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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Jul 18. 2024

Day14_1

2023. 08. 10._제주 한 달 살기

구좌읍 동복리


 고통의 기억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처음 브런치를 통해 셋째가 태어나서 장애를 갖기까지의 과정을 글로 쓸 때 마치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힘겨웠다. 무의식으로 밀어 넣었던 기억들을 하나씩 찾아 의식의 지면으로 펼쳐놓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지만 제주 한 달 살기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셋째의 장애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한 글자, 한 글자 선명하게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 달 중 하루를 빼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셋째는 뇌병변 장애인이다. 동시에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다. 뇌전증이란 증상은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병이다. 워낙 급작스러운 데다가 증상이 발현되면 곧바로 응급실로 가야만 한다. 그래서 숙소를 정할 때에도 제주대학병원에서 아주 멀지 않은 곳으로 결정했다. 그 외에 응급실이 있는 병원 이곳저곳 알아본 상태에서 제주 한 달 살기를 시작한 터였다.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을 맞이했다. 큰 아이들이 셋째보다 먼저 일어났기에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큰 아이들의 목소리와 아침을 준비하는 분주한 소리로 셋째가 깰 법도 한데 어쩐지 조용하다. 아침 준비를 한참 한 뒤 슬그머니 셋째가 잠들어 있는 안방으로 가보았다. 기절초풍이란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셋째가 경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확연히 드러나는 발작 증세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대비는 하고 있었지만 흐릿하기만 했던 상상을 여실히 마주하고 만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평소 뇌전증을 앓고 있었지만 발작 증세는 처음인 데다(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양한 뇌전증 증상을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 코피까지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울부짖으며 셋째를 목놓아 불렀다. 두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살갗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어 119에 전화를 걸었다. 어른의 체면도 내려놓은 채 울며불며 셋째를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저희 애기가 경기를 해요!” 전화를 받은 소방관은 주소를 물었다. 나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즉시 답했다. 이어 소방관은 말했다.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전화 끊지 마시고 저희가 시키는 대로 해주세요.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이어 또 다른 소방관이 전화를 받았고, 경기를 일으킨 상황과 셋째의 신변에 대해서 간단히 물었으며 경기를 일으킬 시 대처 방법을 차분히 알려주었다. “어머니, 침착하시고 기도가 막히지 않게 아기를 옆으로 눕혀주세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절한 소방관 덕분에 구급차가 올 때까지 정신을 붙잡고 기다릴 수 있었다. “구급차 소리가 들려요.” “네. 저희 구급대원이 가까운 응급실로 안내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두 명의 구급대원이 와서 나와 셋째는 간단히 짐을 챙겨 바로 구급차에 올라탔다. 그전에 우리 큰 아이들은 어쩌나. 핸드폰도 없는데. 첫째에게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패드로 연락해. 엄마가 계속 카톡 확인할게. 그리고 엄마가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어제 만들어두었던 냉장고에 있는 김밥 꺼내서 점심으로 먹고 있어. 그리고 카드 놓고 갈 테니 군것질하고 싶으면 편의점 다녀와. 문단속 잘하고.”

 구급차에 올라타자마자 구급대원은 제주대학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셋째를 받아줄 수 있다는 회신을 받고 20분 거리에 있는 제주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그 사이 셋째가 경기를 일으킨 상황 전반에 대해서 구급대원은 내게 묻고 상세히 기록했다. 얼마나 경기를 했을까. 큰 아이들이 깬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았다면 최대 20분 동안 발작 경기를 했다는 뜻이다. 생각보다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코피에 청색증까지 동반한 걸 보면 내가 예상한 시간이 아주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셋째를 방치했을까.’ 자책하기 시작했다. 분명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지불식간 나를 덮치는 죄책감은 막을 수가 없었다. ‘어쩌자고 그랬을까.’ '제주도 한 달 살기는 무리였을까.' 그러던 찰나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벨이 울리는 순간 제주 한 달 살기를 반대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 “어디야?” “엄마, 있잖아....”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럭 겁이 났다. 하지만 해야 했다.

엄마, 셋째가 경기를 해서 구급차 타고 병원에 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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