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나눈 이야기 - 닐 도날드 월시
내 취미 중 하나는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이다. 수많은 영상들 중에서도 브이로그를 좋아한다.
브이로그는 누군가의 일상을 담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인데도 유튜버들이 만들어 올리는 소소한 일상이 담긴 브이로그 영상은 꽤 흥미롭다.
가장 좋아하는 채널은 2개인데 '갈릭'님의 채널과 시인 문보영이 운영하는 채널 '어느 시인a poet's vlog'이다. 시인이 운영하는 채널은 주로 도서관에 가거나 글 쓰는 영상이 대부분인데도 정말 재미있다. 전부 나의 주된 관심분야라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다. 갈릭님은 한 시골마을의 전원주택에 혼자 살면서, 카페를 운영하는 엄마를 도와 이것저것 소소한 일을 하며 지내는 영상을 올린다.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협찬을 받거나 본인이 써보고 좋다고 생각되는 화장품의 추천영상을 올리기도 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추천하기도 한다. 그녀는 반려동물로 개와 앵무새를 데리고 산다. 특히 앵무새는 운명같이 우연히 만나게 됐다고 했다.
책 <신과 나눈 이야기>는 여기서 처음 알게됐다. 명상과 영성 등에 관심이 많은 그녀가 추천한 책들 중 한 권이었는데 처음에 볼 때는 그냥 지나쳤다. 이후 신문기사들을 읽다가 우연히 이 책을 또 접하게 됐는데, '아 그때 갈릭님이 추천했던 책이었지'하고 떠올리고는 도서관에 가서 바로 빌려봤다.
제목에 '신'이 들어가서 종교와 관련된 내용이 한 줄이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저자가 말하는 신은 종교 차원의 신이 아니었다. 누구나 마음 속에 하나 쯤은 두고 급할 때 찾는 이른바 자기검열의 형상을 신으로 표현한 듯했다.
책의 핵심내용은 결국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미라클모닝>과 <시크릿>과도 결이 같다고 본다.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건 세상의 중심엔 너가 있어!하고 외치는 듯 하다. 저자가 말하는 자유의 개념이 이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는 '기대없이, 특정한 결과들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이고 '그것이 바로 신성'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생각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몇 번이고 강조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며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그저 '다시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간단했다.
이는 반년 전 쯤부터 내가 의식해서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몇 차례 이직 끝에 지금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결국 사회생활은 거기서 거기라는 점을 깨달았다. 어디를가도 일보다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훨씬 크다는 점, 처음부터 네네 하기만 했다가는 일만 잘하는 호구된다는 점, 10번 잘하다가 1번 삐끗했을 때가 10번 못하다가 1번 잘하는 것보다 훨씬 욕 먹는다는 점, 인사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점 등을 말이다. 이직하고나서 그 해 한 번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못해 어느 주말 집에서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지는 미주 신경성 실신을 겪기도 했다. 그 다음 해에는 하혈을 겪었다. 이렇게 심신의 고통을 겪고 나서 스스로 내린 처방은 바로 '아무생각하지 말기', '두 번 이상 생각하지 않기'다.
누군가는 그랬다. 인생에 있어서 채워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덜어내는 것이라고. 오죽하면 '무소유'나 '버림의 미학',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회사와 관련된, 혹은 직장이나 업무와 관련된 안 좋은 생각이 들려고 하면 무조건 생각을 비우는 연습을 했다. 차라리 오늘 저녁엔 치킨을 먹을까? 먹는다면 무슨 치킨을 먹을까?하고 생각할 지언정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잠식하지 않게 뒀다는 얘기다.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걱정이라는 게 얼마나 몸에 해로운 지도 구구절절 와닿게 설명해 놓았는데 저자는 이를두고 '마음의 활동 중에서 미움 다음으로 나쁜 것'이라며 '거의 최악이라 해도 될 만큼 자신을 심하게 파멸시키는 형태'라고 했다.
30대로 접어든 이후에는 왠지 모르게 주변에 아프고 탈나는 사람들이 제법 생기는 것을 지켜보고있다. 나 조차도 건강을 과신할 수 없는 나이가 됐는데 말이다. 1년에 한 번 직장인 건강검진을 받으러 갈 때 마다 한 없이 작아지는 나의 육신이여. 어떤 후배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뇌 혈관쪽 문제가 생겼다고 하고 또 어느 선배는 피부 트러블이 심하게 올라왔다. 모두가 스트레스를 기반으로 한 질환들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건 현대사회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이를 어떻게든 풀어내야 한다. 빼내야 한다.
또 다른 필요악의 감정은 '미움'이다. 저자는 '미움이 가장 위험스런 정신상태'라고 표현했는데 '그것은 몸에 독을 퍼뜨려 사실상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빚어낸다'며 '두려움은 모든 것에 맞서는 대립물'이라고 말했다.
이런 백해무익한 감정들을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몇 주고 몇 달이고 심지어는 몇 년이고 지니는' 주제에, '자신이 왜 병들었는지 의아해한다'는 이 문장을 읽다가 난 잠시 멈추었다. 너무 와닿았기 때문에 곱씹어보기 위해서.
저자는 긍정적인 삶의 방식 중 하나로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과 사고방식 자체를 역설한다.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 상대방에게 몰두하는 것이야 말로 관계를 실패로 돌아가게 만드는 이유'라고 설명하다가, 결국 명언까지 날린다. 연인사이에서 꼭 필요한 얘기다.
마침내 상대방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걸 믿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그들은 이내 그 사랑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상대방의 사랑을 붙들어두기 위해 자신의 행동방식을 바꾸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문자 그대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상실한다. 그들은 자신을 찾고자 관계를 맺었지만, 오히려 자신을 잃고 만다. 관계 속에서의 이같은 자아상실이야말로 남녀관계에서 생기는 괴로움의 주요한 원인이다.
그리고 마침내 저자가 내어놓은 결론.
두 사람은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더 크리라는 기대를 품고 함께 짝을 이루지만, 오히려 더 못하다는 사실만 깨닫게 된다. 그들은 독신일 때보다 더 못하다고 느낀다.
항상 관계에 있어서 실패한다거나 속상했던 순간의 이유가 저것이 아니었나 싶다. 행복하기 위해 시작했던 연애의 끝이 불행이었던 이유도.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집착'. 그것이 부담으로 바뀌어 결국 모두를 끌어내린다.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갈 때는 더할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던 이들을.
앞서 언급했지만 무언가를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직접 손 안에 쥐어봤더니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 깨달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소위 영적인 길을 걷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들은 '모든 세속적인 열정, 모든 인간적인 욕구들을 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이 해온 건 그것이 환상임을 깨닫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열정들에서 비켜서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결국 내가 택한 방식도 비슷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두 번 생각하며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 저자가 두 번 세 번 강조한 것과도 일치한다.
그냥 네 생각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