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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Jul 19. 2024

Day14_2

2023. 08. 10._제주 한 달 살기

제주대학교병원


상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많은 생각이 스친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들의 향연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뭐가 잘못되었을까 자책을 시작으로

앞으로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금방 회복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진정제도 쉽게 안 들고, 병원에 와서도 오래 경기를 하고,

다른 약 하나로 겨우 진정된 듯하고.

병동이 아닌 중환자실에서 지켜본다는데 우린 또 어떻게 되는 것 인가.

 그 시간 동안 난 큰 아이들과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셋째 보러 오면서 이쪽으로 일정하나 잡아서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입원은 얼마나 할 것이며 간호사가 수유를 못할 테니 입원 동안은 콧줄을 끼워야 할 것 같고. 길지 않을 테니 젖병 거부는 없을 테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또 이면엔 더운데 일정 소화한다고 셋째 고생시키지 않아도 될 거라는 안도감과 큰 아이들과의 깊은 시간이 가능할 거란 기대감. 태풍이 불어서 일정 소화를 고민하던 찰나에 이런 일이 생기고, 때마침 어제 김밥을 잔뜩 싸놓았고, 장도 많이 보고, 다행스러운 일들도 많다. 생각보다 응급실이 쾌적해서 진료 진행이 빠르고, 의료진도 친절하고. 얼마나 경기를 한 지 모른 상태에서 혹시 지금보다 상태가 더 악화된 건 아닌지의 불안감. 이 수많은 감정들을 현시점에서 마주하고 있다. 엄마는 여전히 감정적인 반응. 제주에 온 것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다. 이런 일은 집에서도 일어났을 테니. 중요한 건 엄마의 반응에 나까지 동요될 필요가 없다는 것. 바라는 것 하나는 일찍 퇴원하길 바라는 마음. 적어도 월요일에.(2023년 8월 10일은 목요일) 그럴 거라 믿는다. 경기가 있는 아이고 언제든 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저 제주에 와서 그랬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 

대체 왜 그랬을까.......     



 

제주대학교병원에 있으면서 휴대폰 메모에 적어 본 당시의 글이다. 복잡하고 괴로운 마음 이면에 현 상황을 다각도로 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셋째의 건강과 제주 여행을 향한 두 갈래 길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 또한 엿보인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위의 글에서도 썼듯이 경기(뇌전증_간질)는 제주가 아니어도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제주가 아니길 바란 마음 또한 솔직한 심경이었을 터. 친정엄마는 곧바로 나무라셨다. 남편에게 전화해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지만 곧장 전화하지 않았다. 셋째의 상황을 안다 한들 바로 제주에 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닐뿐더러,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홀로 감내하겠다는 각오도 없이 제주 한 달 살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 또한 아니었기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외로웠지만 괜찮았다. 큰 아이들의 안전 확인을 위해 중간중간 연락을 취했고, 큰 무리 없이 반나절을 병원에서 보낼 수 있었다. 며칠 뒤 병동 입원 권유를 제안한 의료진에게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임을 알리고, 중환자실에 셋째를 두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은 병원에서 홀로 택시를 타고 시골로 향하는 내가 퍽이나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이것저것 물어보시길래 간단히 답해드렸다. 이어 기사님은 말씀하셨다. “한 달 살기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그랬다. 마음 한편엔 ‘내 욕심이 너무 과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디서든 경기는 일어날 수 있고, 경기로 인해서 모든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집에 돌아가도 내 삶은 계속될 것이고, 제주 생활도 역시 내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려움과 불안을 잠시 내려놓고, 제주에서의 후반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간이었다. 셋째의 건강은 중환자실 의료진들에게 맡기고, 나는 그 시간 동안 큰 아이들과 셋째 없이 할 수 있는 경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유아차 없이 갈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오름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데, 오름을 가 볼까?’ ‘셋째 없이 또 다른 공연을 함께 보러 갈까?’ 셋째에게 미안하지만 지금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고민들과 결정이었다. 그리고 의료진은 셋째에게 콧줄을 끼우지 않기로 결정하였고, 엄마인 내가 중환자실에 3시간마다 오고 가며 수유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천만다행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큰 아이들을 보살피고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중환자실에서 수유하는 동안 밖에서 아이들은 잠시 기다리고, 함께 저녁을 먹고, 또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마지막 수유를 마치고 큰 아이들과 숙소로 돌아왔다. 

 큰 아이들도 잠든 늦은 저녁,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꾹꾹 참아두었던 눈물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오빠, 셋째가 경기를 해서 지금 제주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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