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밥 Oct 10. 2023

'안 된다'라는 실체 없는 믿음

마음만 바꾸었더니


한때 가수 이효리도 즐겨했다는 ‘아쉬탕가’ 요가에 빠져 한동안 열심히 수련했다. 요가는 모두 정적인 줄만 알았는데 신세계였다. 아쉬탕가를 1시간하고 나면 습식사우나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온몸에서 땀이 쏟아졌다. 땀이야 운동이 되었단 뜻이고 씻으면 그만이지만 참기 힘든 건 근육통이었다. ‘며칠만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하는 판단은 틀렸다. 몇 달이 지나도 똑같았다. 아쉬탕가는 할 때마다 아프다.     


돌이켜보니 내가 좋아했던 운동이 대개 그랬다. 3년 동안 클라이밍을 했는데 운동을 한 다음 날이면 누구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듯 근육통이 심했다. 벽에 매달려있을 땐 집중하느라 잘 몰랐는데 팔뚝, 엉덩이, 옆구리 갈비뼈 한 줄 한 줄까지 욱신거렸다. 그러고 나면 나는 질려서 며칠 운동을 쉬기도 했다. 문득 한 의사 유튜버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여러분, 살 뺀다고 러닝머신에서 30분 뛰고 상쾌하다며 뿌듯해하시죠? 그건 운동이 아니라 산책이에요. 살 빼려면 상쾌하면 안 돼요, 숨도 못 쉬게 고통스러워야 합니다.”          


살 빼려고 하는 운동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제법 제대로 운동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버거운 운동들이 자꾸만 끌렸다. 꾸준히 하다 보면 버티는 힘이 키워질 테고 그렇게 다져진 내 몸과 마음은 아무리 힘든 상황이 와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육상 선수 출신 물리학 박사인 알렉스 허친슨이 쓴 책 <인듀어>에는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육상 선수, 극지 탐험가, 프리다이버 등의 사례를 들어 ‘지구력을 키우려면 통증을 참아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책에 나온 몇 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소개하자면. 운동선수들은 일반인보다 얼음물에 손을 넣고 2배 이상 오래 버텼다고 한다. 한겨울 싱크대에서 상추만 씻어도 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데, 운동선수들은 무통 주사라도 달고 사는 건가, 어떻게 참고 버티는 걸까. 운동이란 어쩌면 ‘고통을 참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에 따르면 그 비밀은 바로 운동 ‘강도’에 있다고 한다. 쉬운 훈련을 백번 받는 것보다 간헐적으로라도 고난도 훈련을 받아야 고통을 더 잘 참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꾸준히’만으로는 실력이 느는 데 한계가 있었다. 임계점을 뛰어넘는 경험이 동반되어야 했다. 내가 운동을 해도 해도 늘지 않았던 이유 아닐까. 나는 꾸준히는 가능했지만 무리하면 안 되는 몸이었다. 무리하면 어김없이 탈이 났고 회복이 느린 편이라 운동을 할 때도 몸을 자주 사리게 되었다.      


심리적 장벽 이야기도 흥미롭다. 마라톤을 비롯한 많은 스포츠 경기에서 ‘인간의 한계’라고 여겼던 기록이 있다. 예를 들어, 100m 달리기 10초의 벽이 그것인데, 누군가 그 기록을 깨면 가까운 시일 내 다른 선수들이 연달아 그 기록을 달성한다고 한다. 저자는 잠재력을 가로막았던 정신적 장애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니까 신체적 한계나 고통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린 경험이 있다. 아쉬탕가 동작은 정해진 순서가 있는데 가장 기본인 시리즈를 반만 하는 하프 프라이머리도 1시간은 족히 걸린다. 2년 넘게 수련했지만 나는 하프 시리즈의 동작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다. 특히 ‘시르시아사나(머리서기)’를 할 순서가 다가오면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오늘도 또 안 되겠지’, ‘분명 쓰러질 거야’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머리를 요가 매트에 박은 채 애처로운 발끝만 콩콩 굴렀다. 역시나 될 리가 없다. 한 번은 과감하게 시도했다가 앞으로 고꾸라진 적이 있었기에 겁이 더 많아졌다. 속상했다. 요가를 3년 넘게 했는데 거꾸로 서는 기쁨을 꼭 한 번은 맛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실 소파에 누워 SNS를 넘겨보다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요가를 시작했던 친구가 찍어 올린 동영상을 발견했다. 매트에 정수리를 대더니 가뿐하게 다리를 들어 올려 ‘머리 서기’에 성공하는 장면이었다.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이런, 질투가 꿈틀댔다. ‘나라고 왜 안 되겠어?’ 하는 오기에 나는 갑자기 매트도 깔지 않은 채 거실 바닥에 정수리를 대고 자세를 잡았다. 양손으로 뒤통수를 야무지게 받치고 엎드린 자세에서 엉덩이를 천장을 향해 들어 올린다. 날개뼈를 양쪽으로 벌리고 복부에 힘을 준다. 이마 쪽으로 발끝을 세워 걸어오는데 웬걸, 갑자기 다리가 가벼워지더니 하늘로 붕-하고 올라가는 게 아닌가. 너무 가볍게, 마치 누가 끌어올리기나 한 듯 다리가 올라가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당연히 안 된다고 선을 그었던 동작이 마음가짐만 바꾸었을 뿐인데 되었다. ‘오늘도 안 되겠지’와 ‘나라고 안 되겠어?’의 차이는 강력했다. 마치 그동안 안 아픈 사람이 꾀병을 부린 것처럼, 할 줄 아는데 안 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요가를 하면서 배운 것은 대개 이런 것들이었다. 아주 조금씩 진척된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아도, 차이가 없는 것 같아도 차곡차곡 쌓인 세월은 반드시 변화를 이끌었다. ‘꾸준히 하면 성장한다’는 명제를 운동하기 전에도 모르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머리로만 아는 것과 몸으로 통과하여 깨닫는 일은 다른 차원이었다.      


어릴 적 엄마가 많이 업어준 기억도 없는데 내 두 다리는 O자형으로 휘었다. 미관상 예쁘지 않은 것보다 더 슬픈 건 요가할 때였다. 한 다리로 균형을 잡고 서기가 힘들었다. 아무래도 쭉 뻗은 다리보다 안정적이지 못하고 비틀거릴 테니까. 한 다리로 서는 동작을 할 때마다 매번 비틀거렸던 나는 신체의 한계라고 체념했다. 하지만 다른 운동들을 하면서 코어 근육이 키워지자 점점 흔들림이 줄었다. 다리로만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꼿꼿하게 세우는 힘도 필요했다. 언제나 요가는 네가 틀렸다고 알려준다. 요가를 하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스노우폭스 김승호 회장은 <사장학개론>에서 ‘실패하면 마음이 작아지는데 작아진 마음은 몸으로 키우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어떤 실패를 해도 다시 걸을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아쉬탕가를 하면서 나는 회복탄력성을 키웠다. 몸이 아프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했다. 실력을 키우겠다고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얼마든지 지속할 수 있다. 안 되는 동작은 다시 하면 되었고, 다시 해도 안 되면 또다시 하면 되었다. 그래도 끝끝내 안 되어도 내가 잃을 것은 별로 없었다. 그 순간을 충분히 즐겼기 때문에.      


지금은 아쉬탕가를 겨울에만 한다. 한여름에 아쉬탕가를 하면서 땀을 너무 많이 쏟는 바람에 아토피가 심해진 적이 있었다. 한동안 진물이 나서 수습하는 데 애를 먹었다. 당시에는 아쉬탕가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속상하고 억울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이태오처럼 “요가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하고 외치고 싶었다. 한 번씩 이렇게 몸 상태 때문에 제동이 걸릴 때면 운동을 마음껏 해도 몸에 탈이 나지 않는 건강한 사람들이 부럽다. 그들은 그렇게까지 운동해야 할 이유를 못 느끼겠지만 말이다.









다시 태어나지 않고 인생을 바꾸는 법!


저는 아토피, 허리디스크, 기능성소화장애, 편두통, 자궁내막증을 앓고 있지만 일상에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내 인생은 짱짱합니다. '긍정의 기운'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매거진 구독하시고, 매주 목요일에 만나요.



이전 02화 맨날 아픈 사람도 결혼할 수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