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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꽃 May 12. 2024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_이소연

(가끔 필요한 옷은 사지만) 나도 옷을 사지 않기로 했다.  

   책을 읽는 동안 과거 미니멀리즘에 빠져 기부했던 옷들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멀쩡하고 예쁜 옷이었다. 기부를 통해 그 옷을 누군가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래도 자꾸만 떠올랐다. 리바이스 청자켓과 시스템에서 산 민소매 여름 원피스 두 벌이 그것이다. 남색 원피스는 주름 잡힌 치마가 무릎까지 오는 탄탄한 소재에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다른 하나는 린넨 비슷한 소재의 초록색 긴치마가 종아리까지 오는 원피스였다. 가장자리에는 갈색으로 테두리가 있어 시원해 보이면서도 단정한 느낌을 주었다. 결혼 전에 샀던 옷인데 아기 낳고 이제 예전 같은 핏이 나오지 않는다고 입지 않았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옷들이라 누구 주기도 아까워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었다. 기부한 지 벌써 약 10년은 된 것 같다(심지어 그때 결혼 예복으로 샀던 예복도 기부했다). 


   무려 10년 전에 기부한 옷을 아까워하다니 내가 좀 지독한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도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그 옷을 가져간 사람이 옷을 얼마나 오랫동안 입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몇 번 입고 버리지 않았을까? 내가 좋아했던 옷들이 금세 버려진 것은 아닐까? 옷은 웬만하면 썩지 않는 데 어느 아프리카 해변에 쓰레기로 쌓이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 옷들을 지금까지 간직했다면 어땠을까? 이제 내 딸이 커서 그 옷을 잘 입을 수도 있다. 내가 좋아했던 옷을 내 딸이 나만큼 자라서 입게 된다면 그것도 큰 기쁨일 것이다. 아이도 언젠가 그런 원피스를 입을 텐데 다시 옷을 살 필요도 없고 함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저자는 옷을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 어쨌든 내가 옷을 최대한 오랫동안 입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제 돌아보니 이미 산 옷이라면, 거기다 멀쩡하고 내가 좋아하는 옷이라면 내가 최대한 보관하고 오래 입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게다가 나는 딸이 셋이나 있지 않나. 두고두고 입을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좋고 비싼 옷은 그때 '미니멀리즘'과 '기부'라는 명분으로 다 정리하고 물려주기에는 어려운 후줄근한 옷들만 남았다. 


     나는 돈 쓰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짠순이다. 물건이 공간을 차지하는 것도 싫어해서 물건을 살 때 신중을 기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란 부자를 더 부자가 되게 하고 나 같은 서민은 가난해지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소비하는 것을 더욱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 소비 중에 하나가 옷이다. 짠순이는 소비를 싫어하고 물건을 버리는 것을 아까워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쉽게 버리는 것을 보면 '어떻게 저럴 수가'하며 놀란다.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것 모두 쉽게 버린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점심 급식을 먹을 때 손도 데지 않은 망고, 만두, 코다리강정을 가차 없이 버린다. 짜장면은 식어서 맛이 없다고 조금 먹다 버린다. 내가 대신 먹고 싶다. 아파트 단지 안을 지나다 보면 멀쩡한 의자, 유모차, 소파가 버려져있다. 주어서 써도 될 것 같다. 옷은 어떤가. 가장 쉽게 사고 가장 쉽게 버리는 것이 옷이 아닐까.  지나가는 사람들만 봐도 다들 깔끔하고 멋지게 차려입고 다닌다. 지인이나 학교 선생님들도 그렇다. 옷이 많은 것 같다. 매일 바꿔 입고 다닌다. 저 옷은 언제 샀을까? 몇 번 입게 될까? 저 옷은 언제 어떻게 버려질까? 버려진 옷은 어디로 갈까? 


   저자는 나 같은 짠순이는 아니고 환경과 인권을 생각해서 옷을 사지 않기로 했다. 저자가 들려주는 자본주의와 패션, 소비, 노동, 환경, 동물권 등은 정말로 심각했다. 사람들은 옷을 너무나 쉽고 사고 쉽게 버린다. 몇 번 입고 버려진 옷은 개발도상국이나 아프리카로 가서 쓰레기 산이 된다. 케냐의 아크라에 전 세계에서 모인 옷이 쌓여 둑을 이루고 산을 이룬다. 아이들이 그 둑과 산에 올라 쓸만한 옷이 있는지 뒤지고 소들이 옷을 뜯어먹기도 한다. 그 모습은 그저 충격적이다. 


   몇 년 전부터 나의 패션 아이콘을 스티브잡스나 마크저커버그로 삼았다. 요즘은 엔비디아 CEO 젠슨황이 핫다니 그분도 패션아이콘에 추가하였다. 옷을 사도사도 부족하고 아침마다 '뭐 입지?' 고민하는 게 싫었다.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이 없다. 불편한 옷은 싫고 비싼 옷은 가격도 문제거니와 직장에 입고 가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교사는 앉았다 일어났다를 많이 한다. 급식실에서 아이들이 떨어뜨린 반찬도 쪼그리고 앉아 닦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러니 저렴한 옷을 사게 되었다. 그런데 옷은 예쁘게 입고 싶어서 대충 마음에 들고 비싸지 않으면 생각 없이 옷을 샀다. 그렇게 대충 산 옷을 매일 바꿔 입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옷을 사도 매일 아침 '입을 옷이 없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했다. 


   꽤 오랫동안 옷은 입고 벗기 편한 무채색으로 꼭 필요한 것만 산다. 가능하면 옷을 사지 않는다. 제대로 입지도 못하는 옷들이 내 공간과 시간을 차지하는 것이 싫다. 끊임없이 옷을 사고 매일 옷을 바꿔 입는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살아있는 한 끝없이 옷을 입어야 하는데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끝없이 옷을 사고 버려야 한다. 그 행위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그 행위가 어떤 큰 그림의 조각인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옷을 거의 사지 않으면서 타인의 눈, 시선, 평가에서 나는 자유로워졌다. 결국 나는 소비를 통해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 애엄마 같지 않다는 소리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매일 같은 옷을 입어도 예쁠 수 있다. 진짜 멋은 매일 바꿔 입는 옷에서 나오지 않는다. 진짜 멋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태도, 자세, 말투, 자신 있는 몸짓과 친절함에서 나온다. 옷을 사지 않는다고, 무채색 옷만 입는다고 멋을 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단정한 머릿결, 바른 자세, 군살 없는 몸, 밝은 표정이라면 옷이 많지 않아도 멋은 새어 나오게 되어있다.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목이 직관적이라서 저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왜 옷을 사지 않아야 하는지, 옷을 사지 않겠다는 저자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예시와 탄탄한 근거를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은 옷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 고찰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비자가 되어 계속 옷을 사고 그 옷은 기업 소유주들이 돈을 벌게 한다. 유행은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유명인들이 한없이 낯선 스타일의 옷과 신발을 착용한 모습을 처음 보고는 충격이나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이런 게 유행이라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아이템들도 무더기로 복재돼 홍대와 강남 거리에서 흔하디흔하게 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그렇게 '패션은 일종의 학습'이며 '유행은 철저한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대 기업을 위해 노동을 하고 돈을 벌어 옷을 사서 입고 버린다. 이것을 반복한다. 팔기 위한 옷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라나플라자 사건'이다. '2013년 4월 1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의 8층짜리 라나플라자 건물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대부분 어린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제대로 지어지지도 않은 공장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옷을 만드는 노동을 하며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장이 무너져 내려 그나마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개발도상국과 아시아, 아프리카에서는 하루 일당 천 원도 안 되는 대가를 받으며 성폭력과 착취를 당하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것이 바로 무한대로 찍어내는 패션산업의 불편한 진실이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마찬가지다. 가죽과 털을 구하기 위해 동물 또한 학대당한다. 


   환경, 소비, 노동, 동물권 등이 복잡하게 얽힌 옷이라는 물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조사와 준비를 많이 했다는 것이 보였다. 그만큼 옷을 사지 않겠다는 저자의 의지가 강해 보였다. 옷을 굳이 살 필요가 없는 이유도 강력했다. 나도 나름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음으로써 '역시 옷은 되도록 안 사는 게 좋겠군', '역시 돈은 안 쓰는 거야'라는 결심이 더 강해졌다. 옷과 소비, 환경, 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할 수 있고, 관심이 없었던 사람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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