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독서예요.”라고 말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일주일에 한 번 책을 열어보면 취미로 볼 수 있을까? 적어도 주 3회 이상 읽어야 할까? 한 달에 한 권 이상 읽으면 취미일까?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를 것이다. 여유 시간이 생겼을 때 책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독서를 취미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의 취미는 독서가 맞다(물론 120가지 정도의 취미가 더 있다).
독서라는 독특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책을 볼까.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경우 ‘마음의 성장’, ‘재미’, ‘자기 계발’ 순으로 독서 목적으로 꼽았다.
설문조사에 응하느라 그렇지, 실제로 독서를 하면서 책의 목적을 의식하고 읽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난 그것이 생각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책을 읽는 목적에 따라 마음가짐은 물론 방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심심풀이용으로 보는 책이라면 자세는 보통 누워있고 양손은 가볍다. 메모할 펜이나 노트가 필요 없고, 온전히 다음 내용을 궁금해하며 읽기를 진행한다. 휴양지 썬베드, 집안의 소파나 침대 위에서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한다. 방해받지 않을 정도의 음악, 주전부리로 흥을 돋운다. 마치 야식을 시켜넷플릭스 보듯 재미와 쾌락을 추구하는 행위, 이를 ‘오락 독서(무목적 독서)’라고 부르자.
반면, 오락이 아닌 ‘목적 독서’는 자세부터 다르다. 보통 책상 앞에서 시작한다. 공부(자기 계발, 지적 탐구)나 서평을 쓰기 위한 책 읽기다. 특히 서평이 목적이라면 읽는 내내 머릿속이 바쁘다. 끊임없이 자문한다.
‘저자의 주장은 타당한가?’, ‘나는 동의하는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또 다른 예시를 내 주변에서 찾자면?’, ‘비슷한 메시지를 다룬 책이 있었는데?’, ‘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는데?’... 내용을 곱씹고 분석하며 읽는다. 비판할 부분도 찾아본다. ‘저자는느낌을 사실인 양 주장하고 있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아닌가?’, ‘사례는 없고 추상적이라 와닿지 않네’.
덩달아 손도 바빠진다. 밑줄을 긋고, 메모하고, 책 귀퉁이를 접는다. 펜이 없으면 스마트폰으로 중요한 페이지를 사진 찍어서 스캔해 놓고, 검색창을 열어 잘 모르는 배경지식은 찾아서 읽어본다.
‘오락 독서’와 ‘목적 독서’를 구분하는 일은 책을 눈으로만 읽을 것이냐, 손으로도 읽을 것이냐를 결정하는 일인 셈이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오락용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가 공부용으로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목적이 생긴 것이다. 생각지 못하게 책이 유용하거나 유려한 문장이 많이 나올 때, 나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고 자세를 고쳐 잡는다. 반대로 목적 독서로 시작했는데 재미에 푹 빠지는 일은 많다. 앎은 원래 재밌는 거다.
오락 독서는 완독의 부담이 적다. 읽다가 기대에 못 미치거나 지루하면 덮어도 그만이다. 반면 서평을 써야 하는 독서는 지루하더라도 끝까지 읽어야 한다. 책 전체를 다 읽지 않고 쓰는 서평은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어 신뢰하기 힘들다.
서평의 목적도 세분화할 수 있다. 독서 모임을 하기 위해 쓰는 서평이 있고, 불특정 다수에게 책을 소개하거나 추천하기 위한 서평이 있다. 전자는 나의 감상과 주관적인 생각도 들어가기 때문에 독후감에 가깝고, 후자는 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자 애쓴다.
자기 계발용 독서의 목적은 크게 두 종류다. 내가 사는 세계에 잘 적응하기 위한 목적, 그리고적응하지 않기 위한 목적이 있다.
적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읽는 책은 가령,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으로 대표되는 관계에 필요한 기술(심리, 화술, 처세)을 알려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배를 곯지 않으려고 김승호의 《돈의 속성》과 같은 책도 읽는다. 내가 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이를테면 작법서나 독서법 관련 책, 말을 잘하고 싶어서 아나운서가 쓴 말하기 책을 읽기도 했다.
그렇다면, 적응하지 않기 위해서 읽는 책은 무엇일까. 어쩌면 이 목적이 더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나로 살아가려면 꼭 필요한 독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병권의《사람을 목격한 사람》처럼 장애인, 이주민, 불법체류자 등 차별을 받는 소수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읽는다. 내가 모르고 있던(혹은 눈감았던) 소외된 사람들의 삶과 투쟁을 다루는 책. 시를 포함한 몇몇문학작품도 그렇다. 주로 연약한 것, 상처받은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이런 책을 읽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내가 잘 적응해서 살고자 했던, 사뭇 공정해 보이는 이 세계가 사실은 몹시 비뚤어져 있으며 나의 평화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책은 재미있지 않고 그다지 당기지도 않기 때문에 ‘오락 독서’가 될 수 없어 자기 계발로 분류한다. 우리말샘 국어사전에서는 ‘자기 계발’을 이렇게 정의한다. ‘잠재하는 자기의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줌’. 불편함을 감수하며 부족한 공감능력과 아둔함을 일깨우고 비판적인 시각을 기르는 독서는 자기 계발 목적이 맞다.
오락용이든, 공부를 위한 목적이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친구다. 자극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조용히 사색하는 틈을 마련하는 사람은 보기 드무니 가까이 지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