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때는 힘들어도 하고 나면 뿌듯한 게 운동 아니던가. 그런데 할 때마다 기분이 울적해지는 운동이 있었으니 나에게 필라테스가 그랬다.
필라테스를 배우려고 한 이유는 자궁내막증으로 복강경 수술을 한 뒤로 부쩍 복부 근력이 약해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배꼽을 통해 수술해서인지 주변부가 딱딱하게 뭉치고 유연성도 떨어졌다. 필라테스는 재활 운동이기도 하고 코어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들었다. 나는 일자목 진단을 받았고 자세가 구부정하다는 소리를 평소 많이 들었기 때문에, 체형 교정에 좋다는 필라테스에 관심이 있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60분 일대일 레슨을 받는데 6만 원이 넘었는데 나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효과를 보려면 한두 번 해서는 안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수술을 받고 보니 비용 때문에 건강에 투자를 미루는 것은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동네에 필라테스를 하는 곳이 많이 생겼으니 결심만 하면 되었다. 시설과 강사진 등을 꼼꼼하게 비교하며 둘러본 곳 중 가장 신뢰가 가는 곳에 등록했다.
그러고 보니 다양한 운동을 경험해 봤지만 강사에게 일대일 레슨을 제대로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전문가에게 체계적인 지도를 받다니 기대감이 부풀었다. 필라테스 스튜디오 안은 반짝반짝 빛났다. 화이트 톤 깔끔한 인테리어에 SNS에서만 보았던 필라테스 기구들이 여럿 놓여 있었다. 늘씬한 몸매의 인플루언서들이 꼭 저런 기구에 매달려 사진을 찍어서 올리곤 했다. 클라이밍을 꽤 오래 한 나는 ‘매달리는 것이라면 자신 있지’ 속으로 생각하며 그동안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던 우아한 여성들의 모습을 내 모습과 겹쳐 보았다.
하지만 수업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첫날에는 호흡법을 배우고 중립을 찾다가 60분 수업이 끝났다. 가만히 서서 갈비뼈를 열고 닫는 흉곽 호흡을 연습했다. 등뼈를 곧게 세우고 앞으로 기울어진 골반을 중립 상태로 놓기 위해 의식적으로 꼬리뼈를 말아 넣으라 했다. 나는 평소 오리 궁둥이처럼 엉덩이를 쭉 빼고 걷는 습관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골반이 틀어진 탓이었다. 골반이 뒤로 빠지면 허리에 무게가 실리고 통증을 자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강사님은 내 몸의 문제점들을 콕 집어서 알려줬다. 서 있을 때는 무릎을 뒤로 지나치게 미는 습관이 있고, 걸을 때마다 어깨를 심하게 흔들고 팔을 덜렁덜렁한다고도 했다. 거울 속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내 모습을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걸음걸이를 교정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한꺼번에 많은 정보를 집어넣으니 과부하가 걸렸다.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였다. 골반을 신경 쓰면 호흡이 흐트러졌고 호흡을 신경 쓰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어깨에 힘을 풀면 자세는 다시 구부정했고 이를 의식하고 복부에 힘을 줘서 세우면 무릎이 뒤로 빠지는 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강사님은하나하나 지적하며 내 자세를 교정해 줬다.
“꼬리뼈 말고! 가슴 너무 내밀지 말고! 어깨에 힘 빼세요!”
자세가 나아지지 않으니 다음 회차에서도 기본 동작만 훈련했다. 그다음 회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자리걸음, 짐볼에 앉아서 균형 잡기, 박스 위 오르내리기만 반복했다. 단순한 동작을 끝없이 반복하는 훈련은 지루하기만 했다. 게다가 계속해서 지적을 당하니 점점 의기소침해졌다. ‘나는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먹지?’‘이 간단한 걸 왜 못하는 거지?’ 자책으로 이어졌다. 주인의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이 한심하게 느껴진 것이다.
머릿속에 계산기도 돌아가기 시작했다. ‘개인 레슨 3회면 벌써 18만 원인데 내가 고작 제자리걸음만 하자고 여기 온 건가.’ 내 기준에 부담스러운 비용이 떠오르면서 짜증이 났다. “저는 기구 필라테스를 언제 하나요?”라는 질문에 강사님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내 상태로는 기구를 사용하는 게 오히려 독이 될 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해한다. 기본이 안 된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건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내 몸이 기구의 도움을 받으면 더 잘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도 남았다.
나는 계속 똑같이 움직이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에는 잘했다고 하고 어느 순간에는 틀렸다고 하니 혼란스러웠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자유롭다기보다는 통제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머리로는 알지만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문제점을 계속해서 지적당하니 가슴이 갑갑했다. 일대일 레슨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몸보다 마음이 더 지쳐있었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거울에 비추는 계기가 되었다. 1:1 글쓰기 코칭을 할 때 수강생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고자 ‘고쳐야 할 점’ 위주로 피드백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잘한다는 말은 내가 아니어도 주변에서 많이 해줄 테니까, 돈을 내고 수업을 듣는 사람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필라테스 강사 역시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배우는 입장이 되고 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잘하고 있다’라는 인정의 한 마디가 다음 걸음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나는 잊고 있었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한 마디
그러고 보면 내가 계속 책을 쓰는 사람으로 사는 것 역시 인정의 한 마디 덕분이었다. 나는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방송 대본을 쓰던 사람이지, 책을 쓰는 저자가 아니었다. 글쓰기는 다 비슷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매체가 다르고 누가 정해준 주제가 아닌 내 이야기를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책을 쓸 때면 항상 ‘이렇게 쓰는 게 맞는 건가’, ‘혹시 다들 아는 얘기 아닐까’, ‘지루하고 재미가 없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휩싸였다.
그래서 원고 마감 날짜가 다가오면 나와 함께 바빠지는 사람이 남편이다. 걱정을 떠밀듯 원고를 모두 출력해서 남편에게 갖다 준다. 책의 첫 독자인 셈이다. 내가 그에게 초고와 다름없는 부끄러운 글을 보여주는 이유는 하나다. 출판사에 넘기기 전 ‘괜찮다’라는 한마디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부적인 평가를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나중 일이다. 우선은 “괜찮은데?”, “재밌는데?” 한마디면 충분하다. 별말 아닌 것 같아도 가슴을 짓누르던 바윗덩어리 하나가 치워진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진다.
특히 ‘처음’은 항상 서투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더욱 타인의 인정이 고픈지 모르겠다. 마치 초보운전자가 아는 길을 갈 때도 매번 내비게이션을 켜고 ‘잘 가고 있다’를 확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의 필라테스 도전기는 결국 어떻게 됐을까? 개인레슨 열두 번 중에 두 번 정도만 기구를 만져볼 수 있었다. 기본자세를 잡는 것만 주야장천 배우다가 개인레슨 과정이 끝나버린 것이다. 그 후로 그룹레슨을 몇 개월 더 이어갔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필라테스가 구부정한 체형을 교정하고 근력을 기르는데 정말 좋은 운동이라는 점은 느꼈지만 계속하고 싶을 만큼의 재미는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서였다. 잘 맞는 운동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 안 맞는 운동도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다시 요가로 돌아갔지만, 고가의 필라테스 레슨비가 아깝진 않았다. 서툴러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잘하고 있다’라는 응원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지 않고 인생을 바꾸는 법!
저는 아토피, 허리디스크, 기능성소화장애, 편두통, 자궁내막증을 앓고 있지만 일상에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내 인생은 짱짱합니다. '긍정의 기운'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매거진 구독하시고, 매주 목요일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