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돈(3)

by 주애령

김선영이 말했다.

“할머니, 혹시 돈 잃어버리신 적 있으세요?”

“돈? 내가 돈이 어디 있어?”

“이 분이 근처에서 돈을 주우셨대요. 혹시 할머니 돈인지 여쭤보러 왔어요.”

할머니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고개를 꼬았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태도였다.

“정환인 알지도 모르지.”

“집에 있어요?”

“삭정이 주우러 간댔으니 이제 올 거야. 추워?”

맨 마지막 말은 나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었다. 나는 가만히 있다가 김선영이 슬쩍 건드리는 바람에 움찔했다.

“아뇨, 안 춥습니다.”

“아무리 때도 불이 안 들어와.”

나는 그 말에 잘됐다 싶어 일어섰다.

“할머니, 제가 아궁이 막혔나 봐 드릴게요.”

문을 열고 나가자 마루 앞에 서서 김선영과 내 신발을 내려다보는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와 마주쳤다. 김선영이 대뜸 일어섰다.

“정환이구나. 잘 지냈니?”

김선영이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정환이라는 아이는 커다란 눈을 껌벅이더니 끄덕였다. 손에는 마른 나뭇가지 대여섯 개가 쥐어져 있었다. 뺨이 빨갛게 얼었고 표정에 애티가 났다. 약간 지진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환아, 너 혹시 돈 잃어버린 적 있니?”

김선영이 말을 붙이자 정환이는 놀란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멋쩍어져서 대청에 걸터앉았다. 아이는 야단을 맞을까 봐 두려운 눈빛이었다.

“이 아저씨가 돈을 주웠는데 주인 찾으러 다니는 중이야. 혹시 얼마 잃어버렸니?”

정환이는 마르고 터진 입술을 조금 벌렸다.

“돈요?”

“응. 잃어버린 적 있니?”

정환이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저런, 속상했겠구나. 나는 경찰이니까 잃어버린 돈 찾아주는 게 일이야. 왜 파출소로 안 왔어?”

“형들이 때릴까 봐요.”

“정환이 괴롭히는 형들이 있으면 파출소에 와서 말하면 돼. 돈도 찾아줄게. 얼마나 잃어버렸니?”

“말하면 형들한테 혼나요.”

김선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콧구멍이 살짝 벌름거렸다. 눈망울에 눈물이 동동 올라왔다. 돈 안 내놓는다고 맞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좋은 생각이 났다.

“정환아, 그럼 아저씨가 물어볼게 대답만 해볼래? 정환이는 대답만 했으니까 형들이 혼내지 않을 거야.”

김선영이 내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정환아, 아저씨 물어보는 거에 대답만 하면 돼. 어때?”

나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정환이가 만약 돈이 있으면 제일 갖고 싶은 게 뭐야?”

“돈이 있으면 갖고 싶은 거요?”

“응. 생각나는 대로 아무 거나 말해봐.”

아이는 눈꺼풀을 깜박여 물기를 없애더니 대답했다.

“아, 아파트요. 집이 추워서 할머니가 자꾸 아파요.”

“정환이가 착하구나, 그런데 아파트는 비싸서…”

김선영이 손가락으로 내 팔목을 쿡 찔렀다. 나는 입을 다물고 침을 삼키며 말을 고쳤다.

“그래, 아파트를 사고 싶구나. 그럼 아파트가 오만 원이라고 하자. 정환이가 잃어버린 돈이면 몇 채나 살 수 있어?”

아이는 초등학생처럼 양손을 쫙 벌리더니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 김선영과 나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아이는 천천히 손가락 계산을 두 번 하고 대답했다.

“한 채, 한 채 더 사고, 만오천 원 남아요.”

“… 그래.”

김선영이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주일 넘게 동네를 들었다 놓은 액수였다. 김선영은 마루에 내려서서 발에다 운동화를 꿰며 말했다.

“할머니, 오후에 다시 올게요.”

십일만오천 원은 파출소에서 정환이의 손을 거쳐 양할머니의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전해 들으니 정환이가 할머니 몰래 폐품을 팔아 모아 온 돈이었다고 했다. 못된 친구들에게 두어 번 돈을 뺏긴 정환이는 혼자 고심한 끝에 비닐봉지에 돈을 넣어 길가 넝쿨 속에 숨겨뒀었다. 한편 나는 현장 사무실에 나뒹구는 롱패딩 한 벌을 세탁소에 맡겼다. 커다란 돼지저금통도 하나 샀다. 저금통에는 ‘우자리 조손가정 돕기 기금’이라고 써서 잘 보이는 곳에 놓았다. 깨끗이 드라이한 롱패딩을 전하기 위해 김선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환이네 집으로 오시죠.”

김선영의 대답이었다.

정환이네 집은 경찰들 주선으로 방구들 뚫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나는 양 할머니를 보자마자 롱패딩을 억지로 어깨에 걸쳐 주었다. 발목까지 넉넉히 덮였다. 할머니는 성가셔하면서도 우리에게 물이라도 떠다 준다며 아궁이 쪽으로 가버렸다.

“양 할머님을 잘 아세요?”

“전 남편의 고모예요. 정환이는 제 아들 사촌이고요.”

“그러셨군요. 저는 몰랐습니다.”

“둘 다 죽었어요. 할머니도 정환이도 몰라요.”

나는 숨을 죽였다. 김선영은 표정도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정환이가 모은 돈은 본인 이름으로 은행에 넣어주고 싶은데 미성년자라 계좌 만들기가 어렵대요. 친권자인 할머니가 가줘야 하는데 가시기가 쉽지 않아요. 제가 대신해주고 싶지만...”

“이 동네 사람들 중에서도 해줄 만한 사람이 없겠네요.”

“맞아요. 이런 경우에는 후견인 제도를 이용하면 편리하지요. 어른이 될 때까지 믿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여긴 그럴 사람이 없어요.”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현장 사무실에 들렀다. 그날 공사는 마무리되고 조용했다. 영롱보살이 앉아 있던 자리가 유난히 신경 쓰였다. 왠지 등 뒤가 서늘했다. 마을의 누군가, 누군가, 또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열고 줄지어 들어와 ‘내가 필요한 게 여기 있다’고 쐐기를 때려 박듯 확신에 찬 어조로 을러댈 것 같았다.

나는 불을 켜는 대신 돼지저금통을 들어 흔들어보았다. 저금통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안에서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는 텅 빈 저금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갑을 꺼내어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접었다. 쏙 잘 들어가도록, 삼각형 모양으로. 그리고 돼지저금통에 톡 하고 밀어 넣었다. 지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비로소 귀신 쫓는 부적을 써서 붙인 기분이었다.

“돈이 있다면,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면.”

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돈이 있다면. 그러면 정환이가 바라는 아파트를 살 수 있는데. 김선영이 동네 눈치 없이 마음 편하게 놀러 오는 집. 정환이도 양 할머니도 추운 날씨 걱정 없이 사는 집. 방 네 개짜리 오십육 평이면 될까. 꿈속에서 들었던 가수 나리의 분양가 노래가 들려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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