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주말은 우리 가족이 제주 한 달 살기를 시작한 지 꼬박 보름이 되는 날이다.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15일이라는 시간을 훌쩍 지나갔다. 남은 시간도 이전의 시간만큼 알차고 즐겁게 보내길 바라며 특별한 여행 의견이 없었던 큰 아이들의 생각대로 남은 반나절은 숙소에서 푹 쉬기로 했다. 전반전을 무사히 마쳤으니 후반전 시작을 위한 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되었기에 나 또한 동의했다. '숙소에서 무엇을 하며 놀 것인가.' 큰 아이들은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평소 집에서 쉬는 동안 하던 일을 제주 숙소에서도 변함없이 해나갈 것이다. 나 역시 오전 시간을 루틴대로 보냈던 것처럼 말이다. 거기에 평소 우리 가족이 즐겨 먹는 김밥을 저녁 메뉴로 만들어 먹을 예정이다. 아이들 옆에서 함께 독서를 하고, 낮잠도 청하며 꿀맛 같은 휴식을 보내었다. 셋째에게도 반드시 쉼은 필요하다. 날도 무더운 데다가 평소 신체적, 물리적 한계로 인해 집에서도 자주 나가지 않았는데, 여린 아이가 제법 큰 누나들과 엄마를 따라 제주도까지 왔으니 한동안 퍽 버거웠을 것이다. 나름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여행 일정을 수행했다고는 하지만 셋째에게는 쉽지 않은 일임엔 분명하다. 큰 아이들과 셋째 사이에서 균형 있게 여행을 이끌어 가려면 어른인 내가 여행 일정을 잘 판단하고 선택하는 현명함이 필요하기에 오늘만큼은 정말 제대로 쉬어야 할 시점이었던 것이다.
늘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셋째가 장애를 가지고 있고, 경기(뇌전증)를 하는 아이기 때문에 언제든 위험한 상황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앞으로도 잘 관리해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여행을 마무리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다.
개운한 몸과 비장한 마음으로 김밥 만들기에 돌입(?)했다. 구좌에서 산 당근을 채 썰고 계란물을 풀어 지단을 부쳤다. 역시 세화민속시장에서 산 오이를 맛소금에 절여놓고, 김밥세트에 들어있는 기본 재료들을 다듬어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이어 구운 김 위에 밥을 가득 펼쳐 한 자리에 모아놓은 재료들을 하나씩 올리고 돌돌 말아 총 10줄의 김밥을 만들었다. 냉장고에 넣어놓고 내일 아침도 먹을 생각이었다. 힘든 만큼 잘 말아진 김밥을 보며 뿌듯했고, 맛도 변함없었다. 제주 산지 재료로 만들어서인지 더욱 맛있었다.
뒷정리를 마치고 보드게임도 했다. 일정 탓에 집에서 가져와 몇 번 하지 못했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 숙소에서 즐길거리를 십분 활용하였다. 우리 가족이 함께 한 보드게임은 ‘다빈치 코드’였다. 단순한 구성에 복잡해 보이는 게임을 아이들이 설명해 준 대로 차근히 따라 해 보니 영화만큼이나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평소 아빠와만 보드게임을 하던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배우며 함께하니 아이들은 엄마에게 게임을 알려줬다는 뿌듯함과 더불어 엄마도 함께 했다는 즐거움이 더해져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마무리로 집에 있는 아빠와의 영상통화.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느라 정신없는 자매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칠 수 있어 감사한 하루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