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읽어보세요
와 정말 오랜만에 너무너무너무 재밌게 읽은 책이다. 소설, 경제, 자기계발서, 에세이, 부동산이나 주식 관련 등 여러 장르의 책을 읽지만 이렇게 재밌으면서 감동과 생각할 거리까지 주는 책은 정말 오랜만이다.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김겨울 작가의 유튜브를 보는데 이 책을 추천하기에 밀리의 서재에 담았다. 읽고 있는 책이 여러 권 있었던 터라 잠깐 미뤄뒀었다. 한동안 자기계발서 종류만 읽은 것 같아 재밌는 소설이 읽고 싶어 시작했다. 그런데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주제가 묵직한데 어떻게 이렇게 재밌고 흡입력 있게 썼을까. 세상에는 재밌는 책이 참 많고 뛰어난 작가들도 정말 많다.
이야기는 주인공 명주와 성준의 입장에서 교차된다. 이 두 사람은 정말로 지지리도 운이 없고 하는 일마다 꼬인다. 뭘 좀 해보려고 하면 이리 막히고 저리 막히고 안 좋은 일이 생긴다. 명주는 죽은 엄마를 미라로 만들어 관에 넣고 작은 방에 모셔놓는다. 엄마의 연금을 타서 쓰기 위해서다. 나는 이게 그렇게 충격적이거나 비도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돈은 아주 강력한 힘을 가졌으니까. 특히 한 푼이 아쉬운 입장이라면 더욱 그럴 수 있다. 명주는 몸이 안 좋아 일을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명주와 성준은 둘 다 돌봄노동을 한다. 명주는 치매가 심한 엄마를 모시며 살았다. 성준은 징그럽게 말 안 듣는 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성준의 아버지는 알콜성 치매에 뇌졸중 후유증까지 있다. 명주와 성준이 간병을 하면서 겪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마음이 아팠다. 남의 일이 아니라고 여겼기에 그들이 간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부분에서 몇 번이나 읽기를 멈추어야 했다. 나에게도 돌봄노동이라는 일이 닥칠지 모른다. 사실은 지금도 해야 하는데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엄마는 많이 편찮으신 아빠를 돌보고 계신다. 그것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는 멀리 떨어져 살며 엄마와 가끔 전화 통화 정도 하고 어쩌다 한 번 찾아뵙는 것만 한다. 그런데도 아빠를 만나면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어서 빨리 친정집에서 나와 집에 돌아가고 싶어 진다. 아이가 셋이나 있고 직장을 다니고 멀리 산다는 핑계로 아빠와 엄마를 외면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엄마는 아빠를 돌보는 일에 완전히 밀착되어 있다. 그 스트레스가 어떨지 감히 내가 말할 수 없다. 주변에 간병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간병을 '지옥'에 비유하기도 한다. 따뜻했던 할머니, 깔끔하고 명석했던 할아버지, 사랑하는 부모님도 노쇠하고 치매에 걸리면 어서 돌아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명주는 자신이 엄마를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참히 꺾였다. 간병은 지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자신의 한계를 매일 시험하는 것이었다. 길고 고된 간병으로 지친 명주는 치매인 엄마가 욕을 하고 밥상을 뒤엎던 날, 엄마의 얼굴과 머리를 사정없이 때린다. 성준에게 엄마를 작은 방 관속에 넣고 연금을 타고 있다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면서도 이 말은 하지 못했다. 성준은 상상 속에서 아버지를 사정없이 때린다. 바닥에 머리를 틀어박고 짓이기고 주먹을 날리는 상상을 한다. 상상한 것만으로 성준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간병을 하는 일은 이렇게도 고통스러운 일이구나.
한편 나는 아이들이 지금보다 한참 어렸을 때를 떠올렸다. 첫째 아이가 버릇없이 굴며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를 때가 많았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가끔 그런 행동을 한다. 그런 아이의 행동을 보며 참다 참다 피하다 피하다 미친 듯이 화가 나고 나 자신이 통제가 안 되는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이를 때리기도 했고 상상 속에서는 더 한 짓도 했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치매 걸린 부모를 돌보는 일보다 훨씬 쉬울 텐데 나는 분노와 화를 참지 못한다. 그런 내가 간병을 하면 어떻게 될까. 어떤 모습을 보일까. 아이를 키우면서 내 바닥이 어딘지 봤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바닥을 뚫고 들어가 더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추악한 모습이 나올 것 같다.
성준은 이런 사람이 있을까? 이런 자식이 있을까? 자식이 부모를 이렇게까지 돌보고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런 사람이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다. 자식 속 터지게 하는 아빠를 성준은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라고 걱정하고 위한다. 아버지의 연금과 자신이 대리운전 해서 번 돈으로 겨우 생계를 꾸리면서도 물리치료사 시험 준비를 한다. 그리고 끝까지 아버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들은 나를 이렇게 돌봐줄 수 있을까? 내 예상은 '아니다'인데 그렇게 해주면 싫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부모에게 성준처럼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역시 '아니'. 스스로 생각해도 이기적인 것을 넘어 섬뜩하다. 인간이란 이런 것.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만약 몸이 약해지고 치매에 걸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봤다. 아무래도 그냥 죽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치매란 인지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죽고 싶어도 자신의 의지로 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줄리안 무어가 주연한 영화 <스틸 앨리스>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죽고 싶어도 약을 어디다 놓았는지, 약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과정을 기억하지 못해서 죽지 못한다. 이래서 안락사가 얼른 시행되어야 한다고 또 생각한다. 내가 35년쯤 후에 죽는다고 가정하면(헐... 얼마 안 남은 듯) 그때는 꼭 안락사가 법적으로 시행되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미리 유서나 공증받은 문서로 '나 치매 걸리면 절대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말고 안락사시켜줘라. 안락사가 불법이라면 꼭 다른 방법을 찾아라.'라고 써놓으면 어떨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김겨울 작가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사회적 약자와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구조에 대해 얘기했다. 물론 거기에도 동의한다. 대리기사들의 보험료를 빼먹는 회사, 노동자를 기계 취급하는 콜센터 관리자와 회사, 최소한도 지원받지 못하게 사각지대를 만드는 법. 문제는 많다. 그런데 나는 사회 구조나 시스템보다 개인의 입장, 맥락, 각자의 캐릭터를 보려고 했다. 연대, 사회 개선 다 필요하고 병행해야 하지만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고 제도를 탓하는 것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더 노력해야지, 변화해야지라고 명주와 성준을 채찍질하고 싶었다. 그런데 명주와 성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할수록 개인이 할 수 있는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나는 사회 탓, 구조 탓을 하며 사회 변화를 너무 크게 외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게으름과 무능을 변명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나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도 대중에게 인기를 얻고 대인배처럼 보이고 싶어서 사회가 어떻고 구조가 어떻고 하는 식의 말을 많이 한다.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일수록 모순적인 사람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인데도 명주와 성준은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자기 할 일 다 하는데도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이럴 때는 정말 사회에서 좀 도와줘야 한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무난하게 사는 것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명주와 성준도 자신의 환경을 선택하지 않았다. 현실을 모르는 정책 입안자들이 행정 하기 편한 데로 정책을 만드는 일이라도 없으면 조금 나아질까.
이 책에서 악인이 한 명 나오는데 다름 아닌 주인공 명주의 딸 은진이다. 명주는 딸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딸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적이고 악하다. 아니, 딸이 어떻게 엄마한테 저러지? 응. 그럴 수 있다. 세상에는 별일이 다 일어나니까. 은진에게 별다른 서사를 부여하지 않고 건조하게 서술했던 점이 좋았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모성애, 끈끈한 정 같은 것을 넣지 않고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다. 드라마나 연극, 영화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정과 사랑을 매우 눈물겹게 그려내는 게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혼할 때 부부가 자식을 서로 자기가 키우겠다고 싸울 때 보면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서로 안 키운다고 해야 현실에 맞지 않나?' 누군가 '네가 엄마 자격이 없다', '너만 그런 거다'라고 하더라도 괜찮다. 나는 부모나 자식이나 모두 이기적이라도 생각한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이나 당장의 이익을 선택한다고 믿는다. 그게 부모와 자식 사이라도 그렇다. 명주와 은진(명주는 은진에게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명주와 명주의 엄마 정애 사이도 그렇다고 본다. 역시 자식은 안 낳는 게 가장 좋다. 현실 가족은 이런 것이다.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는 사람들은 참 현명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하이라이트를 하고 북마크를 한 것은 처음이다. 소설을 읽을 때는 주로 이야기를 따라가며 읽기 때문에 하이라이트나 메모가 거의 없는데 이 책에는 무려 하이라이트 58개, 북마크 7개가 있다. 공감 가는 부분이 무척 많았고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많아 감탄했다. 이렇게 글을 잘 쓰다니. 부럽다. 드라마나 유튜브보다 재밌으니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