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원한(2)

by 주애령

“야, 어디 가?”


“혼자 먹어라.”


“제수씨 얘기해서 열 받았냐? 너 혹시 이혼했어?”


“그래, 도망갔다. 안 산다. 너 기자니까 한번 찾아봐라.”


박 경사는 식당 밖으로 나왔다. 국도 한복판이었다. 서에 전화해서 차로 데리러 오라고 해야 했다. 그러나 때맞춰 휴대폰 배터리가 바닥나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성 기자의 질문이 불쾌한 게 아니었다. 기자가 형사에게 탐문하는 건 당연했다. 고까운 건 말씨였다. 마치 서탄 사람이 아니란 듯 툭툭 내놓는 말씨가 심하게 불쾌했다.


박 경사는 분노를 누르며 미세먼지를 헤치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다음 날 박 경사는 주차장에 성 기자의 차가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자리에 들어갔다. 후배 형사들은 꾸벅했고 수사팀장은 아는 체하지 않았다. 성 기자와 밥 먹으러 간 게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유리 녀석이 눈치 없게 돌아다니면 안 되겠다 싶어서 단속하러 일어섰다. 시선들이 슬금슬금 따라왔지만 수사팀장 것은 없었다. 유리 이 녀석 어딨어. 어디에 혼자 처박혀서 담배 뻑뻑 빨고 있나.


유리는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았다. 성 기자와 같이 피우고 있었다.


“아, 삼촌.”


박 경사를 본 유리가 반갑게 일어섰다. 평소처럼 박 경사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성 기자님이 삼촌 동창분인 줄은 첨 알았어요. 진작 말씀해주시지. 저 성 기자님 회사 경력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옆에 서 있던 성 기자가 씩 쪼갰다.


“윤호 니 조카라면서? 똘똘하더라. 기사만 잘 쓰면 금방 붙겠어.”


“서울에 똑똑한 사람 많을 텐데요.”


“기사 보고 뽑지 사람 보고 뽑나. 걱정 마.”


성 기자는 미소 지으면서 유리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한 대 더 피워. 서울 여기자들은 다 당당히 펴.”


유리는 담배를 받아 들고 성 기자가 붙여주는 라이터에 고개를 숙였다. 박 경사는 주먹에 힘이 들어갈까 봐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성 기자가 유리에게 뭐라고 계속 말을 걸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둘이 속닥거리는 걸 보자니 사비를 털어 기자들 술을 먹인 수사팀장의 배려가 새삼 가슴에 벅차왔다. 성 기자가 유리에게 일제 담뱃갑을 통째로 건네자 박 경사는 부르르 땀까지 흘렸다.


휴게실에서는 형사들이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요즘 형사들에게 원한 관계 규명은 마치 대학 논술고사 문제 같았다. 원한 관계요? 원한도 관계가 돼요? 자식아. 서로 원한을 품으면 관계가 되지. 아, 예. 그런데 같은 동네 살면서 매일 얼굴 보는 사람들끼리 무슨 원한이 생긴대요?


원한 관계가 아니면 동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박 경사는 후배들이 떠드는 소리를 뒤로 하고 차에 들어가 앉았다.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사건을 차근차근 정리하기 시작했다. 피의자 정경수와 피해자 서유성의 관계를 아무리 파도 새로운 사실은 나오지 않았다. 채무도 원한도 없었다. 둘 다 얌전한 성격이라 작은 말다툼도 없었다. 남과 부딪치기 싫어하고 꼭 할 말도 돌려서 하거나 아예 안 하는 조용한 사람들이었다. 형사들 틈에서도 저렇게 공기처럼 조용한 사람인데 우리가 사람 잘못 잡은 거 아니냐는 군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모든 증거는 정경수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로지 동기가 문제였다. 거기서 생각이 막혀버렸다.


생각이 막히자 사건이 사라지고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내 정현순은 고등학생 시절 동네에서 제일 예쁘다는 소리를 듣던 소녀였다. 그때는 성 기자도 현순이가 지나가면 여드름이 부끄러워 도망가던 소년이었다. 현순이는 짐승 같은 남고생들 중에서 어렸을 적 소꿉친구였던 박 경사만 피하지 않고 대했다. 현순이네 집도 동생들이 많았다. 식구 많은 집의 야무진 맏딸과 동생들 뒷바라지 노릇은 맡아놓고 태어난 장남이었다. 둘은 세상과 싸워 동생들을 키워내자는 동지 의식으로 맺어졌다. 간호대학에 간 현순이는 간호사가 되어 박 경사와 결혼했다. 두 아기도 태어났다.


그랬던 정 간호사는 직장인 보건소에도 못 나가고 집에 앉아 눈물방울만 떨어뜨리고 있었다. 삼촌이 막걸리에 그라목손을 탔으면 조카가 주사약에 뭔들 못 타나. 무서워 죽겠어. 정 간호사는 이런 말이 무서워 죽겠어서 휴직을 신청했다. 휴직을 신청한 뒤에도 좌불안석이었다. 돌아와 일하라는 말이 보건소에서 얼른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애를 태우던 정 간호사는 이젠 아주 이사 갈 의논을 냈다.


“혹시 발령 다른 데로 받을 수 있어?”


“왜?”


“멀리. 이사 갈 수 있나 해서.”


박 경사는 정 간호사가 가여웠다. 쓰다듬고 싶었지만 독한 니코틴 냄새가 미안해서 손을 뻗다가 거둬들였다. 대신 방바닥을 짚고 일어서며 말했다.


“신문 절대 보지 말고, 테레비도 켜지 마.”


“애들은? 테레비 못 보게 하면 난리 날 텐데.”


“뉴스만 보지 마. YTN 그런 것도 다 잠가놓고. 나 이만 들어갈게.”


박 경사는 일어섰다. 그리고 며칠 뒤 억세게 후회했다.


아이고. 인터넷 하지 말라고 해야 했는데. 그걸 까먹었네.


정 간호사는 그야말로 멘붕이 되어버렸다. 장모가 몰래 찾아와 간호하는 눈치였다. 이제 장모 보기가 미안해 집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수사가 종결되어야 숙직실 신세도 면할 참이었다.


차 안에 앉아 생각에 잠긴 박 경사의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아들 동석이었다. 이놈이 웬일로 아빠한테 전활 다 걸어. 집에 안 들어오는 아빠를 걱정하는 겐가. 박 경사는 은근히 반가운 마음이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 동석이냐?”


“아빠! 큰일 났어! 집에 빨리 와!”


박 경사가 현관문을 열자 정 간호사는 거실 바닥에 앉아 가슴을 누르고 있었고 딸 민숙이는 체육복 차림으로 울고 있었다. 동석이는 광에 넣어둔 죽검을 든 채 교복을 눈앞에 버쩍 내밀었다. 중학생 민숙이의 교복이었다.


“이거 민숙이가 베란다에서 몰래 태우려다가 나한테 딱 걸렸어. 아빠, 이런 새끼들은 경찰에서 잡아다 죽여버려야 돼!”


박 경사는 교복을 펼쳤다. 교복에는 마커로 ‘막걸리’ ‘살인자’ ‘죽여’ 따위가 낙서되어 있었다. 교복을 본 정 간호사는 기절했다가 겨우 깨어난 터였다.


“동석 엄마, 괜찮아? 이제 괜찮을 거야.”


박 경사는 정 간호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개새끼들, 다 죽여버릴 거야.”


동석이가 죽검을 휘둘렀다. 박 경사는 정 간호사를 감싸 안은 채 딸을 돌아보았다.


“넌 다친 데 없니?”


민숙이가 고개를 저었다. 동석이가 소리를 질렀다.


“이 바보야, 이번엔 괜찮아도 다음에는 안 다친다는 보장 있어?”


동석의 말이 박 경사의 명치를 쿡 지르는 듯했다. 박 경사가 정 간호사의 어깨에서 손을 풀자 정 간호사는 모래성이 무너지듯 스르르 바닥에 누웠다. 때맞춰 박 경사의 휴대폰이 울렸다. 경찰서에서 오는 전화 벨소리였다. 정 간호사는 누운 채 아기처럼 살며시 박 경사를 밀었다. 서로 가라는 뜻이었다.


박 경사는 민숙이에게는 손도 내밀지 못한 채 무거운 다리를 짚고 일어섰다.


“엄마랑 동생 잘 지켜라.”

이를 갈고 있는 동석의 눈앞에서 박 경사는 현관문을 닫았다. 담배로 끌 수 없는 분노가 손끝까지 넘치고 있었다. 낙서한 놈들을 찾아내면 정말 원한 관계로 인한 살인이 되고도 남을 것 같았다. 혈압이 하도 올라 이마가 욱신거렸다.


차에 올라타자 띵 하고 문자가 왔다. 화면에는 ‘장모님’이라고 떠 있었다. 아이고. 장모님, 제가 죽일 놈입니다. 박 경사는 눈을 꽉 감고 손바닥을 맞비볐다. 심호흡을 하고 이를 악물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리고 휴대폰 화면에 장모가 보낸 문자를 띄웠다.


내용은 뜻밖이었다. 박 경사는 눈을 비비고 장모의 문자를 꼼꼼히 읽었다. 장모의 말이 사실이라면 원한 관계가 성립될 근거가 생긴다. 횡격막이 목구멍으로 치받치도록 뛰는 가슴을 누르고 박 경사는 서로 향했다.



서는 웬일로 텅 비어 있었다. 유리만 혼자 박 경사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또 노인 실종이에요. 이번엔 수색 지역이 넓어서 다들 나가셨어요.”


이미 일몰 후였다. 환한 가로등이 깨끗한 주차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박 경사는 엉덩이가 푹 꺼진 낡은 소파에 앉았다. 텅 빈 서는 거두다 만 논밭처럼 어수선했다.


“삼촌, 저희 집 이사 가요.”


“이사? 어디로?”


“저기 하사리에 새로 지은 아파트요.”


“언제?”


“다음 달이요. 요새 할머니가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니까, 아파트에 살아야 아무래도 안전하실 것 같아서요.”


“잘됐구나.”


“저는 큰일 났어요.”


유리는 고개를 숙였다.


“큰일은 왜.”


“분양가가 너무 세서 20평형대밖에 못 맞춰 가거든요. 그래서 제 방이 없어졌어요. 정 있으려면 오빠나 할머니랑 방을 같이 써야 돼요. 책상은커녕 노트북 놓을 자리도 없어요.”


“그러면 어떡하기로 했니?”


“일단은 부대끼면서 지내다가 제가 나가야죠. 오빠는 장남이니까 집에 있어야 되고.”


박 경사는 어디로 나가려느냐고 물으려다가 입술을 꼭 붙였다. 서울에서 경력 기자를 뽑는다던 성 기자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성 기자가 주는 담배를 열심히 받아 피우던 유리의 모습이 겹쳐졌다. 갑자기 조카가 가여워졌다.


“삼촌.”


유리의 말씨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막걸리 살인사건 다 숨기셔도 다 알아요. 숙모 작은아버지시죠?”


“뭐?”


“저도 기자잖아요. 헤헤.”


유리는 씩 웃었다. 억지웃음이 아니라 진짜 웃음이었다. 박 경사는 처음으로 유리가 기자처럼 보였다. 지역 기자는 술 사 먹이고 입 막을 수 있지만 중앙에서 온 성 기자가 서탄에 온 지 벌써 이틀째였다. 빨리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야 한다. 질질 끌 시간이 없었다. 박 경사는 피곤한 몸에 달라붙는 소파를 억지로 떼치고 일어섰다.


“유리야, 성 기자 명함 있지?”



성 기자는 읍내 여관에 머물고 있었다. 박 경사는 이번에야말로 의아해졌다. 성 기자의 아버지도 상경한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성 기자가 며칠 얻어 잘 친척 집은 서탄에 천지였다. 그걸 굳이 놔두고 여관에 투숙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박 경사는 성 기자가 묵고 있는 피시방 위 여관으로 바로 올라갔다. 러닝에 트렁크 팬티만 꿴 성 기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에어컨이 맛이 가서 여기 덥다. 너도 좀 있다 벗어.”


“내가 다방 레지냐. 좀 있다 옷 벗게.”


박 경사는 소주병과 담배꽁초와 노트북이 굴러다니는 방바닥에 앉았다.


“여관까지 웬일로? 뭐 해줄 얘기 있어?”


“너 작은아버님 댁에서 안 자? 고모님도 한두 분이 아닌데 왜 여기서 궁상을 떨어?”


“다 못 가는 이유가 있어. 묻지 마.”


“왜. 원한 관계라도 있어?”


박 경사는 저도 모르게 말하고 나서 홀린 듯 손으로 입을 막았다. 다행히 성 기자는 소주잔을 찾느라 돌아서 있었다.


“넌 공무원이니까 서울로 올라올 수 있어도 나는 못 내려가. 아버지도 고향에 살기 힘든 이유가 있어서 올라가신 거고. 난 요새 아주 죽겠어. 하우스푸어라고 들어봤냐? 지방엔 그런 거 없지?”


“왜 없어, 그런 거.”


“난 대출금에 유학자금에 죽지도 못하고 미치겠어. 요새 환율 올라서 웬만한 기러기는 다 돌아왔는데 왜 우리 마누라랑 딸은 안 오는지 몰라. 이건 완전히 쌩 이혼이다, 이혼.”


성 기자는 구시렁거리면서 화장실에서 씻은 소주잔을 들고 나와 방바닥에 앉았다.


“그럼 서울에서 아버님이랑 너랑 둘만 사는 거냐?”


“뭐, 그렇지. 마누라랑 딸은 방학 땐 들어오는데 둘이서 영어로 얘기하면서 아주 신났다. 난 껴주지도 않고. 서울에서 신문 기자면 이제 알아주지도 않아. 신문이란 매체 자체가 시대에서 밀려나고 있잖냐. 지방에서나 조독일보면 우와 하지 이젠 서울에선…… 몰라. 마시자.”


박 경사는 담뱃불을 붙이는 대신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켜고 마른오징어를 얹었다. 성 기자는 수다를 멈추고 두 잔 연속 꺾었다. 박 경사는 성 기자의 잔을 채워주고 자기 잔도 채웠다. 교복에 낙서를 당하더라도 딸이 곁에서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소주 한 병이 비었다. 술이 들어가자 복잡한 마음이 천천히 개켜지는 것 같았다.


박 경사는 장모가 보낸 문자만 빼고 사건을 모두 설명했다. 살해 동기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말도 했다. 성 기자는 노트북을 여는 대신 박 경사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현순 씨 작은아버님이라고? 나 큰 실수할 뻔했다. 미안하다.”


“괜찮다.”


“살해 동기를 빨리 찾아야 사건 종결이 될 텐데 맘고생이 이만저만 아니겠구나.”


“아직 버틸 만해. 하지만 동기를 빨리 찾아야겠다.”


“재심문은?”


“내 눈치 보느라 말이 안 나오는 것 같아.”


성 기자는 눈썹을 찌푸리고 담배를 물었다. 박 경사가 말했다.


“사건 정리만 되면 보도가 한두 번 나가는 것 정도는 우리도 참을 만해. 그렇지만 질질 끌수록 애 엄마가 죽을 지경이야. 빨리 동기 찾아내서 검찰 올리고 몇 주 엎드려 있으면 끝나겠지. 그럼 복귀해서 일도 할 수 있겠고…….”


교복을 들고 씩씩대는 동석이와 울고 있는 민숙이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박 경사는 일단 눌러놓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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