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여행의 시작
짐 정리하다가 도쿄수첩을 발견했다. 언젠가 도쿄에 여행 가게 되면 쓰려고 제로퍼제로 망원동 매장에서 구매했다. 일본의 수도인 도쿄. 모름지기 그 나라를 알려면 인구가 모여사는 수도를 가봐야 한다는 나만의 철학이 있다.
시간부자가 된 지금.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생각이 스쳤다. 올해 안에 미뤄둔 생각을 실천해볼까 싶더라. 혹시나 해서 가족들에게 도쿄여행의사를 물었다. 친오빠가 빠르게 손을 들었다. 함께하는 여행메이트가 생기다니. 의지가 불타올랐다.
바로 스카이스캐너로 항공편을 알아봤다. 가장 저렴한 항공권은 30만 원 중반 선. 보통 특가 이벤트를 하면 더 저렴하게 갈 수 있지만, 이미 이벤트가 끝난 뒤였다.
신생항공사인 에어프레미아에서 알아보니 31만 7800원에 구매가 가능했다. 한국돈으로 결제해서 간편하고 하루동안은 무료취소를 할 수 있어서 부담이 없었다. 에어프레미아 항공을 처음으로 이용할 기회인 것도 플러스요인이 됐다.
가장 저렴한 스케줄을 검색하니 10박 11일 일정이 되었다. 매진되기 전에 고민보다 고. 재빨리 도쿄행 항공권을 결제했다.
오랜만에 친오빠랑 함께하는 여행이라 더 설렜다. 혼자서 하와이와 대만으로 장기해외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오빠였기에 여행경험이 많다고 착각했다. 실상은 오빠가 군생활하는 동안 여권이 만료되었고, 그 이후에 여행일정이 줄곧 없어서 여권이 없는 상황이더라.
항공권 예매한 다음날 바로 여권용 증명사진을 찍었고, 온라인으로 여권을 신청했다. ESTJ의 실행력이란. 같은 ESTJ이지만 오빠는 나보다 한수 위다.
처음 오빠랑 여행 갔던 스물한 살의 기억이 떠올랐다. 독일로 교환학생을 갈 목적으로 유럽학과에 진학했던 나는 얼른 유럽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교내에 교환학생 지원자가 많아서 3학년에서야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오빠는 그때 하와이여행에서 대만인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축구하면서 지나가는 소리로 대만에 놀러 오라고 말했다. 오빠는 진짜로 얼마 안 있다가 그 친구가 있는 대만의 화롄으로 갔다. 당시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였는데, 오빠는 화롄 도민준으로 불리며 완벽 적응했다.
오빠에게는 군문제가 숙제처럼 따라다녔다. 필기시험을 치르고 대만에서 여행 중이었는데 면접일정이 잡혔다. 다시 대만으로 돌아가서 여행을 이어하는 조건으로 잠시 한국에 왔다. 오빠가 한국에 온 틈을 타 오빠에 얹어서 나도 대만으로 여행을 떠났다.
약 4주라는 긴 시간을 둘이서 다녔다. 무더운 여름날씨고 둘 다 중국어를 하나도 못하는 막막한 상황에 가이드하는 오빠에게 엄청 성질을 부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오빠가 이미 만들어놓은 좋은 대만친구들과의 관계 덕분에 편하게 로컬처럼 살아보듯 지냈다. 같은 아시아국가라 문화적 차이가 없을 줄 알았는데 학과수업에서 배운 대로 고맥락(한국)-저맥락(대만) 차이를 피부로 느낀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때 참 신기하게 나도 오빠의 군면접처럼 급하게 핀란드 여행 가는 대외활동을 면접일정이 잡혀서 먼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열심히 헤매본 따끈따끈한 여행경험 덕분인지 합격해서 대한민국 청소년대표로 핀란드를 일주일 다녀오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여행은 마법처럼 또 다른 여행을 가능하게 해 준다고 믿게 됐다.
만반의 준비를 위해 서재에 도쿄와 관련한 책들을 한 곳에 모아봤다. 1) 도쿄의 디테일, 2) 퇴사준비생의 도쿄, 3)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4)인스타하러 도쿄 온 건 아닙니다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 한 켠에 도쿄가 자리 잡고 있었더라.
내 첫 장기해외여행을 오빠가 가이드해 주었듯이, 이제는 내가 오빠의 첫 삼십 대 장기해외여행을 가이드해주고 싶다. 부디 이번 도쿄여행을 통해 탱탱볼의 자유로운 에너지가 오빠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