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공부를 열심히 했어야 했다
수능 만점자 30인의 인터뷰이다. 요즘 내가 문해력에 관심이 많은데 6월에 읽었던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책에서 <1등은 당신처럼 공부하지 않았다> 이 책을 몇 번 인용했다. 제목도 자극적이고 내 관심을 확 끌어당겨서 이거 읽어봐야지 하고 밀리의 서재에 담아놓았었다. 수능 만점자라니 나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사람들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빼고 중학교부터는 1등을 해본 적이 없다. 가끔 보는 쪽지시험이나 어떤 과목에서 반에서 제일 잘 본 적은 있었지만 전체 1등이라든가 반 1등 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어서 1등은 정말 멋있어 보인다. 그런데 수능 만점이라니...! 덜덜덜......
이 책은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중고등학생이 읽는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실제적인 도움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래! 열심히 공부하자!'라는 의지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후회가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열심히 할 걸'이라고 하던데 이 후회는 다들 정말 많이 하는 것 같다. 나의 3대 후회 중에 하나도 '공부 좀 열심히 할 걸'이다. 지금 돌아보면 중고등학교 때 나에게 주어진 일은 그냥 공부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랬을까... 공부하기 싫은 마음, 해도 안 되는 (열심히 안 했으니까 그랬겠지만) 답답함과 좌절감 같은 것을 이해하기도 하지만 아쉬움이 훨씬 크다.
그때 나는 공부를 아주 잘할 거 아니면 안 하는 게 낫다는 아주 부끄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기 싫은 핑계에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어이없는 발상이다. '나는 사실 공부를 하면 잘하는데 안 해서 못하는 거다, 머리가 나쁘거나 진짜로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밑밥을 깔아놓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하나 더, 책상에 앉기까지가 힘들었다. 그냥 앉아서 하면 되는 것을 책상으로 걸어가서 의자를 꺼내고 앉는 행위가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막상 앉아서 책을 펼치면 그럭저럭 공부가 되고 왜 진작 공부 안 했나 후회하면서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도 드는 데 말이다. 너무 잘하고 싶고 남들한테 인정도 받고 싶은데 생각만큼 잘 안 되니까 그냥 대충 하고 포기해 버리는 어설픈 완벽주의자였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어쨌든 문제집을 펼쳐서 문제를 풀고, 매일 5시간 꼼짝하지 않고 집중해야지 하지 않고 일단 앉아서 1시간만 하자라는 마음을 먹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과한 인정욕구, 빨리 결과를 내고 싶어 하는 조급함이 내가 바라던 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 지금은 조금 깨달은 것이 있어서 글도 잘 쓰려고 하지 않고 일단 쓰고 발행한다. 영어도 잘하려고 하지 않고 '어쩌라고'하는 마음으로 안 들리면 안 들리는 데로 말 못 하면 못하는 데로 꾸준히 조금씩 공부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도 여전히 진작에 이랬으면 좋았을 거라고 다시 후회하는 마음이 든다. 역시 내가 잘하는 것은 후회와 질투.
책 속의 만점자들은 솔직히 대단하고 멋있다. 질투가 나서 조금 깎아내려보고 싶기도 했는데 다들 겸손했고, 묵묵하고 진득한 태도로 공부했던 것 같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책 위에 하이라이트하고 메모했던 부분이 상당히 많았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마지막에 컨디션 조절과 마인드 컨트롤이었다. 수능 시험장에 최고의 컨디션으로 들어가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게 사실상 참 어렵다. 긴장해서 잠을 못 자기도 하고 하필 그날 몸이 안 좋을 수 있고 여학생의 경우 생리를 하게 되기도 하고 변수는 많다. 수능이 1주일 미뤄지면서 미뤄진 수능 날 생리 이틀째 날이 딱 걸린 만점자가 있었다.
책에서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시험 전 날 긴장해서 잠을 잘 못 잘 경우를 대비해서 일부러 3,4시간만 자고 모의고사를 봤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본 시험을 잘 봤고 그래서 잠을 잘 못 자도 시험은 잘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시험 전 날 잠이 잘 왔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대비하는 것을 보고 만점 맞을만하다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치열하게 공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떠한 상황도 대비하며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더라도 변명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이 학생은 앞으로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겨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능 만점자와 비교하기는 우습지만 나도 위 사례 학생과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적어본다. 나는 삼수를 해서 고3 때 수능 제외하고 수능을 두 번 더 보았다. 그 두 번의 수능 전 날 모두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마지막 수능 때는 거의 밤을 새우고 시험장에 갔던 것 같다. 시험을 보는 동안 졸리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머리가 맑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 어찌 됐든 시험장에 가고 5시까지 시험을 봤던 경험은 나에게 이후에도 큰 힘이 되었다. '아, 그때 잠만 잘 잤어도'가 아니라 '내가 밤새고도 의연하게 시험장에 들어갔고 시험을 봤고 그래도 1등급을 받았으니 앞으로 웬만한 힘든 일은 버틸 수 있겠구나' 하는 단단함이 생겼다고 할까. 죽음의 공포와 고통을 견뎌서 자연분만으로 애 셋을 나은 경험도 나에게는 큰 자산이다. '내가 애를 셋이나 낳았는데 뭐 못할 게 있겠어?' 같은 무대포 정신 같은 것이 생긴 것이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그들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라. 독하게 공부한 수능 만점자들도 불안해하고 자책한다는 것과 그들도 하루의 공부 목표를 매일 빠짐없이 완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그러니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조금이라도 해봐야 한다. 내가 목표한 것을 이루지 못했으니 오늘 버렸다, 에라이 모르겠다가 아니라 또다시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 하면 된다.
책을 읽는 내내 수능 만점자들의 태도와 노력에 '대단하다'는 생각과 '나는 중고등학교 때 뭐 했나'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살자라는 마음과 그때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하는 마음이 끊임없이 오고 갔지만 역사에 만약은 없는 법. 오늘 내가 건강하고 내일이 또 주어진다는 희망이 있어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계발서 싫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자기 계발서랑 잘 맞는 것 같다.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 '나도 할 수 있다' 또는 '나도 이렇게 해보고 싶다'라는 의욕이 막 생긴다. 사실 이 책은 단순하고 뻔한 표현이 많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공부하는데 뭐 그럼 사색하고 철학하고 그러나...? 그런 생각할 시간이 있나? 그럴 필요가 있나? 공부는 이런저런 생각하지 않고 꾸준히, 책상에 앉아서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