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을 수 있을까
어젯밤 여권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일단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는 찍어둔 사진에서 찾아냈다. 새벽 2시에 숙소 근처 경찰서에 가서 분실물로 신고했다.
고려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경찰서는 숙소에서 3분 거리다. 아침 9시에 다시 경찰서로 갔다. 내가 일본어를 전혀 못하고 일본번호도 없는 관광객이라, 경찰이 잃어버린 곳에 전화로 확인해 주셨다. 일본 경찰서는 작은 분실물에도 주의를 기울여주어서 놀랐다.
아쉽게도 밤 사이 발견된 분실물은 없었다고 한다. 영사관에 가서 분실물 접수 번호를 알려주면 될 거다
라고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정말 이대로 여권을 재발급받아야 할까.
일본에서 긴급여권을 발급하게 되면 6,360엔이 든다. 추가로 한국에서 10년 치 여권 발급 시 5만 원이 든다. 한 번의 여권 분실로 약 12만 원의 비용과 시간이 쓰이는 셈. 다행히 여행자보험을 들고 와서 여권분실에 대해 실비 6만 원까지 보장된다.
귀중한 돈과 시간으로 가치를 환산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여권이 든 가방을 전망대에 흘렸는데, 오후 3시에 열더라.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물건을 찾으러 갈까 아니면 긴급여권을 발급받으러 영사관에 바로 갈까 고민이 되었다.
일본은 타인의 물건을 만지면 절도죄가 성립되어 손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잃어버린 물건이라도 장소에 되돌아가보면 보통 찾는다고. 심지어는 몇 년 전에 편의점에 두고 온 세금 영수증도 경찰서에서 전화 와서 찾아가라고 할 정도란다.
영사관 여권 발급은 일반적으로 2~3일 여유를 두고 해야 한다. 긴급하기 때문에 1시간 내로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후기가 많았다. 인터넷의 수많은 여권발급 경험담 덕분에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오전 시간을 고민하는 데 다 썼다. 잃어버린 가방 안에 돈이 들어있진 않아서 찾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오후 7시 반에 전망대 소파에 가방을 두고 나왔는데, 마지막 전망대 입장시간이니 희망을 걸어볼 만했다.
전망대가 8시에 닫기 때문에 분실물로 들어온 게 없었던 게 아닐까. 오늘 오전에 청소하다 발견할 수 있겠다 싶더라. 무모하지만 내 운명을 운에 걸어보기로 했다.
전망대 오픈시간인 오후 3시에 맞춰서 다시 왔다. 일본인의 양심을 믿은 선택이었다. 만약에 정말 분실했다면 내일 아침 9시까지 영사관에 갈 계획이었다.
전망대 직원에게 구글번역기로 여권분실했다고 설명드리니 바로 알아채셨다. 안 그래도 경찰서에서 아침에 전화가 와서 가방을 발견하고 이미 연락했다고 한다. 여권이 있는지 가방 안을 살펴보니 무사하다. 휴 살았다.
나한테 경찰이 연락할 거라고 알려주셨다. 일본 전화번호가 없다고 말씀드리니 다시 경찰과 통화해 주셨다. 별도의 절차 없이 가방을 돌려받았다.
경찰서 분실물 신고부터 다시 분실물 찾기까지 하루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설마 했는데 잃어버린 물건을 모두 찾을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잃어버린지 몰랐던 물건도 꽤 있더라.
협조적인 경찰과 전망대 직원 덕분에 마음이 든든했다.일본에서 공손하게 응대를 받으니 나도 절로 공손해진다. 스미마셍무새(실례합니다)와 아리가또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무새가 되었달까.
그동안 나는 그런 일 없겠지라고 분실하는 것을 안일하게 생각했다. 막상 내 여권을 잃어버리고 나니 이렇게 여권이 중요하구나 몸소 배웠다. 다시 어제오늘과 같은 일을 겪는다면 정말 아찔하다.
이것은 여권분실주의글 혹은 여권분실희망편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권은 품에 차고 다녀야지. 분실물을 찾은 이 나라에 퍽 애정이 간다.
조금이나마 여권분실한 분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경험이길. 혹시나 일본여행에서 물건을 분실하셨다면 다들 무사히 찾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