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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Nov 16. 2023

현금을 사랑하는 나라

카드 꺼낸 손이 민망해지는 순간

현금 없는 사회를 너도 나도 외치지만, 어디든 여행하다 보면 현금은 꼭 필요하다. 특히 일본은 현금을 사랑하는 나라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가 신용카드 결제율이 96%인 것에 비해, 일본은 20%대에 불과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진이 일어나면 전기가 끊겨 현금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또한 어릴 때부터 미래를 위해 소비를 아끼고 최대한 빚을 내면 안 되며 저축하는 습관을 철저히 교육받는다고.


요즘 일본에선 현금을 은행에 맡기면 마이너스 금리라 인출해서 집에 현금으로 보관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나아가 현금 결제가 불편하지 않고, 신용카드를 쓰면 낭비하게 되며, 오히려 카드 보안 문제가 신경 쓰인다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현금만 받던 일본의 맥도널드도 카드 결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 2017년부터라고 하니 조금 이해가 간다.


최근엔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며 일본 내에 카드결제되는 곳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한다. 아예 키오스크를 통한 비대면 결제환경을 갖춘 곳도 많더라. 실제로 우리나라는 카드기계에 카드를 꽂아야만 결제되는 기기가 많은데, 일본은 다른 선진국처럼 터치만 하면 결제되는 기기(컨택리스 결제)가 많이 보급되어 있었다.


놀라웠던 점은 일본 3대 프랜차이즈 식당인 마츠야, 스키야, 요시노야는 카드결제가 가능했다. 저렴한 가격에 풍부한 양과 만족도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안전한 선택인 프랜차이즈 매장이 카드결제까지 되니 굳이 캐시온리 식당을 고집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사실 업체 입장에선 신용카드 회사에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기에 현금을 환영한다. 특히 이번 도쿄여행에 방문한 돈까스 식당들은 모두 캐시온리 방식으로 일본 사회 내에서 어떤 사회적 합의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카드를 내밀 때 손이 민망해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캐시온리를 외치는 몇몇 소규모 식당과 카페를 만났기 때문이다. 음식을 다 먹고서야 계산을 하는 경우가 많기에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본여행에 현금을 안 들고 왔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더라.


이렇게 현금만 받으면 탈세가 심한 것 아닐까? 다행히 경제규모 대비 탈세율이 우리나라보다 적은 편이라고 한다. 오랜 기간 일본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 온 만큼 일반 서민이 탈세하다 발각되면 돌이킬 수 없는 세금폭탄을 맞을 우려가 기본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이란다.


그나마 최근엔 현금결제에서 개선되어 계좌이체 방식인 페이결제는 허용되는 매장이 생겨났다. 카드결제는 안되어도 페이결제는 되는 이상한 경우인 것. 페이결제에서 일본 일인자는 페이페이다. 이외에도 알리페이, 라인페이, 라쿠텐페이 등이 있다.


한국의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도 일본 페이시스템과 발 빠르게 협업해서 일본에서 손쉽게 사용가능해졌다. 따로 환전 없이 QR코드만 갖다 대면 결제시점에 적용환율로 계산되는 방식이다. 덕분에 환전해 둔 돈을 쓰는 것보다 간편 결제하는 게 더 저렴해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도쿄여행 초반엔 900원이던 엔화가 후반엔 870원으로 빠르게 떨어져서 미리 환전을 많이 해둔 것이 아깝게 느껴지더라.


얼마 전 한국에 돌아와 국밥집에 갔다. 계산할 때, 계좌이체하고 2천 원을 할인받았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사실 똑같은 현금결제방식인데 왜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일까.


일본은 무조건 캐시온리만 내세웠던 반면, 한국에선 카드결제와 현금결제 중 선택권이 있었던 조그만 차이였다. 내가 카드결제할지, 현금결제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느니 덜 강압적으로 다가왔달까. 거기다 상대적으로 할인받는다고 느끼니 현금결제를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설계였다.


일본은 어딜 가나 직원이 친절하게 응대한다. 특히 계산서는 테이블에 건네줄 때 무조건 금액이 보이지 않게 뒷면으로 향하게 주더라. 배려 깊은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계산하는 순간에는 현금결제만을 조용히 강요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전자책이 생겨도 종이책을 읽는 사람이 여전히 있듯, 전자결제가 강화되어도 현금 없는 사회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모든 나라가 현금 사용을 하지만, 유독 일본에서 현금을 쓰는 건 특별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일본인의 현금사랑이 관광객인 내게도 느껴졌기 때문이니라.


대부분 카드결제가 가능해서 유독 몇 군데의 매장만 현금결제를 고집하는 것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편의점에서 소액을 구매하더라도 카드로 계산이 가능한 것이 너무 당연해진 세상에 살아서 그런가. 예전보다 확장된 일본의 전자결제 시장을 응원한다.


사실 전자책이 생겨난다고 종이책이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전자결제와 현금결제는 함께 갈 것이다. 다양한 결제방식을 제공하되, 현금 결제 시 상대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권장하길 바라본다. 물론 그것이 단순 마케팅 전략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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