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은총과 오래된 취미로의 회귀.
최근에 아동 미술원을 운영하게 되었다. 막상 오픈이 되고 상담을 받기 시작하니, 해야 되는 일, 생각지 못한 지출이 줄줄이 이어지는 바람에 마음 근육이 흐물흐물해져 도저히 단단해지지가 않았다. 내가 나약한 인간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가족들의 응원 덕분에, 가오픈이 지나고 정규수업이 이루어지는 2월, 두근거리는 마음이 조금씩 조용해졌다. 주말에 간 교회에서는 요셉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하느님이 생명을 구하시려 너를 보내셨다. 요셉은 총리가 되기 전에 부유하기도 노예가 그리고 죄수가 되기도 했었다. 한 국가의 원수가 되기 이전에, 사회의 최하층과 최고위층의 인생을 총망라하게 된 것이다. 인생의 고난과 두려움은 운명의 섭리이자 무릇 밟아야 했던 과정이라는 이야기였다. 국가의 원수는 아니더라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과정들이 떠올려졌다.
아무튼 불안하다. 점점 나아지기도 하지만, 마음이 요동치는 바람에 나는 일부러라도 내 기분 스위치를 마이너스로 내렸다. 나를 내려놓고 상황을 냉정하게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작용은 우울증이다. 나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나를 버린다는 의미도 함축되기에. 2017년도 즈음 나는 브런치를 시작하였다. 그 당시에도 바쁜 일정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해야 했었다. 우연히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온 한 작가의 영화 리뷰를 보고 난 뒤, 영화에 대한 깊은 고찰과 지식의 탐구에 가히 충격을 받았다. 기분이 안정적인 고도로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그 작가를 구독한 뒤에도 브런치 작가들의 글의 향연에 도취되어 잇달아 구독을 눌렀다.
부재의 시간을 뒤로하고 브런치에 다시 들어왔다. 나를 찾고 기분의 고도를 높이고 싶었다. 구독한 작가분들의 한숨 섞인 글들이 지난날처럼 또다시 나를 위로해주었다. 부재의 시간 동안, 계속 머물러있어 준 팔로워분들의 진득함에 또한 괜한 쑥스러운 연대감을 느꼈다. (혼자 별 생각..)
힘든 순간, 바쁜 일상 속에 나를 잃어가는 순간, 지난날 즐겨보았던 독립영화를 다시 보아야겠다. 학원사업에 대한 불안함을 잠재우려면, 곰팡이 냄새나는 영화관을 찾아다녀야겠다. 오랜 취미와 신의 말씀이 간절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