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흠뻑쇼
드디어 오고야 만 4월 13일. 태국의 최대명절 새해행사이자 물의 축제인 쏭크란이 시작되었다. 너도 나도 거리로 나와 서로에게 물을 부으며 인사한다. 작년에 잘못한 일을 용서하고 정화하여 축복하잔 뜻이란다. 죄와 불운을 씻기 위해 불상에 물을 뿌리던 태국 전통의식이 발전된 형태인 것.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 씨익 웃으며 물을 뿌린다. 처음엔 사람에게 물 뿌리는 게 어색해서 물을 맡기만 했다. 흠뻑 얼음물로 온몸이 젖고 나니 정신이 든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현지인부터 관광객까지 계급장 떼고 서로에게 평등하게 물을 끼얹는 것이더라. 개운하게 홀딱 물로 적셔지니 나도 용기가 생겼고 본격적으로 물총을 들었다.
물총의 종류도 다양하다. 귀여운 작은 총부터 빠른 물충전이 가능한 바가지, 멀리까지 정확히 조준하는 큰 총까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예 물 호스를 연결해서 쉴 틈 없이 쏘아댄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란 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순간.
물의 출처도 범위가 다양하다. 운하 구정물부터 가정 수돗물까지. 하루종일 물을 맞은 몸이 제법 간지럽다. 최소한 눈에 물이 들어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고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인정사정없이 물을 맞기 때문에 핸드폰 보호를 위한 방수팩도 필수다.
물 뿌리기 이외에도 하얀 가루를 얼굴에 듬뿍 묻혀준다. 처음에 선크림인 줄 알았다. 얼굴에 묻힘 당하고 나니 분필재질이다. 액운을 막아주는 의미란다. 하루종일 축복에 끝이 없다.
태국에서 쏭크란이 유명하지만, 그중에서도 치앙마이의 쏭크란이 대표적이란다. 명성대로 나 홀로 여행자이지만 외로울 틈 없이 물을 맞았다. 지금 날씨가 태국에서 제일 더울 때라고 하던데, 시도 때도 없이 물을 맞아서 더위를 싹 잊어버렸다.
잊어버린 건 더위뿐 아니다. 내가 가야 할 계획도 잊어버렸다. 애써 찾아간 맛집은 아무런 고지 없이 송크란 휴가를 갔는지 문이 굳게 닫혀있더라. 거기다 물까지 쫄딱 맞으니 웃음밖에 나지 않아서. 물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만이 답이었다.
거리를 나서니 아예 툭툭과 픽업트럭을 대절하여 움직이면서 물을 뿌리는 단체가 엄청 많았다. 쪽수가 상대적으로 모자라니 바가지째로 물을 끼얹는 걸 고대로 맞는 수밖에. 그래도 픽업트럭 물이 올드타운 운하의 흙탕물보다 상대적으로 시원하고 깨끗할 거라고 위로해 보면서 말이다.
그렇게 적셔지고, 우연히 발길을 닿는 식당과 카페를 만났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가게 의자에 앉는 게 미안해서 눈치가 보이더라. 오히려 사장님은 쏭크란을 존중하며 아무렇지 않아 했다.
지금 글 쓰고 있는 카페에선 온몸을 적신 내가 추울까 봐 에어컨 바람도 꺼주고 따뜻한 수건도 가져다주셨다. 감동쓰. 이렇게 따뜻한 도시에서 차디찬 물을 홀딱 맞는다고 어디 화를 낼 수 있겠는가. 얼굴에 듬뿍 하얀 분을 바르고, 물총 하나 멘 채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거리의 음악에 물춤을 춰보기로 한다. 쏭크란은 4월 15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