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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Mar 26. 2024

[치앙마이 16일 차] 미국 1센트 주운 날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치앙마이에 중고물품 물류창고로 판매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눈 뜨자마자 다녀왔다. 거리가 꽤 멀어서 오토바이를 탔는데도 100밧이 넘게 나왔다. 원래 오토바이 기사들이 헬멧 안 챙겨주는데 공항 통과해서 가야 할 때는 헬멧을 건네주더라. 중간에 가는 길에 헬멧 단속이 있기 때문이다.


입구부터 옷 더미째로 판매하더라. 많이 사면 할인된다길래 궁금해서 왔다. 근데 너무 오염되고 보풀 많은 옷들이 50밧 이상이라 실망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보물을 찾아야 한단 생각에 열심히 훑었다. 덕분에 2시간 내내 창고에서 헌 옷을 구경했다. 헌 옷에 그 시대 트렌드가 담겨있더라. 같은 티셔츠들이 여러 번 나오니 그만큼 인기 있는 캐릭터가 무엇인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티셔츠 제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편으론 버려진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구멍 나고 얼룩졌을 때도 버려지지만, 홍보용으로 제작한 옷들은 특히나 그 행사가 끝나자마자 내쳐지더라. 특히 어느 축제 스태프나 자원봉사자 옷 같은 것. 뭔가를 기념하려고 만든 내 티셔츠들의 행방을 떠올려보니 나도 다 버렸던 것 같다.


구글 리뷰에서 무조건 마스크 필수라고 해서 챙겨 쓰고 왔는데 오랜만에 오랫동안 쓰니 어지럽더라. 화장실은 있는데, 옷 입어볼 수 있는 곳은 따로 없다. 그냥 입은 옷 위에 걸쳐보는데 바지에서 미국 1센트 동전이 튀어나왔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아직 미국 안 가봤는데, 이로써 미국에 가야 할 이유가 한 스푼 생겼다.


어쨌든 옷을 4개 샀는데 같은 가격의 옷을 10개 이상 사야 할인이 적용되어서 특별히 저렴하진 않았다. 거기다 소비세 7%가 붙더라. 그냥 시내에 있는 의류창고가 더 나은 거 같다. 그 상점이 그리워졌다.


여긴 헌 옷뿐 아니라 인형, 식기, 가구까지 없는 것 빼고 다 모여있다. 지난주에 다녀온 중고벼룩시장의 확장판이랄까. 근데 그 소소한 맛을 느끼고 와서 그런지 오히려 대형창고에선 큰 감흥이 없었다. 횡재했다는 느낌보단 여기서 물건 떼다가 파는 시내 중고의류가게 사장님들에 대단한 존경심이 들었다.


물류창고만 있는 곳이라 앉아있을 곳도 시원한 음료도 없었기 때문일까. 다리가 너무 아프고 목이 탔다. 여기서 푸드트럭하면 잘 될 거 같더라.


헌 옷인데 왜 이렇게 비싼 걸까 머릿속에서 궁시렁댈 때도 있었다. 이제는 알겠다. 헌 옷 창고에 와서 옷걸이에 가격별로 정리되어 걸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을지. 조금 더 비싸더라도 사람의 손길과 안목을 거친 결과물임을 제대로 배웠다. 앞으론 그 가치에 할인해서 구매할까 생각하기보다, 제 값을 지불해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 내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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