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할 때는 '프로 불편러'가 되자

[내.고.법 7] 건강검진

by 글밥 김선영

글쓰기 코치 글밥입니다. 15년 가까이 글쓰기 노동을 하면서 생긴 신념이 있습니다. 내 글이 기왕이면 남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쳤으면 좋겠다, 이것이 너무 큰 욕심이라면 적어도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생산하거나 강화하는 글은 쓰지 말자라는 다짐입니다. 글을 쓸 때 지나친 자기 검열은 적이지만, 편견에 있어서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려고 합니다. ‘프로 불편러’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무의식적인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녹아든 글을 저는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표현합니다.


예문을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세탁기를 돌리고 나니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날 기다리고 있다. 설거지를 끝내니 거실에 널려있는 장난감부터 껍질처럼 벗어놓은 옷가지가 눈에 밟혔다. 엄마가 해야 할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이 문장에서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저는 ‘엄마가 해야 할 일’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립니다. 물론 대부분의 집안일은 여전히 가족 구성원 중 엄마가 가장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집안일을 모두 ‘엄마가 해야 할 일’로 규정해버리면 그 일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또 그 일이 잘 안 되어있으면 엄마 탓이 되어버립니다. 모두가 원하는 바는 아니겠지요.

[건강한 글]

세탁기를 돌리고 나니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날 기다리고 있다. 설거지를 끝내니 거실에 널려있는 장난감부터 껍질처럼 벗어놓은 옷가지가 눈에 밟혔다. 집안일(혹은 아이 뒤치다꺼리는)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건강 상태가 부실한 문장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전과자는 아무래도 위험하므로 이사 가기 전에는 그 지역 성범죄자 조회를 해보는 것이 안전하다.
그 여자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더니 상대방과 큰 소리를 내며 싸우기 시작했다. 밖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울 때부터 보통 성격이 아닐 거라고 예상했는데 역시나였다.
미국에서 사귄 친구 이레네는 서양인이라 그런지 육류를 즐겼다. 내가 몇 번이나 먹어보라며 비빔밥을 권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역시 여자는 꾸미기 나름이다. 달라진 수현의 모습에 그는 눈을 떼지 못했다.


물론 전과자가 위험하다고, 담배를 피우는 여자는 성격이 사납고, 서양인은 고기를 좋아하며 여자는 꾸미기 나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직간접적으로 그러한 경험을 했다면 그 믿음은 더욱 굳건하겠지요. 그러나 억울하게 감방살이를 했거나 개과천선을 다짐한 전과자도 있습니다. 얌전한 끽연 여성도 많고요. 채식을 선호하는 서양인이 늘고 있습니다.


자신의 편견을 진리나 당연한 것처럼 글에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 저는 사회적 편견이 더 강화된다고 믿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요. 내가 쓴 글이 사회적 약자나 소수, 혹은 특정 집단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경계하는 습관은 글 쓰는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글로 고쳐보자


전과자는 아무래도 위험하므로 이사 가기 전에는 인터넷에서 그 지역 성범죄자 조회를 해보는 것이 안전하다.

-> 불안하다면 이사를 가기 전에 인터넷에서 각 지역마다 성범죄자 조회를 하는 방법도 있다.


그 여자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더니 상대방과 큰 소리를 내며 싸우기 시작했다. 밖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울 때부터 보통 성격이 아닐 거라고 예상했는데 역시나였다.

-> 그 여자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더니 상대방과 큰 소리를 내며 싸우기 시작했다. 줄곧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니 심각한 일이 생겼나 보다.


미국에서 사귄 친구 이레네는 서양인이라 그런지 육류를 즐겼다. 내가 몇 번이나 먹어보라며 비빔밥을 권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 미국에서 사귄 친구 이레네는 어려서부터 육류 위주로 먹었다고 했다. 내가 몇 번이나 먹어보라며 비빔밥을 권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역시 여자는 꾸미기 나름이다. 달라진 수현의 모습에 그는 눈을 떼지 못했다.

-> 수수하게 다니던 수현이 한껏 꾸미고 나온 모습을 보고 그는 눈을 떼지 못했다.



단, 나에게 어떠한 편견이 있었는데 사라졌다, 혹은 내가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내용은 위에서 말하는 논의와 별개입니다. 솔직한 고백은 오히려 건강한 글에 속합니다.


[건강한 글]

- 나는 그동안 여자만 꾸미기 나름인 줄 알았다. 남자 역시 어떻게 스타일링하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졌다.

-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태도가 불량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편견이었다. 누구보다 공손한 친구였다.


건강한 글은 건강한 정신에서 나옵니다. 나도 모르게 굳어진 편견은 없는지, 무심코 끄적인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는지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해보길 추천합니다.



오늘의 한 줄:
내가 쓴 글이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건 아닌지
늘 경계하자!



다음 시간에는 디지털 시대의 편리한 퇴고 방법 '중복 제거' 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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