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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Jan 26. 2024

혼돈을 사랑하기로

두 개의 세상은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퇴원 후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재활이었다. 뇌 가소성을 끌어올리려면 다각도로 적절한 개입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한 재활 치료가 필요했다. 문제는 살고 있는 지역의 재활 센터 인프라였다. 양질의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는 지역이 아니었기에 더욱 활발한 재활 치료를 위해서는 이사를 감행해야 했다. 병동에서 생활하는 동안 제주도 여행과 더불어 이사를 생각했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서울로 이사를 갈 수는 없으니 지금 사는 지역보다 더 크고, 남편의 직장과 그리 멀지 않은 지역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집으로 돌아와 재활 치료와 동시에 이사를 준비했고, 의료진 없이 혼자 해야 하는 간병 적응도 해야 했다. 간병을 하다 보면 미래의 불안에 휩싸여 오늘을 살아내지 못할 때가 있다. 매일이 어둡고, 버거웠다. 물리적인 고통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지만, 좀체 손에 잡히지 않는 불안의 고통은 셋째의 돌봄을 방해하곤 했다. 물론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매일을 보내고 있었지만, 의료진에 기대고, 남편과 시어머니께 기대었던 많은 것들을 내 손으로 하나 하나 다시 해나가려다 보니 감사함 이면에 드리워진 그늘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어두움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 때 햇살이 비추는 곳으로 나를 끌어올린 것은 다름 아닌 제주도에서 보낼 모든 시간의 장면이었다. 그 시간, 그 장소에 나를 보내고 나면 조금은 살만했다. 원할 때마다 제주도를 떠올렸고, 제주도에 있는 나를 상상하는 일은 언제나 힘이 셌다.

셋째의 재활 치료를 갈 때마다 집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하곤 한다. 집에서는 평면적으로 보이는 세상이 재활 센터에 들어서는 순간, 입체적으로 보이는 기분. 셋째와 닮은 세상이지만 또 다른 세상인 곳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여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고 여집합 속에 있는 나를 찾아간다. 이기적 이게도 가끔은 교집합 속에서 위안을 삼기도 한다. 이 얼마나 복잡하고 혼란한 시간이었는가. 물론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여전히 하나가 되기 위해서 노력 중이지만 때론 생각한다. ‘그냥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장애는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세상이다. 그런 세상 속에 나와 우리 가족은 살고 있다.’ 장애라는 세상은 다르거나 틀린 세상이 아니다. 그저 존재하는 세상이다. 가끔은 모든 것일 때가 있고, 또 가끔은 방관자가 되듯 바라볼 때도 있다. 이런 감정을 부정하거나 자책하지 않으려 한다. 두 개의 세상이 하나인 듯, 하나의 세상이 두 개인 것처럼 바라봐도 괜찮지 않을까.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다르게 만드는 것 
사람들이 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사람들이 너에게 바뀌기를 원하는 것
너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그것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소설 <푸른 세계>중에서 : <마음 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셋째의 생일인 9월에 계획한 제주도 여행은 조금 늦은 11월로 결정되었다. 환절기 날씨라는 변수가 있었기에 여행 시작 단계부터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도전의 의미에 걸맞게 단단히 무장하고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리고 제주도 여행에서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잊었던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조만간 계획해 보자고! 물론 지금 당장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간병은 불안정했고, 셋째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에 언젠가 반드시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실현할 것임을, 그날이 결코 멀지 않을 것임을 짧은 기간의 여행동안 확신할 수 있었다.

제주도야~반갑다! 우리 다섯 가족이 함께 왔어! 너른 바다의 품처럼 두 개의 세상의 경계에 선 우리 가족을 힘껏 품어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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