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돈(1)

by 주애령

돈은 발견될 때 검은 비닐봉지에 싸여 있었다.

동네 슈퍼에서 흔히 쓰는 얇고 바삭대는 비닐봉지였다. 비닐봉지는 길가에 얽힌 시든 넝쿨 틈새에 끼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빼고 비닐봉지 안을 들여다보았다. 서 있는 동안 추수가 끝난 계절의 싸늘함이 목덜미에 스며들었다. 공기는 바싹 말라 먼지 냄새를 품고 있었다. 산책하기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흐릿한 하늘이 땅 위를 내려다보면서 집안에 얌전히 있으라고 을러대는 듯했다.

몇 분 후 나는 비닐봉지를 끄집어내어 패딩 안주머니에 넣었다. 지폐가 힘없이 접히는 느낌이 가슴을 스쳤다. 조금만 걸으면 파출소였다.

파출소에도 외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내가 들어가도 담당 경찰들은 고속도로 휴게소 매표원처럼 자리에 못 박혀 있었다. 나를 보자 일어서는 사람은 김선영 경찰뿐이었다.

“박 대리님 오셨네요. 어쩐 일이세요?”

“돈을 좀 주웠습니다.”

“액수가 많은가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고 할 수 있죠.”

김선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서류를 끄집어냈다. 안쪽 사무실로 들어가서 둘이 마주 앉았다. 나는 건네주는 서류의 빈칸을 채우고 비닐봉지째 돈을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동안 김선영은 바스락대는 봉지를 살며시 열었다. 내가 길가에서 봉지 안쪽을 들여다보던 시간과 거의 비슷한 몇 분이 흘렀다. 이윽고 김선영은 고개를 들었다.

“액수가 애매하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일단 가지고는 왔습니다.”

“잘하셨어요. 좁은 동네니까.”

“습득하실 때 근방에 보는 눈은 없던가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돈 주울 때 주변을 살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요. 중요한가요?”

내 대답을 들은 김선영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면접 불합격 통보가 내일인데 지금 말해줄까 하는 듯 한 얼굴이었다.

“일 년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습득자가 갖게 됩니다.”

절차는 금방 끝났다. 유리문을 밀고 나가는 나에게 김선영이 명함을 건네면서 이상한 말을 덧붙였다.

“귀찮은 일 생기면 언제든 전화 주세요.”

한 달 전이었다. 동네 축제가 끝나가는 늦은 오후였다. 지평 막걸리에 대취한 한 아저씨가 축제 뒷마무리를 하려던 내 소매를 붙잡았다.

“야, 다음번엔, 나리 불러와. 나리. 걔 죽여. 나리를 몰라? 아니 나리를 모르면서 어떻게 마을 사람들이랑 이렇게 저렇게를 해...?”

누군지는 모르지만 동네 방구라면 일단 깨갱이었다. 아저씨가 내 양복 소매를 단단히 그러쥐고 있지 않았다면 진작 도망쳐서 스피커라도 나르는 시늉을 할 텐데 그럴 수도 없었다. 아저씨는 한참 동안 나리 걔 죽여, 죽여, 라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뒷덜미 잡힌 강아지처럼 두 손을 명치에 모으고 영업용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십여 분을 붙들린 채 똑같은 소리를 듣는 내 모습이 딱했던지 이 이장님이 다가와 소매에서 아저씨의 손을 떼어냈다.

“부회장님, 그만 붙잡고 가요.”

“아, 왜, 내가 지금 젊은 사람 사업 성공하는 비결 갈쳐주겠다는데 왜 방핼 해.”

“비결은 무슨 취해갖고. 가요, 가.”

막걸리 아저씨는 못내 아쉬운 듯 나리 걔가 끝내준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이 이장 손에 끌려갔다.

해가 느릿느릿 저물고 있었다. 행사장의 뿌연 먼지가 노을을 발갛게 물들였다. 조명이 제거된 무대에는 새카만 글씨로 ‘우자리 마을 축제’라고 적힌 현수막만 매달려 있었다. 천막도 거둬지고 수백 개의 의자들도 차곡차곡 포개져 트럭 뒷칸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두 시간 동안 동네 사람들이 앉아서 트롯 가수 노래를 들으면서 손뼉을 치고 경품을 다투어 챙겨가던 자리였다. 스피커와 앰프를 떼어내면 빨갛고 노란 무대도 조각조각 치워져서 황톳빛 공터가 원래대로의 몸통을 드러낼 차였다.

무대 앞으로 이 이장이 주머니에 손을 꽂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나는 잽싸게 달려가서 막걸리 아저씨처럼 이장님 소매를 날쌔게 붙들었다.

“이장님! 저, 오늘 감사했습니다.”

이 이장은 돌아보더니 아무 데나 대고 꾸벅했다.

“응, 별 거 없어.”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조용히 집 짓고, 사람들이 희한하게 굴어도 참어. 어쩔 수 없잖아들 서로. 분양은 잘 되지?”

“네, 계약률 높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이장님, 그런데 아까 취하신 어른은 누구신지요?”

“어른은 무슨… 시내에 민평통 부회장인데. 그건 왜?”

“아, 저한테 나리라는 가수를 자꾸 부르라고 채근하시기에…”

“허, 그 양반이. 그런 소린 담어둘 거 없어.”

이 이장은 고개를 흔들며 그림자를 끌고 가버렸다. 그 모습이 멀어질수록 가수 나리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때 뒤에서 어깨를 툭 쳤다. 류 실장이었다.

“야, 좀 살 거 같냐?”

“아니요.”

나는 고개를 흔들었고 류 실장은 담배도 없이 푸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기 사람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아파트를 사겠냐. 대출도 못 받을 걸. 본사에선 현지에서 다 팔았으면 하는 눈치던데 택두 없지. 여기에 아파트 지으면 들어와서 산다는 것도 웃기거니와 옆 동네 사람들이 자기 살던 멀쩡한 집 내팽개치고 대출받아서 신축 아파트 분양받는다는 게 말이 되니? 안 그래도 DTI랑 LTV 쥐어짜, 집단 대출도 안 돼, 이젠 직원들한테까지 집 사라는 게…”

“직원들에게 분양 요구해요?”

“야, 야, 못 들은 걸로 해.”

류 실장은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난 동네 방구들 술 멕이러 갈 테니까 뒷정리 부탁한다. 아, 그리고 이건 네 거.”

류 실장은 늘어난 양복바지 주머니에서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를 꺼내 내 손에 쥐어주고 부리나케 마을 사람들 꽁무니를 쫓아갔다. 류 실장이 쥐어준 건 내 명함이었다. 종잇장처럼 얇고 하얀 명함에 회사 CI와 단 두 줄만 박혔다. ‘장수건설 현지 마케팅팀 사원 박지원 / 분양 계약 문의 010-****-****’.

나는 명함을 류 실장처럼 상자 째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어느덧 무대 해체도 끝나가고 있었다. 이벤트 업체 인부들의 발걸음이 슬슬 느려졌다. 해가 기울어졌다. 황톳빛 공터는 시커먼 색으로 변해 있었다.

회사는 분양이 미처 안 된 아파트를 임시 기숙사로 제공했다. 류 실장이 한 채, 내가 한 채씩 숙소로 차지했다. 류 실장의 스케일이 유독 커서 그런지 오십육 평도 같이 쓰길 답답해했다. 덕분에 나는 내 집인 양 마음 편하게 뒹굴었다. 샤워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류 실장이 제 숙소에 깔아 둔 무선 인터넷도 쓸 수 있었다. 월급만 넉넉하다면 금상첨화였다.

그날 밤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가수 나리를 찾았다. 유튜브에서 동영상 플레이를 누르자 나는 탄성을 발했다. 나리는 트롯도 뽕짝도 아닌 재래시장 축제에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는 품바였다. 장구에 심벌즈 한 장 달고 미친 듯이 번갈아 두드려대며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나리는 그야말로 문화 충격이었다. 동자 무당을 연상시키는 의상에 골반을 흔들 때마다 허리띠에 가득히 꽂힌 만 원과 오만 원짜리 지폐가 펄럭거렸다. 나름 팬덤도 구축되었는지 손깃발을 들고 흔드는 아줌마 아저씨들도 있었다. 장바닥에서 나리는 미스에이 수지 급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민평통 부회장이 그토록 나리를 찾는 이유도 알 만 했다.

불을 끄고 이불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눈앞에 테트리스 화면처럼 분양 서류와 전단지들이 나부꼈다. 하루 종일 지문이 닳도록 나눠준 전단지였다. 나부끼는 전단지를 배경으로 나리가 불러젖히는 품바까지 추가되어 오늘 밤은 꿈자리가 사나울 듯 성싶었다. 나는 억지로 자려고 애썼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

아파트 공사 현장은 한창 층수를 얹는 중이었다. 나는 마케팅팀 소속이었지만 여느 중소기업이 그렇듯 전방위적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현장에 설치한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소관이었다. 그리고 그 일들은 아직 사회 초년생 티를 벗지 못한 나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냥 여기가 절이라고 생각해.”

류 실장의 명언이었다.

사람들이 하소연하러 찾아온다는 점에서 현장 사무실은 절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면 첫째, 절간은 조용하지만 사무실은 시끄러웠다. 둘째, 절에 찾아온 사람들은 돈을 놓고 가지만 사무실에 찾아온 사람들은 돈을 받고 싶어 했다. 사무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나를 부처님 대신 ‘박 대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여기 아파트 다 짓고 나서 옆에 또 짓나?”

윗말 정 씨 아저씨가 물었다. 정 씨는 믹스 커피 세 잔째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잘 모릅니다.”

“회사 일을 왜 몰라? 그래서 일을 어떡해?”

“당장 공사가 업무라서요.”

“아파트 짓는 회사 일을 모르면 업무를 어떡해? 박 대리 잘려?”

“예? 잘리다니요?”

“일을 그렇게 모르면 회사에서 잘리지 안 잘려?”

“아이고, 저 안 잘려요.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됐어요.”

예전 직장인 콜센터에서 막말로 단련되지 않았다면 견디기 힘든 말이었다. 안 잘린다고 힘주어 말했건만 정 씨는 회사에서 안 잘리나, 하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마지못해 사무실을 나섰다. 이 이장 말마따나 좀 희한한 동네였다. 말 한마디에 아무거나 갖다 살을 붙이는 상상력이 특출 났다. 동네 사람들이 밤마다 모여 말을 맞추어 집단 창작이라도 하나. 날씨가 추워지면 땅이 얼어붙어 공사를 못 한다는 소문이 났고 분양이 잘 된다고 하면 떴다방 돌린다는 뒷공론이 돌았다. 뭐든 갖다붙이길 잘하니 말 한마디 건네기가 쉽지 않았다.

돈을 주운 날은 내가 우자리에 온 지 한 달째 되던 날이었다. 신기하게도 바로 다음날 돈을 주웠다는 소문이 싹 퍼져 있었다. 파출소 경찰들이 소문을 냈다고는 믿기 힘들었다. 문제는 소문난 돈의 액수였다.

파출소에 돈을 갖다 준 다음다음날은 월요일이었다. 월요일 오전 열한 시 딱 맞춰 사무실로 찾아온 윗말 정 씨에 따르면 내가 습득한 돈의 액수는 약 백만 원에 불과했다. 정오께에는 삼백오십만 원으로 세 배 넘게 불어나더니 저녁 즈음 사무실 문을 닫을 때에는 오백만 원으로 추정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단 하루 동안 다섯 배로 불어난 것이었다. 내가 주운 비닐봉지 속 돈은 저 혼자 미친 듯이 고금리에 복리를 반복하며 새끼를 치고 온 동네 사람들의 머릿속을 점령 중이었다.

며칠 후 윗말 정 씨가 다시 찾아왔다. 나는 본사 전화를 받는 중이었다. 계약률이 왜 이모양이냐는 성화였다. 정작 나는 계약률 서류 그림자도 못 본 데다 계통을 따지면 당연히 류 실장이 문책을 당해야 했었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배려해주는 본사가 아니었다. 윗말 정 씨가 소파에 앉아 신나게 까이는 나를 흘끔거렸다. 전화는 정 씨가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때에야 겨우 끊어졌다.

정 씨가 말했다.

“돈 벌었다면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계약률이 엉망인데 무슨 돈. 하지만 계약률 떨어진다는 소문이 퍼지면 끝장이었다.

“예, 계약률이 높으니 회사가 돈 벌었지요.”

“에이, 그거 말고. 돈 말이야. 돈. 저거. 밖에.”

정 씨는 문 쪽으로 손사래를 쳤다.

“어른한테 거짓말하면 천벌 받어. 바른대로 말해 봐. 얼마나 벌었어? 내가 다 알고 왔어.”

나는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표정을 보고 정 씨가 상을 팍 찌푸렸다. 왜 말을 척척 못 알아듣느냐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동네에서 줏은 건 동네 물건이지 외지인 물건인가. 동네에서 처릴 하게 나한테 가져와야지 서로 씽 하니 갖다 주면 써?”

나는 그제야 이해가 갔다. 파출소 갔다 온 지가 나흘이 넘는데 아직도 주운 돈타령을 하고 앉았나. 이렇게 생각하자 나도 말씨가 곱게 나오기 힘들었다.

“김선영 수사관님이 돈 주인 찾고 있다는데요.”

내 말투에 슬며시 날이 서자 정 씨는 고개를 싹 돌리며 사무실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 년? 자식도 버린 독한 년이야. 놀아나지 말아.”(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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