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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연 Sep 12. 2022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개인주의자 선언 - 문유석





  혹자는 보다 많은 책을 읽기위해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은 읽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문유석 판사(작가)의 글은 달랐다. 기꺼이 그의 다른 책을 찾아 읽고 싶었다.


  그의 작품을 접하게된 건 책 <쾌락독서>였다. 지금 내가 기록하는 <신新독서록>과도 비슷한 맥락으로, 책 소개를 하는 내용인데 그보다는 책을 둘러싼 본인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또 그가 직접 쓰고 드라마로도 방영됐던 법정물 <미스 함무라비>도 읽었다. 아 이 책을 제일 먼저 읽었다.


  소설이 재미있으면 그 작가의 생각이나 사상, 성향 등이 궁금해진다. 그렇게해서 찾다가 발견한 책이 <쾌락독서>와 <판사유감>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개인주의자 선언> 이었다. (판사유감은 아직도 읽어보지 못했다)


  책 제목에서도 느껴지지만 작가는 '개인주의자'에 대해 호의적이다. 심지어 본인 스스로를 그렇게 일컫는다.


  덕분에 나도 이 단어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바뀌었지만 사실 언젠가 나에게 상처를 줬던 단어이기도 하다. 그 때 까지만해도 뜻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긴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나도 작가처럼 스스로를 개인주의자라고 떠벌릴 정도다. 이기주의자 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지만 스스로를 가장 중심에 두는 인간.


  한 때 나를 속상하게 했다는 그 사건은 역시 회사에서의 에피소드다. 나를 거쳐간 상사 중 한 명이 나를 일컬어 '개인주의자'라고 했다는 얘길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그것도 심지어 다른 후배와의 술자리에서 그 후배에게 나를 그렇게 일컬었다고 해서 더 충격이었다.


  술에 취해 "A라는 친구는 어떻고, B라는 친구는 어떻고…"라며 한 명 씩 평가하다가 나를 말할 차례가 되니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훗날 이것이 돌고돌아 다시 나의 귀로 들어오게 됐는데 당시 난 그 상사에게 매우 큰 상처를 받았고 동시에 실망했다. 늘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사람인 줄 알았고 소위 유능하다고 회사 내 평이 자자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선배를 일컬으면서는 "걔는 나의 아바타야"라고 말했다고 했다.

아바타라고 일컬어진 그 선배는 그 상사에게 늘 최선을 다하던 사람이었다. 십 년 넘도록 함께 일해왔으면서도 늘 예의를 갖추고 깍듯하게 그 상사를 대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배워 온 나로서는 큰 분노심이 일었다.


  하지만 고전처럼 내려오는 얘기가 있지 않은가. 

"굳이 복수하지 말라. 그저 강가에 앉아 상대의 시체가 떠내려오는 것을 기다려라."


  술이 그렇게 만든건지 아니면 그런 성향을 잘 숨기고 살다가 드러나 버린건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 상사는 술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해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지금은 내 부서와 떨어져 있는 곳에 전보돼갔다.

 

  

  '미움은 가장 위험스런 정신상태'임과 동시에 '몸에 독을 퍼뜨려 사실상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빚어내'므로 언젠가부터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해지기로 마음먹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한 때 행복에 대해 집착하며 그것이 무엇인지 파보려고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오랜 생각 끝에 스스로 도달한 결론은, '행복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굳이 캐 묻거나 확인하려 하지않고 그것을 오롯하게 온전하게 느끼는 것. 혹은 따져묻지 않을 정도로 다른 어떤 상황에 몰입한 순간. 그것이 행복한 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자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건지, 책에 타인의 입을 빌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얘길 남겨두었다. 하지만 실증적 연구결과 인간이 행복함을 가장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바로 인간이라는 것과 함께. 

'인간은 뼛속까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강조하며 역설했다.



  TV를 켜면 MZ세대니 뭐니 하며 세대를 가르고, 깻잎논쟁이니 뭐니 하며 편을 가른다. MBTI로 성향을 가르고(나도 이 성격테스트를 좋아하지만), 새롭게 만든 용어들을 가지고 콘텐츠 이용자를 가른다. 모든 것들이 갈리고 가르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게 하나 있다면 솔직함의 중요성이다.


  가식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데 똑똑한 요즘 친구들은 그것을 너무나도 빨리 캐치해서 그런지 (지나친)솔직함으로 중무장했다. 연예인들도 그렇다. 이를테면 요즘은 립싱크는 커녕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통해 가수들의 노래 혹은 춤 실력 등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고 오히려 그들의 일상 일거수 일투족을 다 보여줘야 소위 찐팬을 모을 수 있다.(팬들 사이에선 이를 두고 입덕이라고 한다)

  BTS나 블랙핑크, 더 앞선 세대 가수로는 소녀시대 등이 이런 리얼리즘을 통해 일상을 공개하면서 거대한 팬 무리를 이끌었고 그들이 보여준 솔직함은 그렇게 유행이 됐다. 내가 즐겨보는 유튜버들의 소소한 일상이 담긴 브이로그도 같은 맥락이다.


  회사에서는 소위 요즘세대 친구들이 9시에 칼출근해서 6시에 칼퇴근을 법칙처럼 하고있고 딱 주어진 일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한다. 나또한 그렇다. 

나처럼 낀 세대는 신입과 기성세대 그 사이쯤 어딘가에서 나름의 생존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예를들면 칼퇴는 하되 업무시간에 내 것 외에 필요한 업무를 자처해서 한다든가 몸이 좋지 않은 동료를 위해 기꺼이 한 번 더 당직을 선다거나 하는 것. 이런 것들은 솔직함의 반대라기 보다는 기본적인 배려인 것이다.


  솔직함의 시대 속에 살면서 책을 읽어 나름의 생각스펙트럼을 넓힐 수록 무섭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가장 완벽한 거짓말은 진실 속에 숨어있는 단 하나의 거짓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럼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것이며, 내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 마저도 진짜가 맞는지 의심스럽기 시작한다.

그런 흐름을 잘 꿰고 심지어 이용하는 자가 권력자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거짓을 알면서도 무조건 그저 품을 줄 아는 자가 리더가 되는 것일까. 무엇이 인생에 있어서의 정답인지도 모르는 채로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그저 눈 앞에 주어진 인생을 산다. 

  그 때 그 때 세우는 우선순위를 바꿔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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