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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Feb 17. 2023

라오스에선 왜 햇볕에 쌀을 말리는가

루앙프라방에서만 볼 수 있는 이것의 정체

같은 라오스인데도 방비엥과 루앙프라방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끈 건 길거리 사방팔방에서 둥그런 모양의 쌀을 빽빽하게 말리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고추 말리듯이 말이다. 땅 바닥이든, 사원의 담벼락이든, 심지어는 자동차 본네트 위까지 햇빛이 잘 드는 곳이면 쌀이 꼭 그 자리에 있었다.

체크아웃하고 숙소 사장님이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물어봤다. 왜 쌀을 말리는지? 카오콥이라고 루앙프라방에서만 볼 수 있는 간식이란다. 누군가 좋아하는 음식을 자세하게 설명할 때,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사장님의 눈빛이 그러했다. 스티키라이스(찹쌀밥)를 동그란 모양으로 일정하게 만든 다음, 바짝 햇볕에 말린 다음에 튀긴다고 했다. 이리 정성 가득한 음식이라니.


궁금했을 때 바로 누군가에게 질문해 볼 걸 아쉬웠다. 그렇다면 대단한 정성에 맛이 더 궁금해서 먹어봤을 텐데. 이번엔 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와서 먹어봐야지 싶었다. 그나마 카오콥 이름이라도 안 것이 다행이었다. 그냥 누룽지처럼 과자로 먹거나 쌀국수 같은 데에 빠뜨려서도 먹으면 고소한 쌀의 풍미가 진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역시 내가 가장 여행의 재미를 느끼는 순간은 이렇게 사소한 생활 속 디테일을 발견하고 그 의미를 알 때다.


기차역 가는 밴이 오길 기다리면서, 사장님과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사장님은 아버지가 중국인, 어머니가 라오스태국인이라 매우 특별한 가족사가 있었다. 중국과 라오스를 오가면서 남다른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지만, 덕분에 영어, 중국어, 라오스어, 태국어 4개 국어를 유창하게 소통이 가능했다.


대화를 이어가던 중, 갑자기 아까 말했던 카오콥 2 봉지를 선물로 주셨다. 생각하지 못한 뜻밖의 선물에 울 뻔했다.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거 같길래, 직원에게 부탁해서 사 온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카오 콥을 못 먹은 걸 아쉬워하는 내 마음을 짧은 시간 몇 마디로 헤아려주시다니.

내 마음을 헤아려줘서 너무 감동했다고 말하면서 카오콥 두 봉지를 부여잡고, 한참 동안 지그시 바라보았다. 어쩜 이런 환대를 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 나는 받기만 하고, 신세를 져도 될까.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이해타산 없이 환대해 줄 수 있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지.


나는 오늘을 잊을 수 없다며 할 수 있는 말이 고맙다는 말밖에 없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페이스북 친구 하자고 계속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다고 했다. 용기 내서 사진도 같이 찍었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감동과 감사함이 물밀듯이 밀려온 순간이었다. 덕분에 사장님 이름을 알았고, 이름은 아버지 중국어 성은 어머니 라오스어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같은 한국어를 써도 서로 핀트가 안 맞는 경우가 많지 않나. 서로 모국어가 다르고, 짧은 영어 대화 몇 마디인데도 사장님과 나는 충분히 통할 수 있는 게 참 감사했다. 가끔 가다 코드 맞는 친구랑 대화하면 평소보다 영어를 길게 말하게 되는 게 신기하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져서일까.


사장님 덕분에 기약 없는 나중이 아니라, 이번에 카오 콥을 맛볼 수 있다니. 너무 마음이 소중해서 차마 봉지를 열기조차 조심스러웠다. 사장님은 내가 바로 먹어봤으면 했는지 직접 조각을 내서 주셨다. 먹어 보니 우리나라 쌀튀김과자와 맛이 비슷했다.


이 마음에 감동해서 나도 이런 점을 배우고 싶어졌다. 내가 받은 감동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아무 조건 없이 베풀 수 있길 다짐해 보는 거다. 일단 이 카오 콥은 3월에 엄마를 베트남에서 만날 때까지 이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게 아껴두리라.


이 글을 읽으면 아마도 누룽지가 당길 지도 모른다. 남은 밥을 프라이팬에 굽고 구수한 누룽지를 만들어 맘껏 즐기시라. 여행자는 누룽지를 구하기도 먹기도 힘드니 말이다.누룽지를 쉽게 먹을 수 있는 한국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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