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자극을 주는 장소를 만나다니.
새벽 1시 야간버스를 레미가 기다려줬다. 심지어는 12시 반에 건물 대문까지 배웅해 줘서 감동했다. 왜냐면 건물에서 밤에는 건물 게이트를 잠가두는데, 한 번도 늦은 시간에 밖에 나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문을 못 울까 봐 조금 걱정했는데, 그 마음을 알고 함께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나는 어둡고 무서움을 잘 느끼는데, 레미는 무서움이 없어서 오히려 호러 장르를 즐겨 본다고 한다. MBTI도 ESTJ인 나랑은 정반대인 INFP여서 어쩌면 아예 다른 성향이라 잘 맞을 수도 있겠다고 둘 다 생각했다. 참 고마운 친구 레미, 꼭 또 만나야지.
내가 문을 나서려는데, 길거리에 지나가던 행인이 에어비앤비 숙소 입구를 물어봤다. 알고 보니, 내 방 다음 입주할 친구였다. 어두운 밤이라 집을 찾느라 애 먹었을 텐데 우리를 만나 다행이었다. 괜히 내 방 오는 친구가 일찍 체크인했다면 내가 레미방에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텐데 타이밍이 좋았다. 숙소는 중앙역이랑 가까워서 10분 정도 걸으니 나랑 같이 버스 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확실히 로마가 이탈리아 수도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타서 든든했다.
ITA 버스를 처음 타 봤다. 이타버스는 이탈리아의 철도회사 트렌이탈리아에서 운영하는 버스인데, 나름 최신식으로 2층버스라 내부가 깔끔했다. 옆자리에 아무도 안 타고, 창가자리로 배정받아서 금방 잠이 들었다. 역시 어디서든 머리만 붙이면 잠들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심지어 휴대폰 충전도 가능했다. 레미가 로마에 이미 한 1주 살아봐서 간단한 팁을 전해줬다. 덕분에 로마에서 크게 뭘 해야 할지 걱정이나 고민하지 않을 수 있었다.
눈 떠보니 로마에 도착했다. 카푸치노가 맛있고 1유로밖에 안 한다고 해서, 근처 카페를 검색했다. 도보로 20분 정도 거리였다. 버스터미널이랑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리들 대형마트가 있더라. 이탈리아에 있는 대형마트를 한 번도 구경 못해서 반가웠다. 밤에 다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을 다시 와야 하기 때문에 저녁에 둘러보기로 기약하고 걸었다.
수도라 그런지 차가 상당히 많아서, 어느 길이든 교통체증이 꽤 있었다. 카페에 도착하니 여직원이 돈노돈노라고 말했다. 뭔가 주문을 하라는 얘기 같아서, 카푸치노, 초코 크로와상,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신기하게 주문하자마자 접시와 스푼을 올려줬다. 카푸치노는 큰 잔이라 큰 접시, 에스프레소는 작은 잔이라 작은 접시가 놓였다. 주문을 기억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했다.
주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초코 크로와상, 에스프레소, 카푸치노가 나왔다. 이탈리아 카페는 속도가 참 빠르다. 나까지 그 속도에 맞춰 빨라져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자리도 따로 앉은자리가 내부에는 없고, 외부에만 몇 개 있더라. 밖은 추우니까 안에서 서서 눈앞에 빵과 커피를 즐겼다. 다들 빠른 속도로 커피 한 잔 하고 챠오, 그라찌에라 말하며 빠져나가더라. 우리나라 떡볶이집 먹쉬돈나가 생각났다. 먹쉬돈나 뜻이 먹고 쉬고 돈 내고 나가인데, 이탈리아 카페는 마돈나가 아닐까. 마시고 돈 내고 나가. 아니면 돈마나. 돈 내고 마시고 나가. 그래서 나도 허겁지겁 다 먹고 나왔다.
레미가 웬만한 문화재는 입장권을 한 달 전에 온라인으로 예약해야 한다고 했다. 로마는 유적지 구경하려면 단단한 준비가 필요한 인상이 들었다. 하지만 콜로세움은 밖에서 보는 건 할 수 있으니, 시간이 되면 시내를 걸어서 둘러보라고 조언해 줬다. 너무 투어리스틱하지 않은 파스타 로컬 맛집도 추천해 줬다. 중간에 브레이크 타임이 있기 때문에 점심은 오후 1시~3시에, 저녁은 보통 오후 7시~9시 사이에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구글 지도에서 어디 갈까 찾아보는데, 도서관이 눈에 띄었다. 사실 짐도 많고 어차피 다시 버스터미널로 돌아가야 해서 터미널과 멀지 않은 한 곳에 자리 잡고 오래 머물고 싶었다. 도서관이 딱이었다. 거기다 로마에는 국립중앙도서관이 있는 게 아닌가. 오픈시간도 아침 8시 반으로, 걸어가면 딱 열리는 타이밍이라 바로 가보기로 했다.
도서관 오픈시간에 딱 맞춰서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래 사실은 시간을 써야 하는 일에는 공부만 한 것이 없었지. 독일에서 공부할 때도 학교 도서관 말고는 가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유럽 국립 도서관이라니 기대가 됐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지하철 출입구가 있었다. 카드가 있어야지만 입출입이 가능했다. 뭘 해야 하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자, 눈앞에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바로 다가와줬다. 여기 처음 왔냐고 물어봤다. 그렇다고 했다. 일단 건너편에 보이는 컴퓨터에서 가입하고, 바로 뒤편에서 신분증을 보여주면 이용이 가능하다고 친절히 안내해 주더라.
영어버전으로 바꿀 수 있어서 회원가입은 쉬웠다. 다만 한국이라는 나라를 고를 때, 열심히 South Korea, Republic of Korea를 찾았는데 안 보이더라. 설마 우리나라만 없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국가는 영어로 번역이 안되어있더라. 우리나라는 이탈리아어로 Corea Del Sud였다. 바로 가입을 하고, 여권을 보여드리니 회원증 카드를 주었다. 생각지 못했던 회원증 카드를 받으니, 이 도서관의 일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유럽은 도서관에 가려면, 가방을 사물함에 보관하고 들어갈 수 있다. 노트북이나 공책을 들고 가려면 가방 없이 보일 수 있도록 들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사물함에 모든 배낭을 넣어두고, 문을 잠갔다. 가벼운 마음으로 도서관에 입장했다. 물론 모든 책이 이탈리아어라 나는 읽을 수 없었다. 오전에는 만화책 작가를 소개한 자료집이 보여서 꺼내서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으려면 장부에 이름을 작성하고 사인해야 한다고 했다. 이탈리아어를 못해도, 영어로 다 말해주셔서 편안했다.
역시 국립도서관답게 모든 자리에 콘센트가 있었다. 이메일주소만 입력하면 간편하게 와이파이 연결도 가능했다. 밖은 춥고,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가도 오랫동안 앉아있기 불편했을 텐데 도서관은 모든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거기다 아침 8시 30분부터 빠르게 열고 평일엔 저녁 7시까지 운영하더라. 나는 밤 9시 반 버스를 타야 하는 나에게 길에서 헤매지 않을 수 있어서 안심이었다.
오후엔 밀린 여행영상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렸다. 내가 겪은 경험인데도 영상을 편집하다 보면, 며칠 전에 나는 이랬구나 다시 돌아볼 수 있어서 좋다. 기록의 힘은 생각을 더욱 확장하게 도와준다. 잠시 멈춰있던 블로그와 유튜브도 브런치처럼 꾸준한 일정을 가지고 운영해 봐야겠다. 내가 있던 열람실이 오후 5시 30분에 닫는다고 해서 밖으로 나왔다.
편안한 환경에서 집중해서 그런지, 아니면 좋아하는 일을 목표를 가지고 해서 그런지 시간이 빨리 흐른지도 몰랐다. 브런치 글을 쓰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봐야겠다. 마트 구경을 하고 맛있는 피자를 로마에서의 첫 식사로 먹어야지. 아주 잠깐이지만 마치 이 도시에 살아보는 느낌이 들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덕분에 스페인어, 이탈리어를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새로운 자극을 주는 장소를 만나다니. 즐거운 여행방법을 하나를 발견한 것 같아서 뿌듯하다. 앞으로는 방문하는 여행지마다 도서관에 들려봐야지.
*오늘의 유튜브 영상 : https://youtu.be/BFwtYX13W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