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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Nov 06. 2023

여행중 경찰서에 가다

내게도 이런 일이

도쿄여행 8일 차. 여행중 경찰서에 가보다니. 자기 전에 오늘 일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어젯밤 늦게 숙소에 돌아왔다. 씻고 빨래하고 짐 정리하는데 아뿔싸! 여권 든 가방이 없더라.


당장 내일모레면 다시 한국 가야 하는데. 여기저기 다 찾아봤는데도 전혀 없는 게 아닌가. 나 한국 못 가나.


식은땀이 났다. 해외에서 한 번도 여권을 분실한 적이 없었는데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멘털붕괴다.


우선 도쿄에서 여권 잃어버리면 발급받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여권 잃어버리고 긴급여권 발급받으려면 약 7만 원 정도 드는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방법은 있구나 해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열심히 날아다니며 찍은 내 여권 속 나라별 도장들이 다 사라지는 게 아쉽더라. 도대체 어디서 잃어버린 거걸까.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 뒤를 살피며 잊은 물건이 없나 챙기는 버릇이 있는데 서둘러 일어나느라 못 봤다. 오늘 찍은 사진을 뒤적이다가 가방을 발견했다. 오다이바 텔레콤전망대 검은 소파에 가만히 놓여있는 게 아닌가.


사진 찍을 정신은 있었는데 내 물건 제대로 챙기지는 않았는지 어이가 없더라. 덕분에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어디든 촬영하는 습관이 이럴 때 도움되다니.


일단 빨래가 다 되어서 근처 코인세탁방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막연히 내일 텔레콤센터 전망대에 전화해서 분실물 들어온 거 없나 숙소 카운터에 부탁해 보려고만 생각했다. 근데 오빠가 경찰서에 들렸다가 가잔다.


그렇게 갑자기 온 경찰서. 당직 서시는 경찰분들이 일본어 못하는 외국인에 당황하신다. 구글 번역기 돌려서 간단히 여권분실했다고 말씀드렸다.


전화를 거시더니 영어 하시는 분을 연결해 주셨다. 나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전달받아 상황 이해완료. 종이 한 장을 내어주신다.


잃어버린 시각.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인지한 시각. 잃어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 잃어버린 물건들의 디테일한 정소. 이름. 주소. 연락처를 적었다.


사건번호가 적힌 접수증을 주셨다. 내일 아침 9시에 일단 경찰서로 다시 오라고 하신다. 전망대 사무실에 일본어로 연락해주신다고.


알고 보니 경찰서에 분실물 접수증이 없으면 긴급여권을 못 만든다고 한다. 오빠가 멘털 털린 나를 위해 찾아줘서 빠르게 경찰서로 향할 수 있었다. 빨래하러 떠나온 길이라 행색이 많이 추레하고 빨래짐을 가득 들고 피난 가듯 방문했지만 호호.


내일 과연 내 가방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전망대 영업종료 30분 전에 물건을 놓고 나온 거라 과연 누군가 가져갔을지? 분실물센터에서 챙겨주었을지?


여권 말고는 큰 귀중품이 없어서 다행이다. 타지에서 여권 잃어버리는 일을 겪다니. 아닌 밤중에 졸렸는데 잠이 깨고 말았다.


아 참, 오다이바 텔레콤 전망대 처음으로 돈 내고 전망을 봤는데 야경이 끝내준다. 500엔이 아깝지 않았다. 다만, 넋놓고 바라보다가 여권을 잃어버린 것이 함정.


이 난감함의 끝은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 얼른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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