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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Oct 11. 2023

동그라미, 세모, 엑스의 정체

수강신청하는 기분

 도쿄여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지브리 미술관 예약하려고 해외여행객을 위한 사이트에 들어갔다. 동그라미, 세모, 엑스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다. 동그라미는 예약가능, 세모는 매진임박, 엑스는 매진이란 뜻이다. 간단한 기호로 한눈에 예약현황을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한 것이 직관성이 훌륭했다.


1) 지브리미술관 해외여행객 대상 예약 사이트 바로가기

https://www.ghibli-museum.jp/en/tickets/


 앱을 사용하다 보면 기호로 표현하면 쉽게 이해하기 좋을 것을 굳이 단어로 기재한 경우가 있다. 글을 빠르게 읽다가 혼란이 올 것을 예상해 빨간색, 초록색 색상차이를 둔다든지의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해진다. 동그라미, 세모, 엑스 앞에선 이런 고민이 필요 없어진다. 언어를 모르는 사람도 한눈에 인지할 수 있어 명쾌하다. 이런 명쾌함 앞에서 쉽게 반한다.


 지브리 미술관 예약은 매월 10일 오전 10시에 오픈한다. 경쟁이 치열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하루가 지난 오늘에서야 캘린더를 확인하고 놀랐다. 모든 날짜가 엑스로 표시된 것. 안타까운 마음에 블로그를 뒤적거리니 일본 거주민을 대상으로 예약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일본 거주민이 아니라는 점이 내 마음의 삼각형에 조금 찔리게 했지만 그래도 시도는 아름다운 것.


2) 자브리미술관 일본거주민 대상 예약 사이트 바로가기

 ➤ https://kirbycafe-reserve.com/guest/tokyo/


 해당 사이트를 들어가니 세모가 보였다. 11월 1일 16시 타임. 하나의 세모에 실낱같은 희망이 피어난 순간. 두근대는 마음으로 우선 실시간 엔화를 확인했다. 내 심장박동처럼 엔화가 800원대와 900원대 사이에서 널뛰고 있었다. 회원가입이 필요해서 메일 인증을 받고 숙소 주소를 입력했다. 그런데 계속 로그인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당황해서 조금 더 찾아보니 일본 VPN을 연결해야 했다.


 무료 일본 VPN 사이트를 찾느라 10분쯤 헤맸다. 무사히 연결하고 사이트 접속에 성공했다. 그 사이에 달력의 모든 칸이 엑스로 바뀌었더라. 조금 더 찾아보니 예약을 위해선 일본전화번호 인증이 필요했다. 어차피 재빠르게 해내지 못할 예약이 아니었던 것. 원래 내 것이 아니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사실 지브리미술관은 일본여행을 많이 다녀온 친구의 버킷리스트라고 알려줘서 호기심이 생겼다. 도쿄덕후여행이 제목인 블로그 글을 읽었는데 도쿄에서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 3곳 중 하나가 지브리 미술관이었다고 소개하셨더라.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을 보니 지브리미술관의 감성 짙은 필름 티켓을 나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부지런하게 움직였다면 약 1만 원(1,000엔)으로 구매할 입장권을 구매대행으로 10만 원에 사거나, 무리하게 여행사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해 20만 원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10월 25일에 한국에서 개봉하는 지브리의 신작영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빠르게 보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을 기약하면 되는 것. 이로써 아직 한 번도 안 가본 도쿄를 두 번 갈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지브리미술관 예약의 아쉬움을 뒤로하고자, 도쿄덕후여행의 또 다른 선택지인 스카이트리 커비카페를 발견했다. 귀여운 캐릭터로 도배된 곳이 퍽 마음에 들었다.


생일은 아니지만 조용한 생일축하를 받아보고, 소유가능한 앙증맞은 도시락에 담긴 메뉴를 주문하고, 방문 고객만 구매할 수 있는 귀염뽀짝한 굿즈를 두 손 가득 구매해 보리라. 기분 좋은 상상도 잠시. 모든 일정이 엑스로 가득 찬 창이 보인다. 그제서야 보이는 친절한 안내문구. 예약은 다음 달 10일 18시부터 접수합니다. 이것도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3) 커비카페 예약 사이트 바로가기

https://kirbycafe-reserve.com/guest/tokyo/


 비행기표랑 숙소만 예약하면 떠나도 되는 곳인 줄 알았는데. 도쿄, 생각보다 힘들다. 유명한 곳은 모두 예약이 필수다. 대학생으로 돌아가 수강신청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전예약 없이는 문간을 넘지 못한다. 대신 발 빠르게 예약한 자에겐 문을 활짝 열어준다. 그곳에 들어가고 싶다면 결국 남들보다 부지런해야 하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며 나의 덜 부지런함에 대해 생각한다. 결국 부지런하지 못했기에 되돌아볼 수 있는 경험이다.


 예약엔 실패했지만 도쿄에 가지 않았는데도 예약하는 과정 자체가 여행하는 기분을 들게 했다. 특히 커비카페의 꼼꼼하게 기재된 예약 안내글을 보면서 뭐 이렇게 자세히 알려주나 싶더라. 다 읽으면 질문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하다.

 나보다 꼼꼼한 면을 보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했지 하며 감탄스럽다. 내가 꼼꼼하지 못한 덕분에 얻을 수 있는 즐거운 발견이다. 오히려 미처 몰랐던 꼼꼼함을 알아차리고 습득하는 것이 나만의 재미요소로 다가온다. 초밥에 들어가는 밥의 양까지 선택할 수 있는 도쿄여행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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