 댄 전형적인 농가 주택이었다. 안은 어두웠다.


“아버님, 계세요? 저 준우예요. 냇마을 살던.”


성 기자는 짐짓 인사를 하며 현관문을 두드렸다. 박 경사가 속삭였다.


“열려 있어. 순경들이 못 잠그게 하거든.”


“자식아, 가만있어. 아버님, 아버님? 준우예요. 준우. 문 열어주세요.”


성 기자는 참을성 있게 노크를 했다. 5분이나 걸렸을까, 거실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그림자가 비치더니 현관에 불이 들어왔다. 성 기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버님, 준우예요. 서울로 대학 간 준우요. 문 좀 열어주세요.”


몇 초가 흘렀다. 박 경사는 한여름인데도 왠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현관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러닝에 팬티만 입은 노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집에 감금되어 있던 정경수였다. 아내의 작은아버지를 보는 순간 박 경사는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정경수는 불과 한 달 만에 폭삭 늙어 있었다. 살이 근 20킬로는 빠졌는지 깡마른 몸에 뼈가 여기저기 불거져 나와 있었다. 머리카락도 거의 다 없어지고 눈썹까지 하얗게 세었다. 박 경사는 혹시 잘못 봤는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분명 정경수였다.


“아버님 뵈러 왔어요.”

현관문이 소리 없이 젖혀지고 성 기자가 들어섰다. 박 경사는 성 기자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거실은 수색 당시 그대로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흘깃 부엌을 보았지만 불이 꺼져 있었고 바닥에도 먼지가 하얗게 덮여 있었다. 사람이 오간 흔적이 없었다. 집 밖에 못 나가는 정경수가 식사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순경들이 돌보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박 경사는 뒷머리에 피가 쏠렸다.


정경수가 마룻바닥을 가리키며 우물거리듯 말했다.


“여기 암 데나 앉어.”


“예.”


성 기자는 들고 간 소주병을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바닥에 앉았다. 정경수도 꼬치꼬치 마른 다리를 접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박 경사는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조카사위인 자신의 얼굴을 영 모르는 눈치였다. 그동안 망령까지 난 것인가. 성 기자가 다시 말을 붙였다.


“아버님, 약주 사 왔는데 드시겠어요?


“술?”


그제야 정경수는 박 경사를 쳐다보았다. 성 기자가 얼른 말했다.


“아버님, 저 조독일보 기자예요. 이 친구랑은 고등학교 친구예요. 제가 일부러 허락받고 아버님 뵈러 왔어요.”


박 경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정경수는 엄마에게 먹어도 된다는 허락을 간신히 받은 아이처럼 술을 받았다. 성 기자는 가져온 편육도 풀었다. 박 경사는 아내에게 죽이라도 쑤어 오라고 할 걸 후회했다. 저런 꼴이면 구속이 되어도 금세 보석으로 풀려날 것 같았다.


정경수는 농사일에 단련된 농민답게 소주 한 병을 금방 비웠다. 두 병이 비워지자 박 경사는 구급차를 부르고 경위서를 쓸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성 기자는 인내심 있게 잔을 채워주면서 정경수가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


“간만에 잘 마셨네.”


소주 세 병이 비었다.


“아버님, 저 기자인 거 아시죠?”


“알어. 취재하러 왔지? 술도 멕이고.”


“알면서도 다 드셨네요.”


“그럼 있는 술을 먹지, 안 먹어?”


정경수가 웃자 앞니가 다 빠진 잇몸이 드러났다. 구십 살 노인 같았다. 박 경사는 차마 보지 못하고 눈길을 떨어뜨렸다. 사건 전 치아는 모두 멀쩡했다. 그런데 지금은 제대로 붙어 있는 치아가 서너 개에 불과했다.


성 기자가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아버님. 제가요. 궁금한 게 있어서 일부러 왔어요.”


“궁금하겠지.”


“제가 뭐가 궁금한지 벌써 아세요?”


“다 알지. 알어.”


“그게 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세요?”


“말씀? 허허…… 말씀? 그게 뭘까? 뭘까나…….”


정경수는 고개를 비틀더니 손자에게 장난치는 할아버지처럼 히히거렸다. 사건을 다루는 형사인 박 경사도 들어본 적 없는 긁는 듯한 웃음소리였다. 집안이 진공실로 변하는 듯 박 경사의 가슴이 조여들었다. 그때 성 기자가 눈짓했다.


“빨리 술 더 사와. 빨리.”


지금 나가면 안 되었다. 피의자와 기자를 단둘이 두다니 안 될 말이었다. 하지만 박 경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딛고 일어서서 정경수의 집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열대야의 밤공기가 얼음물처럼 덮쳤다.


가게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사들고 돌아오자 성 기자가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박 경사는 사 온 물건을 수돗가에 던지다시피 내려놓고 담배를 더듬으며 찾았다. 성 기자가 담배를 꺼내 주었다. 박 경사는 산소 줄 빨 듯 연기를 들이마셨다.


“현순 씨 작은아버님, 월남전 갔다 오셨어?”


성 기자가 말했다.


“월남전? 난 잘 몰라.”


“너 나가고 나서 월남전 말씀을 하시더라고. 고엽제 때문에 자기가 그렇게 마르셨대. 원래 그렇게 마르셨니?”


“아니. 사건 나고 20킬로는 빠진 거야. 막걸리는? 막걸리 얘긴 없었어?”


“없었어.”


성 기자는 담배 연기를 반딧불에다 대고 뿜었다.


“지금 정부가 사방에 고엽제를 뿌려대서 다 죽고 자기도 죽을 날만 기다리신대. 피해자 얘길 하니까 고엽제 때문에 죽었다고, 농사 때 쓰는 그라목손이 고엽제랑 똑같은 거라고 하시더라니까.”


“고엽제 때문에 피해자가 죽었다고?”


“내 생각엔 정신감정 의뢰해서 결과 따로 제출하는 게 좋겠다. 난 혹시 모르니까 고엽제 피해자 조회해볼게. 피해자가 월남전 참전했을 수도 있으니까.”


“정신이상으로 가자는 거냐.”


“너 이런 얘길 조서로 어떻게 쓸 건데. 나도 기사로 못 써. 현순 씨한테 안 됐지만, 정신감정밖에 수가 없다.”


박 경사는 기가 막혔다. 방금 본 정경수는 제정신으로 보기 어려웠다. 설마 나 모르는 사이에 형사들이 고문이라도 한 것인가. 그럴 리가. 박 경사는 도리질 쳤다.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부엌이 떠올랐다. 박 경사는 집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버님, 아버님, 저 박서방입니다. 주무세요?”


박 경사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형광등 불빛이 뿌옇게 켜져 있었다. 정경수는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술을 그리 마셨는데도 얼굴은 창백했다. 발치에는 빈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 박 경사는 정경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안색을 살피면서 나직하게 말을 걸었다.


“저 기억 안 나세요? 저 현순이랑 결혼한 박서방이에요.”


정경수는 흐릿한 눈빛이지만 처음으로 박 경사와 눈을 맞추었다. 박 경사는 정경수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아버님, 저는 전혀 몰랐어요. 오늘 알았어요. 작은어머님이랑, 조카님 이야기.”


정경수는 박 경사의 말을 듣고도 얼굴이 움직이지 않았다. 박 경사는 두근대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달래면서 한 마디씩 꺼냈다.


“오래전 일이지만, 예비군 훈련 가셨다가 오는 길에, 유, 유성이 아재랑 술 잡수시다가 집에 느지막이, 새벽에 들어가셨다고요. 그런데, 집에서, 작은어머님이랑, 조카님이…….”


정경수가 고개를 돌려 박 경사를 바라보았다. 거칠고 주름진 목울대가 떨리고 있었다. 박 경사는 숨을 죽였다.


“……그것들도 막걸리였지.”


한참 만에 정경수가 말했다. 박 경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날 일찍 들어가셨더라면, 했는데, 유성이 아재한테 지금껏 말 한마디 못 들으셨다고.”


정경수는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박 경사는 숨을 죽이고 정경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혹시 그대로 숨을 거둔 게 아닌가 해서 정경수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댔다. 미약하지만 숨은 쉬고 있었다. 이윽고 박 경사는 홑이불을 찾아다가 잠든 정경수를 덮어주고 현관을 나섰다.


맑은 밤하늘에 여름 별이 흩어져 있었다. 공기가 좋다던 성 기자는 하늘은 쳐다도 안 보고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말씀 좀 들었어?”


“너, 이거 기사 쓸 거야?”


성 기자는 고개를 저었다.


“방금 문자 왔는데 대검에서 뇌물 수수 건 터졌다. 데스크에서 칙칙한 막걸리 사건 따위 집어 치고 빨리 올라오래. 그리고 너 아무리 시골 산다지만 처가에 그렇게 관심이 없으면 어떡하냐? 울 아버지 먹는 거랑 똑같잖아.”


성 기자는 손에 쥐고 있던 약봉지를 박 경사에게 휙 던졌다.


“이게 뭔데?”


“항암제다. 이 불효자식아.”


박 경사는 얼떨결에 받은 약봉지를 꼭 쥐었다.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물결이 가슴에 밀려왔다. 그 물결에 오래된 원한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노인들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우린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아직 살 날이 많은 우리는 마음에 앙금을 쌓아놓고 살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않을까.


마음이 가라앉자 성 기자의 제안대로 해결 방법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정경수에게 정신감정을 받게 하고 입원시키면 당분간 구속 수사를 면할 것이다. 더구나 암에 걸렸다면 보석으로 풀려날 수도 있다. 마침 서울에서 큰 사건이 터졌다니 여론의 비난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만 되면 아내와 장모를 볼 낯이 선다.


정작 성 기자는 박 경사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아우, 공기 좋다. 서울 올라가기 싫다. 윤호야, 어디 임자 없는 땅 있냐? 나도 이젠 귀농이나 할까 보다.”


박 경사는 대답 대신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준우에게 땅을 넘기고 아내 말대로 발령을 받아 이사 가면 어떨까. 속에 쌓아둔 것들을 남겨놓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민숙이와 동석이도 준우네처럼 유학을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박 경사는 그 생각을 하면서 성 기자를 슬며시 보았다. 성 기자의 옆얼굴에는 고등학교 시절 보지 못한 가뭇한 그림자가 내려와 있었다.(끝)




keyword
이전 06화[단편소설] 원한(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