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기보다 중요한 빼기
집에서 일하는 나는 매일 혼자 밥을 먹는데 밥상이 단출하다. 아침은 버터를 바른 사워도우와 비살균 치즈, 갓 내린 아메리카노. 점심 겸 저녁은 생선구이와 쌀밥, 혹은 쇠고기 한 덩이를 먹는다(요즘은 목초우 값이 많이 올라 무항생제 닭고기나 가끔 양고기를 먹는다). 밥이나 고기를 먹을 때는 느끼함을 잡아줄 김치를 꺼내 먹지만 그 외에 다른 반찬은 거의 해 먹지 않는다. 후식은 과일 한 조각이면 충분하다. 혹시 영양이 부족할까?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데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 간 수치, 체중까지 모두 정상이다.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를 먹지 않아도, 현미밥을 먹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남편의 식단은 더욱 간단하다. 평일에는 점심으로 카페라테 한 잔을 마시고 온종일 ‘밥’을 한 끼도 먹지 않는다. 유지방이 든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생활하는 것이다. 대신 금, 토, 일요일에는 먹고 싶은 음식을 실컷 먹는다. 이날만큼은 배달 음식도 용인한다. 그가 간헐적 단식을 실천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그동안 13kg을 감량하면서 평균 체중을 찾았고 요요 없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누구 남편인지 참 존경스럽네). 아직 빵을 포기하지 못한 나의 최종 식단 목표도 간헐적 단식이다.
공복 상태를 일정한 주기로 유지하는 ‘간헐적 단식’은 과잉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건강한 식사법으로 알려져 있다. 방송에서도 여러 번 심도 있게 다뤘고, 실제로 다이어트에 성공하거나 건강을 회복한 사례들이 수차례 소개되면서 그 신빙성을 높였다. 일주일에 이틀은 24시간 단식을 하고 3~5번 정도 아침을 거르거나 16시간 정도 배 속을 비우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공복 상태에서는 새로운 세포를 만들기보다 기존 세포들을 고치는 데 더 힘을 쏟는다고 한다. 그 과정에 불필요한 지방이 빠지고 건강도 좋아진다는 이치다.
<내면 소통>을 쓴 김주환 교수 역시 음식의 종류에 집착하기보다는 간헐적 식단을 하라고 추천한다. 무엇을 먹으면 몸에 좋고 해로운지는 연구를 통해 밝히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붉은 고기를 하루에 100g 이상 먹으면 대장암 위험도가 17%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더라도, 그 사람이 와인을 고기와 함께 자주 즐기거나 채소를 적게 먹는다거나 하는 변수가 있다면 정확성을 신뢰하기 어렵다. 하지만 공복 상태를 16시간 이상 유지하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다.
‘먹는 게 삶의 이유’라고 선언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건강 다큐를 보더니 간헐적 단식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밤마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스마트폰으로 주말에 갈 맛집 검색을 하는 그가 안쓰러웠고, 저러다 말겠지 했다. 신기하게도 두세 달 지나고서부터는 배고픔이 사라졌단다. 1년이 지나자 남편 바지 벨트 위로 ‘메롱’하고 고개를 내밀던 옆구리살이 사라졌다. 젊은 나이에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걱정했는데 모두 정상에 가까운 범위로 돌아왔다. 보기에도 늘씬해졌지만 움직일 때 가볍고 땀이 덜 나서 좋단다. 그는 평생 간헐적 식단을 지켜가겠다고 했다.
나는 건강프로그램 방송작가로 3년 동안 일하면서 정말 다양하고 희한한 식이요법을 공부하고 소개했다. ‘특정 음식을 꾸준히 먹어서 병에 도움을 받았다’라는 분들의 믿음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것만 먹고산 건 아니다. 오히려 일상 속에서 엄격하게 ‘먹지 않은 음식(예를 들어 가공식품)’이 더 많았고 운동이나 치료를 병행했다. 방송의 특성상 하나의 아이템에 포커스를 맞출 뿐, 그것을 전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방송에서도 그러한 주의 문구를 항상 달지만, 시청자들은 이미 ‘특정 음식’에 현혹된 상태라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이 간단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무엇을 꾸준히 계속 챙겨 먹어라’라는 식의 건강법을 믿지 않는다. 아토피로 오랫동안 힘겨운 시간을 보낸 내가 몸으로 겪으면서 깨달은 바이다. 특정 건강식품을 매일 챙겨 먹는 건 특히 아픈 사람들에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 몸에 좋다고 하니 아침마다 ‘녹즙’을 주문해 마셨고, 점심시간에는 배부르게 식사하고 ‘생과일주스’를 후식으로 즐겼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기가 돌기는커녕 기운이 빠지고 속이 더부룩했다. 알고 보니 소화기가 약한 사람이 생채소와 생과일을 즙 형태로 먹으면 위장에 좋지 않았다. 과일을 농축한 생과일주스에는 당 또한 지나치게 많이 들었다.
‘아토피는 면역력을 키워야 해’라고 많이들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알고 한참 동안 면역력을 키운다는 ‘홍삼 엑기스’를 꾸준히 먹은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아토피는 면역력이 약해서 생기는 병이 아니었다. 오히려 면역 과잉 반응에 가까운데 내 몸에 ‘적’이 들어왔다고 착각하고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헷갈리는 건강 상식이 한두 개가 아니다. 커피의 카페인이 몸에 해롭다는 결과만큼 커피의 폴리페놀이 노화를 예방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우유는 어떠한가. 뼈 건강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과 젖소를 키울 때 투여하는 호르몬제와 항생제가 인체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의사, 학자마다 주장이 다르고, 각 나라의 발달한 산업이나 문화에 따라 또 다르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게 현명할까? 내 생각은 이렇다. 매일 안 먹고 가끔 먹으면 된다.
평소에는 평범한 식사를 하되 그런 ‘특이한 음식’은 가끔만 먹으면 큰 지장이 없다. 밥과 면을 즐겨 먹는 한국인은 탄수화물 섭취 비중이 높기 마련이니 의식적으로 줄이고, 근육을 생성하는 단백질은 충분히 먹는다. 지방은 모두 나쁜 게 아니다. 생선이나 목초우(GMO 곡물 사료가 아닌 풀을 먹고 방목하여 키운 소)에서 나오는 ‘건강한 지방’을 일부러 찾아 먹는다. 나는 이 기본 원칙을 지킨 식단으로 중등도 아토피에서 해방됐다. 완치는 아니어도 병원이나 한의원에 가지 않고 스스로 관리할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그동안 별짓 다 했다. 홍삼, 녹즙, 맥주효모, 유산균, 야채수, 황태 달인 물, 지장수, 알칼리수를 매일 챙겨 먹을 바에 쌀밥에 김을 싸 먹는 게 낫다.
다채로운 반찬도, 특이한 건강식품도 굳이 챙겨 먹을 필요 없다. 하나를 먹더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게 더 낫다. 물론 풀을 먹고 자란 소, 무항생제 돼지와 닭고기, 유기농 채소를 먹으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같은 식재료를 두 배 가까이 값을 더 주고 사는 게 내키지 않아 나도 오래 망설였다. 그런데 뒤돌아 보면 4천 원짜리 국산콩 두부를 사는 건 사치라 느끼면서 밖에서 마시는 커피에는 아무렇지 않게 8천 원씩 결제하는 모순적인 소비를 했다. 조한경의 <환자 혁명>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집은 능력이 허락하는 최대 평수에서 빡빡하게 살고, 자동차도 분에 넘치는 배기량으로 허덕허덕 겨우 타면서, 몸에는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 음식을 집어넣으며 유기농 식품은 비싸다고 외면한다.
- 조한경, <환자 혁명> 중
그동안 건강에 좋다는 것들을 찾아 헤매고 더할 생각만 했지, 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먹지 말라는 것만 덜 먹어도 몸이 달라진다. 광고와 잘못된 정보에 혹해서 돈과 정성 들여서 먹을 생각만 했다. 아픈 사람들은 자꾸 귀가 얇아진다. 누군가 ‘야채수를 6개월 동안 먹고 아토피가 완치됐다던데’ 하는 소리를 하면 결제 버튼부터 눌렀던 나였다. 물론 운 좋게 그것이 나와 맞을 수도 있지만 잘못된 식습관을 고치는 게 먼저이다. 배고프지 않는데 먹는 것, 자연에서 나온 재료가 아닌 것, 지나치게 달거나 매운 음식, 튀긴 음식을 되도록 피하는 것이다.
그런데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이 너무 많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 먹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가 어느 순간 주체하지 못하게 폭식하게 되는 반동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가끔은 먹고 싶은 것을 허용하고 약간은 허전한 속을 유지하는 간헐적 단식이야말로 평생 실천 가능한 안정적인 건강법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