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살인사건의 첫 번째 수사 보고가 열리는 날이었다. 박 경사는 회의실 복도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수사팀장이 제일 먼저 와서 앉아 있었고 후배 형사들이 박 경사의 뒷모습을 흘깃거리며 한 명씩 들어갔다. 시선을 받는 등짝이 화끈거렸지만 박 경사는 여전히 담배를 태웠다. 끊은 지 10개월 만에 피우는 담배였지만 맛이 썼다. 회의실에 모인 형사들은 박 경사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박 경사는 필터까지 담배를 태우고 창틀에 비벼 끈 다음 회의실로 들어갔다.
수사팀장은 맨 끝 의자에 앉은 박 경사를 슬쩍 쳐다보고 말했다.
“자, 보고 시작해.”
이 경장이 서류를 펼쳤다.
“중간보고 시작하겠습니다. 에, 서탄 세오리 22번지에 거주하는 피의자 정경수는, 바로 옆집인 23번지에 거주하는 농민 서유성과 약 45년간 이웃사촌으로 지내온 사이였습니다. 지난 6월 15일, 정경수는…….”
“다 아는 얘기 빼고 본론만 얘기하자.”
수사팀장이 손을 흔들었다. 이 경장은 침을 삼키고 박 경사를 훔쳐본 뒤 말을 이었다.
“예, 말씀하신 대로 본론만 보고하겠습니다. 지난 6월 15일 오후 3시경, 피의자 정경수는 자택에 머물던 중 방문한 피해자 서유성을 살해했습니다. 살해 방법은 독살, 즉 막걸리에 그라목손, 그러니까 재작년에 단종된 제초제를 몰래 섞어 마시게 하여 살해했습니다. 피해자 부검 결과 제초제 성분이 검출됐고, 유서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타살 여부 수사에 나섰습니다. 국과수의 판정에 따라 피해자 서유성의 사망 전 행적을 추적하여 정경수의 제초제 소유와 서유성과의 접촉을 확인했습니다. 피의자는 바로 자백했고, 건강 상태의 고려와 도주 우려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구속하지 않고 자택에 연금 중입니다.”
“구성요건은 다 충족한 거지?”
“예, 자백받았고, 남은 제초제도 증거로 확보했고, 혹시 몰라서 지문도 채취했습니다. 이 정도면 기소는 문제없을 걸로 압니다. 워낙 초동수사를 잘해서…….”
“그 얘긴 됐고, 동기가 뭐야?”
수사팀장이 다시 손을 들었다. 이 경장이 머뭇거렸다.
“그게 문젭니다. 동기가 없습니다.”
“동기가 없어?”
“없습니다. 살해 동기가 안 나옵니다.”
“살해…….”
서 경장이 말을 하려다 침을 삼켰다. 박 경사는 담배로 손을 뻗었다. 수사팀장이 끊지 말고 계속하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다.
“피의자 피해자 관계는 다 추적해봤어? 채무 관계는?”
“12년 전에 피해자가 피의자한테 200만 원을 빌려준 적이 있지만 다 갚았습니다. 이자는 몰라도 원금은 확실히 다 갚았답니다.”
“원한 관계는?”
“그럴듯한 게 없습니다. 주변에도 탐문했지만, 피의자가 크게 싸우거나 원한 같은 걸 만든 적이 없답니다. 일단 오래전에 상처하고 혼자 사는 데다 워낙 조용한 성격이고요, 사람 살면서 조금씩 다툴 수는 있겠지만 살인까지 갈 정도는 전혀 아닙니다. 별다른 게 없습니다.”
“음…….”
수사팀장은 나직이 한숨 쉬었다.
“동기가 없다.”
“예, 그게 유일한 문젭니다.”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이 경장은 보고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듯이 가볍게 숨을 고르며 서류철을 덮었다. 박 경사는 담뱃갑에 손을 뻗었다.
“동기만 찾으면 되겄네, 뭘.”
서 경사가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드는지 툭 내뱉었다. 박 경사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수사팀장이 서류철을 테이블에 던졌다.
“잘 알았고, 주변 탐문 계속해서 범행 동기 찾아봐. 동기만 찾으면 바로 검찰에 올려 보낼 테니까. 기자들 얼쩡거리는데 잡소리 나오지 않게 하고. 이걸로 해산.”
평소 3분의 1도 안 되는 시간으로 수사 보고가 끝이 났다. 수사팀장이 제일 먼저 회의실을 나섰고 형사들이 강아지 떼처럼 줄줄이 따라 나갔다. 박 경사는 홀로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회의실을 나오자 점심시간이라 관내에 사람이 없었다. 배달을 시켜 먹을까 하다가 그만두고 슬리퍼를 구두로 갈아 신었다. 7월의 햇빛 속으로 나오자 눈이 부셨다.
“야, 윤호야!”
주차장에 서 있던 성 기자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노트북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박 경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점심이나 같이 먹을까 해서 찾았다. 어디로 갈까.”
어느새 성 기자는 박 경사의 코앞까지 다가와 얼굴을 디밀었다. 박 경사는 고개를 돌리며 아무렇게나 대꾸했다.
“뭐, 아무 데나 가.”
“우리가 지금 몇 년 만에 보는데 아무 데나 가냐. 어디 맛있는 데 없어?”
“몰라, 대충 찾아봐.”
“그래, 맛집 검색하면 다 나온다.”
박 경사는 무거운 다리를 끌고 성 기자의 차에 탔다. 성 기자는 노트북을 뒷자리에 밀어 넣고 운전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내어 검색을 시작했다. 몇 분 후 성 기자는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박 경사가 퉁명스레 말했다.
“언제 내려왔냐.”
“오늘 새벽에 나왔지.”
“성묘는 했고.”
“추석도 아닌데 성묘는 무슨. 잘 있으면 그만이지.”
“그래도 네가 우리 동기 중에서 제일 잘됐는데 조상님께 절이라도 해야지.”
“잘되긴 뭐가 잘 됐냐. 살기 힘들어 죽겠다. 그래도 오랜만에 고향 내려오니까 너무 좋다. 공기도 좋고.”
성 기자는 선글라스를 꺼내어 썼다.
“서울은 요새 정신없어. 기사 클릭 수에 따라 그날그날 매출이 달라지거든. 데스크에선 클릭 수 높일 기사 없냐고 징징대고. 아쉬우면 지들이 발로 뛰면서 써보든가, 흥. 공들여 심층 취재해야 한다고 우기고 우겨서 출장비 받아 왔다. 고향 경제에 기여 좀 해보자.”
45년 된 이웃사촌에게 제초제를 탄 막걸리를 먹여 살해한 사건. 피의자와 피해자는 이웃사촌일 뿐만 아니라 학교 동창이었고, 같은 공장에 다녔으며 마을 청년회와 조기 축구회를 거치면서 친목이 두터운 사이였다. 돈 문제만 아니라면 서로 얼굴 찡그릴 일이 없었다. 그런 이웃 사이에서 살인사건이 났다. 더구나 서탄이 자랑하는 특산품 막걸리를 먹여 죽인 사건이었다. 덕분에 서탄의 막걸리 매출은 발길로 차이듯 툭툭 꺾였다. 클릭 수에 목마른 서울 중앙지들이 제일 먼저 기사를 썼고, 사정 알 만한 지역 언론 기자들도 수사처에 나타나 기웃거렸다. 3일 전 수사팀장이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술을 샀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박 경사는 그 말을 듣고 수사팀장이 저만치에서 걸어오기만 해도 얼굴이 벌게졌다.
“요샌 서탄이 아니라 사탄이래.”
성 기자가 운전대를 돌리면서 말했다.
“전국에서 기독교인 숫자가 제일 적어서 사탄들이 사는 도시가 됐다고 어느 큰 교회 목사가 그러더라. 미친놈, 나부터 욕을 해줬지.”
피의자 정경수가 제초제를 구입한 행적은 박 경사가 탐문 결과 알아낸 것이었다. 제초제요? 한여름에나 쓰지 아직은 쓸 일이 없는데? 구입 내역 장부에 앉은 먼지를 털면서 농기구 가게 주인이 말했다. 박 경사는 장부를 가게 밖으로 들고 나와 햇빛 아래에서 이름을 체크했다. 장부는 3년 치였다. 옆에서 보던 농기구 가게 주인이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재작년에 정 씨 아저씨가 한 통 사간 적은 있네. 박 경사는 그 자리에서 주민번호와 이름을 메모했다. 그때 이름을 보고 바로 생각해내지 못한 게 탈이었다. 승진 시험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핑계를 댔지만 힘없는 변명이었다. 정경수는 다름 아닌 아내의 작은아버지였다. 워낙 조용한 성격이라 명절에도 슬며시 얼굴만 비추고 빠져나가는지라 말 주고받을 틈이 없었다. 아내는 힘없이 말했다.
“미리 알아서 마음의 준비라도 했으면 이렇게 황망하진 않잖아.”
서탄에서 보기 드문 강력사건이기에 수사팀장은 발생 초기부터 취재에 함부로 응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 엄명에서 박 경사의 오촌 조카 유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방지에 갓 취직해 막내기자로 언론인의 삶을 시작한 유리는 한창 사쓰마와리 생활에 치이고 있었다. 박 경사와 친한 형사들은 박 기자라고 부르는 대신 유리야, 하고 강아지 부르듯 했다. 그럴 때마다 유리는 잠을 못 자 뾰루지가 돋은 얼굴에 억지웃음을 지었다.
참으로 평화로운 서탄이여.
서 경사의 푸념처럼 원래 서탄 강력계 형사들은 할 일이 없었다. 애들이 적으니 청소년 범죄도 없었고 성범죄도 드물었다. 절도 강도가 나와봤자 훔친 물건은 장바닥에 금방 나왔다. 혹시 방화범이 나온다면 마을 사람들이 몽땅 떨치고 나와서 잡아올 것이었다. 예전에 바다이야기 단속을 하러 다닐 적에도 친척 아니면 친구 아니면 친구의 친척이라 잡아오기도 면구스러웠다. 만 원짜리 하나 걸고 하는 것도 못 하느냐며 경장님도 좀 하다가 가라고 소매나 안 잡으면 다행이었다. 무슨 사건이 나든 조서 작성해서 중앙에 올리고 나면 할 일이 없었다. 이런 동네에 살인사건이 터지자 형사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평소 서탄 강력계의 주된 사건은 노인 실종이었다. 고사리를 뜯거나 산속 텃밭에 갔다가 방향감각을 잃은 노인들이 집에 못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 박 경사는 물론 수사팀장까지 지원 나온 전경, 공익요원들과 나란히 손을 잡고 산과 들을 훑었다. 대부분 그날 안으로 찾아내지만 가끔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다. 죽었든 살았든 찾아낸 노인을 앰뷸런스에 실으면 유리가 같이 올라타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붙이면서 안정도 시키고 취재도 겸했다.
한 식구 같은 박유리 기자도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형사들도 볼 때마다 밥을 먹이던 박유리 기자를 못 본 척하고 저들끼리 담배 피운다며 도망쳤다. 참으로 가, 족같은 강력계는 다들 입에 지퍼를 채운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박 경사는 김치찌개 집에 성 기자와 마주 앉아 있는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먹자.”
성 기자는 대뜸 소주 주둥이부터 비틀었다.
“지방은 음주 운전해도 괜찮아서 좋더라.”
박 경사는 성 기자의 속셈을 알면서도 잔을 받았다. 술 먹이고 사건의 전말을 들으려는 고전적인 수법이었다. 성준우 기자는 박윤호 경사의 고등학교 동기였다. 박 경사가 공부도 더 잘했고 품행도 단정했건만 성 기자는 서울 소재 대학에 가고 박 경사는 경찰대에 갔다. 박 경사의 바로 아래 동생이 서탄 최고 수재라고 불릴 만치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었다. 성 기자는 대학 졸업 후 3대 중앙지 중 한 군데에 기자로 들어갔고 박 경사는 형사 생활을 시작했다. 박 경사의 수재 동생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떴다.
그놈만 일찍 죽지 않았어도. 한탄할 시간도 없이 형사 생활은 힘에 부쳤고 몸에 겨우 익힐 만하게 되자 서탄의 인구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힘겹던 강력계 생활은 꽃보직이라는 농담이 돌 정도로 한가해졌다. 이번 막걸리 살인사건이 나자 서탄 강력계 형사들은 수갑부터 찾느라 허둥거렸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정경수는 혼자 사는 집에 멀거니 앉아 형사들을 맞이했다. 형사들은 정경수의 손목에 수갑도 얼른 채우지 못했다. 채워야 되나, 뻔히 얼굴 아는 사이에 뭘 채우나 한참 말이 오갔다. 결국 수사팀장이 나섰다.
“야, 수갑이고 뭐고 일단 경찰서 가자. 가서 얘기해, 가서.”
박 경사는 후회막급이었다. 형사들이 정경수 집에 쫓아가던 바로 그 시간에 박 경사는 몰래 차 안에 숨어서 승진 시험 문제집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슨 대단한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그랬을까.
성 기자는 박 경사의 어두운 표정을 못 본 척하고 김치찌개 뚜껑을 열었다.
“먹자, 먹어, 다 먹자고 하는 짓 아니냐.”
뜨겁고 하얀 김이 두 사람 사이에서 무럭무럭 올라왔다. 성 기자는 숟가락으로 찌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기자생활 20년 만에 서탄에서 강력사건이 나니까 놀랐어. 네 생각도 나고. 사건이 거의 안 나는 지역이잖냐. 거기 형사들은 모처럼 몸 좀 풀었겠네? 오랜만에 현장에서 증거 확보하고 지문 채취도 했다면서?”
“난 안 갔어.”
박 경사는 수저를 드는 대신 소주잔 위에 담배 한 개비를 얹었다. 성 기자는 못 들은 척하고 떠들었다.
“내가 심층취재해보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지. 데스크도 고향이니까 한번 가보라고 했고. 와보니까 네가 사건 담당이라 너무 반갑더라.”
“아깐 출장비 따내느라 고생했다며. 그리고 나 담당 아니야.”
“어차피 같은 부서잖아. 한 부서에서 다 하는 거 알아. 형사도 몇 명 안 되고. 어때? 얼마나 진척됐어?”
“금방 검찰 갈 거야.”
“그런 보도 없던데?”
“우리 취재 안 받아.”
“언론 취재를 안 받으면 어떡해. 국민의 알 권리에 위배되잖아. 피의자까지 확보했는데 전말 보도가 안 나오면 국민들이 의혹을 제기한다고. 어떻게 돼가고 있어?”
“몰라.”
박 경사는 담배를 물었다. 성 기자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김치찌개 속 돼지고기를 푹 떠서 밥에 쏟았다.
“소주 안 먹냐? 막걸리 시켜줄까.”
“야.”
“제수씨는 잘 지내? 애들은?”
박 경사는 라이터를 켜다가 엄지가 미끄러졌다. 속에서 화기가 올라오지도 못하고 묵묵히 불만 지폈다. 성 기자는 돼지고기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박 경사를 바라보았다. 박 경사는 일어섰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