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가고 싶어지는 책
토요일 동아일보에서는 두 면에 걸쳐 책을 소개한다. 9월 21일 토요일에 <더 기묘한 미술관>이라는 책을 소개했다. 첫 책으로 <기묘한 미술관>이 나오고 책이 잘 돼서 <위로의 미술관>이 나오고(요즘 읽는 책) 그 책이 또 잘돼서 <더 기묘한 미술관> 책이 나왔다고 한다. 부럽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쑥쑥 책이 나올까. 파리에 살면서 수 천 번도 넘게 미술관에 다녀본 현재 문화해설사가 쓴 책이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전시회나 미술관을 자주 가는 것은 아니다. 종종 '인상파 전시회' 같은 것을 보러 갔었는데 갈 때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림은 구경도 못하고 사람에 치여 올 때가 많았다.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도 싫고 시간 없다는 핑계로 요즘은 전시회나 미술관 등은 거의 가지 않는다. 사람 없는 평일에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20년 전에 갔던 유럽의 몇몇 미술관에서 느꼈던 기분이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유럽 여행을 갔을 때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몇 군데 가보았다. 유럽여행 가면 코스처럼 꼭 가야 하는 곳 아니겠나. 파리에서는 루브르와 오르세 미술관에 갔는데 여름방학이라 사람도 너무 많고 건물도 너무 커서 작품을 충분히 보지 못했다. 하지만 미술책에서만 보던 그림을 실제로 봤을 때 충격과 신선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나고 자라 처음 비행기를 타보고 처음 외국에 나가보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첫 외국여행을 갔던 20대의 어린 내가 책에서만 보던 대가의 그림을 바라보며 서있다.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과 모네의 작품을 봤을 때는 너무 신기해서 '이거 진짜야? 진짜? 설마...' 했던 것 같다.
루브르박물관에서 그 유명한 <모나리자>도 보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약 5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겨우 까치발로 잠깐 보았지만. 그림은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그림 양 옆에는 어깨가 나의 두 배, 위로는 한참 올려다봐야 하는 흑인 경호원이 한 명씩 서있었다. 그때는 그림을 감상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사람에 밀려 움직이다가 그림은 겨우 점만 찍고 빠져나왔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미술사 박물관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조용했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곳이 있나 싶게 외관도 웅장했으며 전시실마다 또 아름다운 그림이 있었다. 빨간 벽에 빈틈없이 그림이 걸린 전시실이 있었는데 나는 그곳이 무척 아늑하고 편안했다. 오래 앉아 있을 만한 의자가 있다면 낮잠도 자고 책도 읽고 좀 쉬고 가고 싶을 정도였다. 의자가 전시실 군데군데 있긴 했지만 불편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 미술학원에서 수채화를 배웠다. 그때 그림을 그렸던 것, 미술학원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기회가 되면 꼭 다시 그림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생각만 하고 있다. 대신 한 동안 그림과 미술관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그 그림이 그 그림 같고 미술사조나 작가 이름이 헷갈리지만 책을 읽는 동안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은 <나는 주식대신 달러를 산다>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책 소개를 보고 난 후 바로 <기묘한 미술관>으로 옮겨 탔다.
책을 읽는 동안 유럽의 미술관에서 가이드 투어를 받는 것 같았다. 미술관은 좋아하지만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은 싫어하는 나에게 집에서 조용히 일대일 안내를 받으며 미술관을 둘러보는 기분이라 좋았다.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씩 멈추어 미술관을 둘러보는 상상을 했다. 사람 없는 전시실에서 멍 때리거나 책을 읽거나 그림을 보며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부담 없는 친구가 옆에 있다면 이런저런 얘기를 소곤소곤 나누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미술사나 서양미술사를 제대로 배웠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대학에서 전공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아쉬움은 언제나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연수받을 때 미술사나, 그림 감상 같은 것을 선택했었다. 공개수업을 할 때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나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그림을 활용하기도 했었다. 역사를 좋아하고 그림도 좋아하니(그림은 못 그린다) 재미있었을 거고 관련 직업을 가졌다면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싶다. 서양미술사를 배우고 일로 하게 되면 외국의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자주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출장을 루브르박물관이나 오르세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같은 곳도 가지 않겠는가. 직업으로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이니 막상 출장으로 미술관을 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상상은 자유니까 기분은 좋다.
책을 읽기 전 리뷰를 볼 때 리뷰가 거의 다 좋았다. 안 좋은 리뷰가 없었다. 보통 삼분의 일은 안 좋은 리뷰인데 이 책에는 부정적인 말이 하나도 없었다. 리뷰를 쓴 사람들이 다 좋았다고 했다. 특히 '미술관에 가고 싶어지는 책'이라는 말이 많았다. 상상으로 떠나는 미술관 여행은 얼마나 좋은가. 돈도 아끼고 시간도 아끼고.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유럽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같이 돈 아까워하는 사람도 유럽으로 미술관에 가고 싶어 지게 만드는 책이다. 특별히 아름다운 표현을 썼거나 전혀 몰랐던 그림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기존에 그림에 관련된 책을 좀 읽었기에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책이 왜 재미있을까. 내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정보의 조각과 그림들을 하나로 연결시켜 주어서 그런 것도 같기도 하고, 오랜만에 읽는 그림에 관한 책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교양을 쌓고 그림을 감상하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더없이 좋을 책이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책 읽었다면서 결국 돈 얘기하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