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동안 내 헤어스타일은 망토처럼 등을 덮는 긴 머리였다. 가끔 변화를 주고 싶을 때 길이를 약간 다듬거나 파마를 하기도 했지만 짧은 머리를 한 적은 없었다.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내가 중학생이던 90년대 후반에는 학교에서 두발 규제를 심하게 했다. 매일 아침 교문 앞에는 가위를 든 학생주임이 절 입구를 지키는 사천왕처럼 험악한 얼굴로 서 있었다. 조금이라도 머리가 길어 보이는 학생은 어김없이 붙잡아 플라스틱 자로 머리카락 길이를 쟀는데 귀밑 2센티가 넘으면 그 자리에서 싹둑 잘라버렸다. 학생 인권조례가 있는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당시 학교 교문 앞 바닥은 마치 미용실처럼 머리카락 뭉치들이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나는 마치 그동안의 한을 풀겠다는 듯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머리를 길렀다. 대학 응원단을 할 때는 실제로 ‘머리빨’이라는 것이 필요했다. 동작할 때 고개를 숙였다가 힘 있게 뒤로 젖히면 마치 샴푸 광고처럼 긴 머리카락이 요란하게 뒤집히면서 박력이 더해졌으니까. 게다가 한창 연애에 관심이 가득하던 20대에, 포카리스웨트 광고 속에 나오는 ‘샤라랄라’한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면 내가 청순가련한 여성이 되고 인기가 많아질 것 같았다. 못생긴 얼굴에 머리까지 짧으면 큰일(?) 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거울을 보면 왜 그렇게 못난 구석만 보이던지. 주름이 자글자글한 지금보다는 훨씬 싱그러웠을 텐데. 그때의 나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긴 머리의 불편함은 말해 뭐 할까. 겨울에는 목도리에 버금갈 만큼 보온 효과가 톡톡한 만큼 여름에는 히터를 두르고 다니는 기분이다. 긴 머리카락 사이에 열기가 갇혀 목덜미와 가슴은 땀으로 척척해지며 불쾌지수가 올라갔고 아토피가 있는 목이 가려웠다. 영하의 날씨에 늦잠을 자서 긴 머리를 말리지 못한 채 출근할 때면 뒤통수에 멘소래담을 바른 듯 얼얼했고, 머리카락은 고드름처럼 딱딱하게 굳어있기도 했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랐다. 중학생 때보다 더 짧은 숏단발을 결심한 계기는 다름 아닌 ‘요가’였다. 다운 독처럼 엎드리거나 고개를 숙이는 동작을 하고 나면 긴 머리가 산발이 되었다. 깔끔하게 뒤로 묶으면 머리를 대고 눕는 자세나 머리 서기처럼 머리를 매트에 대는 동작을 할 때 배겨서 방해가 됐다. 그러면 요가를 멈추고 고무줄을 풀어서 머리를 다시 묶어야 했다. 요가를 편안하게 하는 사람들을 가만 관찰해 보니 모두 묶을 필요 없는 짧은 머리였다. 굉장한 비밀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요가 수련을 하는 데 걸리적거리는 머리카락을, 15년 동안 길러온 액세서리를 과감하게 자르기로 결정했다.
단골 미용실 원장님께 숏 단발로 잘라달라고 하니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스러워했다. 몇 번씩이나 되물으며 ‘정말 괜찮겠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재차 나의 확답을 받고서야 원장님은 나보다 더 결의에 찬 표정으로 내 머리를 하나로 묶었다. 스포츠머리로 밀 때 쓰는 ‘바리깡’을 꺼내 들더니 동여맨 부분을 쓱쓱 몇 번 문질렀다. 머리 뭉치가 썩은 동아줄처럼 뒤통수에서 뚝 떨어졌다. 잘라낸 머리 뭉치는 개량 한복을 입고 수염을 기른 예인이 즐겨 쓰는 커다란 붓처럼 보였다.
나의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간 소감은 시원섭섭했다. 이깟 머리가 뭐라고 그동안 자르지 못했을까. 정원 회양목을 다듬는 듯한 미용사의 현란한 가위질이 끝나자 동그란 단발머리가 완성됐다. 생각보다 나에게 잘 어울렸다. 10년 동안 내 머리를 만진 원장님도 인사치레인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머리가 더 잘 어울리는데요.” 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거울에 비친 단발머리 김선영은 중학생 때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어딘지 자신감이 넘쳐 보였고 전문가다운 분위기가 풍겼다. 치렁치렁한 것보다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이 들어 작가와 강사 일을 병행하는 나에게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요가를 할 때도 걸리적거리는 일 없이 집중하니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며칠 후에는 억울하기까지 했는데, ‘이렇게 편한 것을 지금껏 남자들만 누렸다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반 이상 줄었다. 그동안 물에 젖어 산모 미역 같은 긴 머리를 바싹 말리려면 30분이 족히 걸렸다. 한 손으로는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풀어주면서 한 손으로는 드라이어를 계속 흔들어대야 하니 팔이 아팠다. 긴 머리일 때는 머리를 감는 것이 매일 치러야 하는 ‘과업’처럼 느껴졌는데 단발이 되자 양치처럼 가벼운 루틴이 됐다. 5분이면 끝나는 간편함! 머리카락을 잘랐을 뿐인데 오랫동안 날 괴롭히던 무언가에서 해방된 듯 후련했다.
긴 머리로 아토피 흉터가 있는 목을 가리지 않아도, 긴 얼굴형을 커버하지 않아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머리로 얼굴을 가려야 할 만큼 스스로 못생겼단 생각도 더 이상 들지 않았다. 그동안 나에게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까. 이유는 모르지만 좋은 변화임은 확실하다. 어쩌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나 자신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본능일까. 어느 날은 건조기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남편의 트렁크 팬티를 개키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언제부터 이런 아빠 팬티를 입었지?’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몸에 밀착되는 드로즈를 줄곧 입다가 어느새 아재 취향으로 갈아탄 남편이 귀여우면서도 그 탁월한 선택에 공감이 갔다. 5년 전, 발사할 듯한 뽕이 들어간 와이어브라를 죄다 갖다 버린 일이 떠오른 것이다.
브래지어를 처음 착용한 게 중학교 때 즈음이었나. 특히 성인이 된 뒤로는 뽕은 물론이요, 가슴 아랫부분을 받쳐주는 U자형 철심이 들어간 와이어브라를 줄곧 착용했다. 당연한 줄 알았다. 시중에 파는 브래지어 대부분에 와이어가 들어있었고, 그것이 가슴 모양을 봉긋하게 해 여성스러움을 강조한다고 하니 갑갑하고 짜증이 나도 참아야 하는 줄 알았다.
30대가 되어서야 ‘와이어와 후크’가 없는 브라렛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편안함에 한 장씩 추가 구매를 하다 보니 서랍장 속에 수북한 와이어브라에는 1년이 넘도록 손도 대지 않는 사실을 깨달았다. 브라렛은 와이어가 명치를 찌르는 일도 없고 갈비뼈를 갑갑하게 조이지도 않아 소화도 더 잘되는 것 같았다. 여름에 땀이 차서 두드러기가 나는 일도 사라졌다. 결국 사용하지 않는 와이어브라를 모두 폐기 처분했다.
남의 시선이 아닌 나의 편안함을 기준으로 외모를 가꾸고 돌보는 시대다. 나도 한때는 패드가 있는 속옷으로 빈약한 가슴을 보완할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기도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긴 머리나 볼륨 있는 가슴이 아니어도 괜찮다. 내 모습 그대로가 가장 나답고 멋지다는 걸 안다. 그렇지 않으리라 믿지만, 혹시나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은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나도 아쉬운 점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말해두겠다.
다시 태어나지 않고 인생을 바꾸는 법!
저는 아토피, 허리디스크, 기능성소화장애, 편두통, 자궁내막증을 앓고 있지만 일상에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내 인생은 짱짱합니다. '긍정의 기운'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매거진 구독하시고, 매주 목요일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