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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Feb 02. 2024

우리들의 특별한 준비 1

2023년 새해가 밝았다. 남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도중, 서로의 신년 계획에 대해 묻게 되었다. “오빠, 내가 올해 세운 가장 큰 계획이 있는데 뭔지 알아?” 남편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제주도 한 달 살기잖아.”“어? 어떻게 알았어?”“작년에 이사하면서 이야기했었잖아.”(우리 가족은 2020년에 이어 2022년 한 번 더 이사를 한 뒤였다.) 남편은 내 2023년 계획을 기억하고 있었고, 대화만으로도 제주도 한 달 살기가 시작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도전이 지지받는 경험은 용기를 내기에 충분했다. 남편은 걱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동시에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애 셋을 데리고 혼자, 그것도 걷지 못하는 셋째와 함께 제주도에서 한 달을 살겠다고 했을 때 걱정은 잠시 내려두고, 말없이 응원해 주었다. 분명 나를 믿었을 것이다. 힘든 길이 예상되지만 끝내 해낼 것이라는 상대에 대한 신뢰. ‘하고 싶으니 해 봐.’가 아니라 상대의 도전의 의미와 무게를 알고, ‘너니까 해낼 수 있을 거야.’라는 전폭적인 지지와 믿음. 나 또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 확고한 상태였다.(어쩌면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가능한 무모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남편 없이도 혼자 아이 셋과 함께 여행을 하고 아이들을 건강하게 돌볼 수 있을 것이란 확신. 그렇게 믿음이란 기반 위에서 제주도 한 달 살기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한 달 동안 살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제일 처음 해야 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결정. 우리 가족이 한 달 동안 머물 곳은 어디가 좋을까. 경비에 대한 부담 없이 다녀오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너무 불편한 환경은 숙려 해야 할 것이다. 비싸지 않으면서 제주도의 주거 문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 더불어 제주대학병원에서 많이 멀지 않은 곳이어야 했다.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 뇌농양 등의 병력으로 인해 셋째는 뇌전증 진단을 받은 상태였고, 갑작스러운 경련(경기)에 즉각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며칠에 걸쳐 숙박 사이트를 통해 검색해 본 결과, 최적의 조건의 집을 찾았다. 바다에서 멀지 않은 돌담집이었고, 병원은 자차로 2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다. 물론 셋째만 생각한다면 병원 바로 앞으로 숙소를 결정했겠지만, 우리의 제주도 한 달 살기는 치료를 위함이 아닌 여행을 위한 것이다. 한 달이라는 기간이 주는 일상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엄연히 여행이 주된 목적이기에 병원 근처, 시내에 집을 구하는 것은 제주도 한 달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주거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 살기 집을 결정할 때 숙박 사이트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여러 가지 조건에 맞는 몇 군데 집을 보기 좋게 나열해 주고, 각 집의 외부와 내부의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 평점과 댓글 시스템도 있어 이전에 머물렀던 숙박객을 통해 해당 집의 만족도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여러모로 한 달 살기 집을 결정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물론 마음에 쏙 드는 집을 고르는 일이란 쉽지 않았지만 비용, 공항과 병원과의 거리, 편의시설, 가고 싶은 주변 여행지 등 전반적인 조건을 고려했을 때 가장 만족스러운 집이 있는 동네는 지도상 제주도 북동쪽에 가까운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였다. 함덕 해수욕장과 김녕 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곳. 바다에서 가깝지만 해수욕장과는 거리가 있고, 제주 공항과 제주대학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자주 해수욕장에 갈 예정이라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해수욕장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반대로 사람이 많이 오고 가기에 휴식을 위한 장소로는 적절하지 않았다. 자차를 십분 활용하여 이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집을 결정하고 부랴부랴 계약금까지 입금했다. 우리가 한 달을 보낼 날짜는 큰 아이들의 방학을 고려한 한 여름, 2023년 7월 28일부터 8월 26일까지였다. 꼬박 31박 32일의 한 달 일정. 한 달 살기라고 해서 한 달 동안 같은 숙소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셋째를 생각해서 최대한 이동 없이 안정적으로 지내기로 했다. 성수기라 마음에 드는 집을 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조건에 맞춰 비교적 서둘러 결정한 편이었는데... 아뿔싸, 뒤늦게 확인한 공지가 있었다. 다름 아닌 집과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는 구옥이었던 것. 고심해서 고른 집인데 바꿔야 할까? 계약금을 입금한 후 그날 밤, 고민이 깊어졌다.           


출처 : 네이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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