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사무실에 가래침 뱉는 것만으로 성이 안 찼는지 정 씨는 종이컵까지 구겨서 바닥에 집어던졌다. 문을 젖히고 나가면서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돈을 안 가져와서 불만인지 김선영과 상종하는 게 비위가 상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이놈의 동네 것들이 돈에 다 미쳤나 진짜.
그날 저녁 류 실장에게 문자가 왔다.
‘퇴근하면 와라. 맥주 먹자.’
내키지 않았지만 어두컴컴해진 뒤 류 실장의 숙소로 갔다. 문은 열려 있었고 류 실장은 하얀 대리석 장판을 깐 거실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옷도 안 갈아입은 양복바지 바람이었다. 신문지 위에 카스 맥주와 오징어가 펼쳐졌다.
“매일 술자리면서 또 드세요?”
“마음 편히 먹을 때도 있어야지. 너 발령받자마자 사무실 지키느라 같이 마실 기회도 없었잖아.”
나는 류 실장과 마주 앉았다. 사실 우자리에 내려오고 나서 술 생각이 전혀 안 났다. 며칠 틀어박혀 영화나 보고 싶은 생각만 간절했다.
“요새 사무실에 동네 것들 엄청 찾아오지? 고생했겠다. 돈 얼마 주웠냐고 졸라게들 물어보겠네.”
“저한테 계속 말을 시키더라고요. 돈이 대체 얼마냐, 어디서 주웠냐, 얘기하면서 실수로라도 액수가 나올 수도 있다고 기대하는 것 같더라고요.”
류 실장은 키득대며 종이컵에 맥주를 따라 주었다.
“그게 이 동네 수준이다. 이런 동네는 처음 봤어. 길가에서 주운 돈이 얼만지 궁금해 미쳐 돌아가는 동네에 무슨 아파트 분양이 되겠어. 요샌 농협 가기도 무서워. 동네 사람들이 다들 우리만 감시하는 것 같아. 왜 내 땅은 안 팔리고 옆 땅만 팔려서 대박을 치냐는 불만이 얼굴에 새겨져들 있다니까. 동네 방구들 술 먹이면 맨날 나오는 얘기가 자기 땅 좀 사라는 거야.”
“어느 동네나 다 그렇지 않나요.”
“네 말이 맞아. 건설하면서 늘 겪는 일이지만 여긴 좀 심해. 술자리에도 서리가 내리는 기분이야. 그래서 빨리 뜨고 싶다.”
“분양이 잘 될까요?”
“이 동네 방구들 돈 없어. 젊은 사람들이 와야지.”
류 실장은 내 종이컵에 자기 컵을 부딪치고 원샷을 했다.
“젊은 사람들이 대출받아 사는 집이잖아. 근데 요새 어디서 대출을 해 주냐. 젊은 사람들도 결혼을 못 하니까 집 살 일도 없고.”
“그래서 회사에서 직원들한테 여기 분양받으래요?”
류 실장의 눈이 반짝였다.
“… 원가만 내란다. 너, 여기 발붙이고 살래?”
역시나. 본사는 직원들에게 분양을 강요하고 있었다. 대체 계약률이 얼마길래. 슬금슬금 기어오르던 술기운이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뭐라고 둘러대고 넘어가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내 입에서는 이제껏 생각지도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여기에 어느 여자가 와서 살겠어요?”
그 말을 하자마자 나는 후회했다. 본사에 밉보이는 걱정 따위가 아니었다. 마주 앉은 류 실장이 얼마나 힘이 빠지든지 앉아 있는 몸에서 무언가 쭈우욱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사람의 열정과 끈기를 유지시키는 보이지 않는 근기(根氣)가 한낱 장내 가스가 되어 몸 밖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보는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었다.
“…네 말이 맞아. 세상에 어느 제정신 박힌 여자가 여기 와서 살겠니? 백화점도 없고, 마트도 없고, 학교도 놀이터도 어린이집도 없고 뒤편에 산만 있고 길가엔 트럭만 내달리는 동네에 누가 와서 살아. 밤중에 귀신이나 안 나오면 다행인 동네야. 처음부터 여기에 짓는 게 잘못된 거야.”
마지막 말에 내가 다 섬뜩했다.
“분양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안 됐어.”
“아니, 어느 정도나…”
“하나도 안 됐다고.”
설마 한 건도 안 됐을 리가. 나는 묻고 싶었다. 하지만 류 실장의 표정은 그런 질문을 받을 얼굴이 아니었다.
맥주가 어느새 동이 나버렸다. 나는 취한 류 실장을 일으켜 이부자리가 깔린 방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류 실장은 거실 바닥에 사지를 활짝 펴고 드러누워 꼼짝하지 않았다.
“됐어, 여기서 잘란다. 앞으로 사람 몸뚱이 닿을 일 없는 바닥이야. 나라도 등 비벼줘야지…”
나는 불을 켜 둔 채 내 숙소로 돌아왔다.
류 실장이 술김에 뱉은 분양가는 나리의 장구 심벌즈 퍼포먼스 못지않게 충격적이었다. 대출만 받는다면 나에게도 불가능한 금액이 아니었다. 명품 슈트도 외제차도 아니고 아무도 안 산다는 대형 시멘트 박스에 이리 지름신이 꽂히다니. 월세 걱정 없는 내 집 마련의 유혹은 그리도 강력했다.
그날 밤 꿈에는 초대가수 나리가 나왔다. 역시 장구와 심벌즈를 번갈아 두드려대며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가사가 특이했다. “분양가가 단돈 이천오백 원!” 어, 본사가 말한 액수와 너무 차이가 나는데. 의아한 가운데 나리의 목소리는 아파트 철근을 빠개는 소리처럼 고막을 가격했다. 꿈속에서 분양 광고 전단지를 찢어 귓구멍을 틀어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현장 사무실에는 반짝이는 연분홍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 한 명이 찾아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육십 대 초반일까,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자개 비녀로 쪽을 찌고 번들대는 화장과 어두운 빨간색 립스틱을 얼굴에 두툼하게 얹었다. 처음엔 웬 고전 무용가인가 싶었다.
“박 대리님이시죠?”
“아, 네, 여기 직원은 맞는데요.”
나는 손잡이에 열쇠를 꽂고 비틀면서 대답했다. 문을 열자 매캐한 공사장 먼지가 흘러나왔다. 그 여인은 내가 권하지도 않았는데 냉큼 사무실로 들어서서 권하지도 않은 소파를 차지했다. 그리고 구슬이 잔뜩 달린 핸드백에서 다홍색 명함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선녀암 영롱보살 신점 사주 내림굿 010-****-****’.
명함을 받은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여인은 생긋 웃었다.
“이제까지 제가 마을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저기 암록산 위에서 기도했지요. 들어보신 적 없으세요?”
나는 턱을 당기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인은 립스틱 얼룩이 묻은 금테 씌운 앞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제 기도가 통하여서 어젯밤 꿈에 모시는 장군님께서 현몽을 하셨어요. 장군님께서 말씀하시길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이리로 가라고 하셨어요. 거기에 네가 필요한 게 있다! 꼭 거기로 가라! 고 내려주셨지요. 저는 그걸 가지러 왔습니다.”
나머지 말은 안 들어도 뻔했다. 대신 짓궂은 호기심이 일었다. 아무도 맞추지 못한 액수를 그녀가 맞출지 궁금했다.
“박 대리님이 도와주실 거죠?”
“제가요?”
“장군님께서 이리로 오면 귀인의 도움을 받을 거라고 그러셨어요.”
영롱보살이라는 여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보니 송곳니에도 금을 씌웠다. 호기심이 사라지고 심사가 비비 꼬이기 시작했다. 대체 비닐봉지에 싸인 돈 몇 푼에 무당까지 나서는 동네에서 아파트를 지으면 얼마나 팔리겠냐고 본사에 항의 전화를 걸고 싶어 졌다. 표정 관리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현몽을 받으셨다고요, 그렇게 장군님이 용하시면 액수를 맞춰 보시든가.
그때였다.
“여, 박 대리 있어?”
사무실 문이 찌이꺽 열렸다. 윗말 정 씨였다. 영롱보살은 갈색으로 그린 눈썹을 찌푸렸다. 나는 들리지 않게 신음했다.
“뭐여, 무당년이 여긴 왜 와 있어? 아파트 분양받으려고?”
정 씨는 성큼 들어와 정수기 옆 믹스커피부터 한 주먹 움켜쥐었다. 영롱보살이 슬며시 핸드백을 끌어당기더니 한복 치마를 말아 쥐었다. 일어서려는 모양이었다. 정 씨가 뒤를 돌아보며 굶은 들개 같은 웃음을 흘리더니 내게 말했다.
“박 대리, 이거 순 사기꾼년이여. 말 듣지 마. 마을 사람들 돈 뜯어내려고 몇 년을 발광해온 년이여.”
영롱보살의 눈에 도끼날이 섰다.
“그러다 장군님께 벌 받습니다.”
“허? 장군? 무슨 장군? 우리 정 씨 가문에 장군이 쎄고 쎘여어. 혹 알어? 니년이 모시는 장군이 우리 조상님인지.”
“마을 지켜주시는 장군님께 그렇게 함부로 구니 집안에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지요. 아드님은 어디 계신대요?”
정 씨가 들고 있던 종이컵을 탁 하고 내려놓았다. 덕분에 믹스커피가 절반은 엎질러졌다.
“니년이 그렇게 신발이 쎄면 맞춰 보든가!”
“신점 보러 오세요. 어디 묻혔는지 딱 집어 드릴 테니.”
“어후, 이년이 정말.”
“저, 두 분, 여기서 이러시지 마시고 탁 트인 데서 말씀하시지요.”
둘 다 사무실에서 나가라는 말뜻이었는데 역효과가 났다. 정 씨와 영롱보살이 동시에 나를 돌아본 것이었다.
“아, 맞어. 박 대리, 내가 오늘은 마을을 대표해서 탁 까놓고 물어볼라고 왔어. 돈 얼마 주쉈어?”
매일 반쯤 취해 있는 정 씨의 눈빛이 오늘은 날카로웠다. 영롱보살의 눈도 빛나면서 내 넥타이 매듭에 와서 꽂혔다. 길고양이와 들개가 동시에 쥐새끼를 발견한 격이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류 실장이 말했던 술자리에서도 내리는 서리가 등뼈를 쓰다듬었다. 본사에서 두 시간이 멀다 하고 오는 전화가 왜 지금은 안 오는 것인지.
그때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정 씨와 영롱보살 둘 다 허둥대며 주머니와 핸드백을 뒤졌다. 얼어붙어 있던 나는 몇 초 후에야 내 휴대폰을 찾았다. 김선영이었다. 두 사람이 무섭게 나를 노려보았다.
“경찰인데요.”
나는 대답하면서 손바닥을 펴고 문을 가리켰다. 휴대폰이 둘을 재촉하듯 울려댔다. 나는 울려대는 휴대폰을 쥐고 입을 꾹 다문 채 정 씨와 영롱보살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받지 않겠다는 마지막 저항이었다. 둘은 멈칫대다 결국 일어섰다. 어깨로 서로 밀어대면서 문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에서 해묵은 증오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수신 버튼을 누르기 전에 창문이며 사무실 문을 꼭꼭 닫아 붙였다.
“김선영입니다.”
휴, 고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돈 주인은 찾으셨나요?”
“안 그래도 그 일로 전화드렸어요. 습득하신 장소를 특정해주셔야 속도가 나겠습니다. 혹시 내일 토요일인데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시지요?”
“좋습니다.”
“그럼 오전 아홉 시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계시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나는 승낙했다. 빨리 주인을 찾아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토요일은 흐렸던 날씨가 오랜만에 쨍하니 맑았다. 새파란 하늘이 제법 늦가을다웠다. 김선영은 내 숙소 겸 미분양 아파트 단지 앞마당에 승용차를 대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랫말 골목으로 가셔서 오백 미터쯤 들어가시면 됩니다. 저도 저번에 걸어서 왔으니까 천천히 가세요.”
김선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시동을 걸었다. 아랫말 골목으로 들어가자 나는 고개를 창밖으로 빼고 비닐봉지를 주웠던 길가를 살폈다. 풍경이 비슷해서 딱 집어내기 힘들었다.
“수사관님, 잠깐 세워주세요. 제가 내려서 살펴볼게요.”
“그러세요.”
차가 멈추고 나는 내렸다. 앞뒤로 오십 미터쯤 되는 범위 내인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걸으면서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길가 비탈에 넝쿨이 얽힌 곳을 찾아냈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김선영에게 손짓하자 차가 스르르 다가왔다.
“여기에요! 넝쿨 헤치고 주웠던 기억이 나네요.”
김선영은 차에서 내리더니 비탈로 다가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펄쩍 뛰어 넝쿨을 밟고 올라섰다. 십여 분 동안 찬바람을 맞으며 헤집었지만 안타깝게도 종이 쪽 하나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김선영은 내가 내미는 손을 무시하고 길가로 뛰어내렸다.
“그때 비닐봉지만 있었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선영은 먼지 묻은 손을 탁탁 털었다.
“넝쿨이 촘촘하게 얽혀 있어요. 그 속으로 비닐봉지가 엉켜 들어간 것도 신기한데요. 지나던 사람이 떨군 게 아니라 근방에 사는 사람이 숨겨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주변 탐문하시게요?”
내가 묻자 김선영이 빤히 바라보았다. 잠시 우리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다. 김선영이 입을 열었다.
“차에 타세요. 같이 다녀보죠.”
아랫말 골목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김선영은 왼편의 좁다란 농로로 차를 몰았다. 폐가 두어 채가 이어졌다. 마른 풀이 농로와 폐가를 잇는 길을 뒤덮고 있었다. 막다른 길에 이르자 색이 바랜 푸른 기와집이 나타났다. 오면서 본 폐가보다 나아 보이진 않았지만 굴뚝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솟고 있었다. 사람이 산다는 증거였다. 김선영은 대문에서 몇 미터 떨어져 차를 세우더니 시동을 껐다.
“양 할머니 계세요? 양 할머니?”
김선영이 아는 사람 집인 줄은 몰랐다. 대문이 열려 있어서 밀고 들어갔지만 마당에 아무도 없었다. 다만 살얼음이 앉은 수돗가가 젖어 있었다. 김선영은 뒷마당 쪽으로 목을 뻗었다.
“할머니?”
플라스틱 바구니가 덜그럭 대는 소리와 함께 등이 꾸부러진 할머니가 고무신을 끌고 나왔다. 겨울 잠바는커녕 목 늘어난 내복 바람이었다. 김선영이 말을 걸었다.
“추우신데 왜 옷도 안 입고 계세요? 세상에 맨발이네.”
“잠깐 아궁이에 불 넣고 오는 걸 뭐.”
“아침은 드셨어요?”
할머니는 대답 대신 방으로 들어갔다. 김선영은 대청에 걸터앉았다. 할머니는 쳐다보지도 않고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김선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누우런 합판 문짝을 열고 들어갔다. 할머니는 옷을 입는 대신 이불을 집어 머리끝부터 덮어썼다. 내가 대청에 애매한 자세로 걸터앉자 할머니가 말했다.
“들어올 거면 들어오고 안 들어올 거면 문이나 닫아. 챈바람 들어와.”
“박 대리님도 들어오세요.”
결국 세 사람이 조그만 방 안을 메꾸는 꼴이 되었다. 문을 꼭 닫으려고 애썼지만 틈새에서 찌르는 듯한 찬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찬바람과 김선영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되자 할머니의 시선도 피할 수 있었다. 방바닥에 자리를 잡자 막상 할머니의 첫말은 뜻밖이었다.
“넌 아직도 서방한테 맞고 살아?”
“아니요.”
“흥, 마누라 패는 버릇은 죽어야 고치더라.”
“이제 그 사람 저 못 때려요.”
“그거 잘 됐구나. 이제 누굴 패고 다니려나.”
두 여인의 목소리는 내 엉덩이를 찌르는 바람처럼 싸늘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