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쓰는 책과 관련된 이야기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독서기록장을 쓰라고해서 부지런히 썼던 기억이 있다.
책 한 권을 기록할 때 마다 선생님은 스티커를 하나씩 나눠 줬는데 그렇게 받은 스티커들로 커다란 포도나무 열매를 완성해 갔다. 한 해의 끝에 가장 많은 스티커를 붙인 학생은 '독서왕'이 됐다.
난 그 독서왕이 되지는 못했다. 타고난 반골기질 때문인지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20대를 지나던 나는 뒤늦은 늦깎이의 질풍노도 시기를 겪었는데 그 때 조용히 그리고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준 건 돌이켜보면 책 뿐이었다. 책 <우리는 책 앞에서 가장 솔직해진다>의 저자 안드레아 그렉의 표현을 잠시 빌려 쓰자면 '텍스트가 나의 안전장치가 되어주었'고, 덕분에 '책에 잠겼다가 다시 온전한 사람이 되어 책 밖으로 나오곤'했다.
시도때도 없이 그리고 수없이 쏟아지는 자극적인 콘텐츠의 파도 속에서 아직도 책이라는 돛단배를 부여잡고 꾸역꾸역 앞으로 헤엄쳐 나가려는 이유다.
때로는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나의 속 사정이 어쩌다 펼친 책 속에 지금은 영면해있는 작가가 기록해 둔 그 한 줄로 큰 위로를 받았다.
누군가 시켜서 쓰는 게 아닌, 스스로 읽고 기록하며 다시 한 번 곱씹어보는 새로운 신(新)독서록을 기록한다. 과거의 나도 아니고 미래의 나도 아닌 '지금'의 내가 이런 책들을 읽었고 또 저런 생각들을 했구나하고 훗날 복기해 보기 위함이다. 또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본인만의 독서 다이어리를 다시 쓰고 싶어지는 다짐을 할 수도 있겠다.
유년시절을 지내고 사회생활의 언저리에서 곱씹어보는 독서인 셈이다. 삶은 계속되고 또 계속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