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집에 다녀와서
둘째가 군대 간 지 6개월 즈음 지나니 첫 휴가를 나왔다. 무엇이든 처음은 늘 바쁘다. 처음이니 이야기할 거리도 많고 인사해야 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가족 간에 오붓한 저녁식사 시간 자리를 만들기도 힘들었다. 딱 하루 토요일 시간이 비었다. 소원책담도 1시간 일찍 문을 닫기로 했다. 메뉴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둘째는 곱창을 좋아하고 큰애도 좋아한다. 게다가 아내도 좋아하니 가족끼리 외식할 때면 무조건 곱창집이다. 특히 이 곱창집은 부추가 기본 반찬으로 나오는데 둘째가 그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한 번은 다른 집에 갔다가 부추를 주지 않는다 했고 그 후론 다른 집은 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둘째는 곱창보다 부추파다.
문을 열고 곱창집에 들어서는데 빈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았다. 코로나 때 몇 번 갔을 때는 손님 있는 테이블이 별로 없었는데 확실히 이곳은 코로나영향은 벗어난 것 같다. 어려운 코로나 시기를 헤쳐간 사장님이 대단하고 부럽기도 하다. 여기 사장님은 우리가 아주 자주 오지 않지만 우리 가족을 기억하는 것 같다. 들어오자마자 반갑게 인사한다. 이곳을 처음 갔을 때는 아이들이 중학교 때 즈음이었을 것이다. 모두 같이 나가서 먹는 경우가 그리 자주 있지는 않아 기껏해야 1년에 두세 번 정도이니 몇 개월에 한 번씩 오는 손님을 기억할 수 있을까 했는데 여기 사장님은 두 아들을 기억했다. ( 나와 아내는 음식점 사장님과 대화를 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 하지만 큰 애가 대학에 갔을 때, 군대 가기 전에, 휴가 나올 때 급기야 이 날은 둘째가 휴가 나올 때이니 무언가 집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간 것 같다. 큰 애가 군대를 간다고 콜라를 서비스 주기도 하고 휴가 나왔다고 서비스를 주기도 했다. 그런 소소한 서비스가 고맙기도 하고 서글서글한 말도 즐겁다.
둘째의 부추 사랑 때문에 옆에 있는 내가 민망하기도 한다. 더 달라는 횟수가 6~7번 이상 되니 내가 자제하라고 눈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사장님은 싫은 표정 하나 없이 달라는 대로 가져다주신다. 민망하면서도 고마움을 느낀다. 사장님이 고기를 잘라주면서 슬며시 내 앞에 뭘 놓는다. 짜 먹는 홍삼이다. 이게 뭔가요라는 표정으로 사장님을 바라보니 "요즘 이것 없으면 힘들어요." 하면서 웃으며 말씀하신다. 그 마음이 따뜻했다. 근데 오랜만에 봐서 인지 사장님 얼굴이 야위었다. 나이가 들어 보였다. 여기를 처음 온 지 적어도 10년이 되었고 아이들이 이렇게 훌쩍 컸으니 나도 사장님도 그만큼 세월이 흘러감이 느껴진다. 내가 사장님을 보고 느낀 것을 사장님도 나를 보고 느꼈을 수 있다. 내가 요즈음 살이 많이 빠져서 힘들다고 생각했나 보다.
이젠 세월이 눈에 보인다. 간혹 재어보는 체중계에서도 세월이 보이고, 간혹 만나는 친구들을 볼 때도 보인다. 이렇게 단골 음식점 사장님에게도 보여 놀랐다. 그처럼 나를 보고 누군가도 세월을 느낄 수 있다 생각한다. 세월은 흐르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억지로 아닌 척할 수는 없다. 쉰이 넘어가면 사람들에게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젊었을 때 흔적과 나이가 들면서 굳어진 흔적들이 버무려져 나온다. 어떤 세월은 중후하기도 어떤 세월은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어떤 세월은 딱딱하기도 하고 다른 것은 아직 말랑하기도 하다. 나의 미래는 지난 흔적 위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젊었을 때는 앞만 보면 되었지만 중년부터 시간은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기도 하며 앞을 봐야 한다. 나는 나의 세월이 은은했으면 좋겠다.
은은한 세월은 품을 수 있는 것이다. 곱창집 사장님이 나에게 슬며시 홍삼을 주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조용히 어깨를 토닥여 줄 수 있는 은은함. 누군가 넘어졌을 때 무릎에 있는 흙을 털어주는 다정함.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옆에 있다는 것으로도 미소 짓게 만들 수 있는 푸근함. 그런 것들 담은 세월을 만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다정하고 은은한 세월이 소원책담의 향기로 다가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