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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Dec 31. 2020

춤에 미치다

춤에 미치다     


당시 나는 일하던 학원에서 원장님과의 갈등으로 일을 그만두고 공백기를 갖고 있는 중이었다. 아침에는 집에서 쉬엄쉬엄 영어 공부를 하고 유투브를 보며 좋아하는 춤 연습을 했다. 오후에는 집 근처 백화점과 마트를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기를 약 두 달. 이제 쉴 만큼 쉬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 전 마지막 한 달은 정말 해보고 싶던 일을 하자. 

춤이었다. 

여러 군데를 검색해서 내게 딱 맞는 학원을 찾았다. 한 달 동안 삼십 여 만원의 수업료를 내면 하루 여덟 개의 수업 중 몸이 허락하는 만큼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처음 등록하고 댄스홀에 들어갔다. 에너지가 흘러 넘쳤다. 내 안에서도, 댄스홀에서도. 

거울이 겨우 보일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약 오, 육십 명 정도로 보였다. 그 곳은 주로 춤을 전공하는 대학생들과 춤으로 대학에 진학하려는 중,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선생님은 기가 막히게 맥을 짚으면서 가르쳤고 아이들도 잘 따라했다. 입시 학원으로 치자면 한 반에 백 명씩 들어가는 대성학원 같은 곳이었다. 스타 강사가 있는 곳, 그리고 왜 스타 강사인지를 저절로 알게 되는 곳.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두 번째 수업에서는 그동안 유투브를 보며 그토록 집에서 연습하던 바로 그 장르, 트월킹을 가르치고 있었다. 트월킹이란 상체를 숙이고 엉덩이를 흔들며 추는 춤으로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장르이다. 순간, 전율이 흘렀다. 동시성의 원리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날 밤은 설레어서 잠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저 미치도록 좋았던 날은 첫 날에 그쳤다. 난 삼십대 후반. 일단 일월임에도 빵빵하게 틀어대는 에어컨 탓에 너무 추웠다. 아이들은 거의 헐벗고 춤을 추면서도 “덥다, 더워”를 연발했지만 난 찬 바닥에서 뒹굴며 한 시간 내내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게 고역이었다. 매일 ‘에어컨아 고장 나라.’를 맘속으로 외쳤다.  

더군다나 난 매일 세 시간씩 수업을 들었기에 세 시간 동안 추운 바람에 노출되고 있었다. 결국 첫 주 금요일에 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주말에는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또 하나, 난 춤을 좋아만할 뿐, 잘 추지는 못한다는 걸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스물  다섯 때 ‘백댄서 양성 아카데미’에서 구 개월 간 힙합, 걸스힙합, 발레, 재즈 등을 배우며 하루에 여섯 시간씩 춤 춘 적이 있다. 다른 친구들은 취업에 목숨을 걸 때였다. 하지만 나는 그 때 춤을 본격적으로 배우지 않으면 죽기 전까지 후회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 곳에서 각종 춤을 배우면서 내 실력이 백댄서가 되기에는 많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할 만큼 해보고 나서 포기하니 후회도 남지 않았다. 지금 그때의 그 느낌을 다시 한 번 맛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안무를 한 번 보고 몇 번 해보면 바로 숙지가 되던데 난 아니었다. 이 곳의 독특한 점이라면, 수업이 끝날 즈음에 몇 십 명의 학생들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차례로 발표를 시킨다는 거다. 학생이 육십 명이라면 대략 다섯 개쯤으로 조를 나누어 차례로 춤을 추고 그 조가 아닌 학생들은 자리에 앉아 그들의 춤을 감상하면서 박수를 치기도, 환호하기도 한다. 

그 시간이 지옥이었다. 난 안무 숙지도 안 된 상태인데 그걸 다른 이들에게 보여줘야만 하다니! 나의 이 끔찍한 춤을! 이 흐느적거리는 춤을! 

그래도 그 시간을 피하지 않았다. 나이에서 나오는 짬이었을까! 거지같으면 거지같은 대로 그냥 췄다. 안무를 모르면 아는 만큼 췄고 나머지는 다른 학생들을 보며 따라 췄다. 잘 추는 아이들은 자기가 추는 춤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자기 핸드폰을 다른 조 학생에게 주면서 찍어달라고 부탁하곤 했지만 난 그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문어처럼 흐느적거리는 내 춤은 찍어놓아 보았자 흑 역사였고 내 거지같은 춤을 찍어달라고 부탁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으니까. 그래도 췄다. 빼놓지 않고. 

첫 주 주말에 독감에 걸렸어도 다음 주 월요일, 마스크를 쓰고 목도리를 하고 패딩 점퍼를 입고 수업에 들어갔다. 패딩 점퍼를 입고 수업 듣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다들 반팔이나 얇은 긴 팔 차림이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다른 사람 의식할 처지도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무척 의식이 되었다. 그래서 되도록 눈에 안 뜨이려고 위아래로 검은 색 티와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검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눈썰미 좋은 선생님들은 내가 가장 나이가 많고 몸 상태가 안 좋은 걸 알았던 것 같다. 어떤 선생님은 내가 지나가면 “안녕하세요.” 하면서 먼저 인사를 해주기도 했다. 선생님들도 기껏해야 이십 대 중반 정도였다. 하지만 그 곳은 나이가 중요한 곳이 아니었다. 그저 몸으로 부딪히는 곳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날 배운 춤을 집에서 연습해가 다음 수업 때 멋지게 거울 앞에서 추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오후 한 시쯤 집을 나서 서울로 올라가 수업을 듣고 내려오면 밤 열한 시가 넘었다. 기절하듯 잠을 자고 다음 날 오전에는 기진맥진해 누워있다 다시 한 시에 집을 나섰다.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점차 감기가 나아갔고 점퍼를 벗었으며 못 춰도 무식하게 버텼다. 그러면서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눈에 익어갔다. 그리고 아주 가끔 나도 칭찬을 받기도 했다. 몸의 부위를 제각기 움직이는 아이솔레이션(Isolation)이라는 기본기 동작을 할 때였다. 무안하면서도 사실은 가슴 뛰게 기분이 좋았다. 요정 같은 선생님에게서 칭찬 받는 다는, 그리고 선생님이 나의 존재를 알아봐 준다는 사실에 대해서. 점차 거울 속 내 모습에도, 안무에도 익숙해졌다.  

섹시 컨셉 수업이 내겐 특히 잘 맞았다. 템포가 약간 느리고 안무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수업에서는 선생님 동작을 따라 할 만 했고 그리 버벅대지 않았다. 수업 끝 무렵 아이들과 함께 거울 앞에서 춤을 추어도 거울 속 내 모습은 그런 대로 봐 줄만했다. 물론 여전히 거울 속 내 춤이 끔찍한 수업도 많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곳은 수업에서 안무가 하나 끝날 때마다 유투브에 올릴 영상을 찍는다. 영상을 찍기 전에 선생님은 수십 명의 학생들 중 잘 추는 사람들을 몇 뽑는다. 뽑힌 학생들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런데 어느 선생님은 학생들을 몇 그룹으로 만들어 다 영상에 담기게끔 하기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섹시 컨셉의 선생님은 모든 학생들을 영상에 담는 걸 선호했다. 아마도 아이들에게 유투브에 본인의 얼굴과 춤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 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난 당시 그 때 배우던 안무는 좀 자신 있었고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비디오 찍기 전 날 아침, 집에서 몇 시간을 연습해 갔다. 그리고 평소의 검은 색이 아닌 회색 옷을 입고 학원에 갔다. 선생님이 밝은 색 옷을 입고 오라고 했고 내 딴에는 밝은 컬러를 고른답시고 고른 게 회색이었다. 

드디어 그 수업 시간이 왔다.  

“안무 처음부터 끝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홀 가운데에 남고 그렇지 않으면 홀 가장 자리로 자리를 옮겨 주세요.” 선생님이 말했다. 


어떻게 할까. 남아 있을까, 옮겨 갈까. 

나도 해 봤으면, 영상에 한 번 담겨 봤으며, 영상 찍고 한 달을 마무리 했으면 하는 마음이 용솟음 쳤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내 발걸음은 홀 가장자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건 수업 끝에 찍는 영상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때는 홀 구석에서 거울만 보고 춤을 춰도 됐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눈앞에서 카메라맨이 캠코더를 들고 핸드헬드 기법으로 풀 샷으로 찍다가 가까이 들어와 클로즈업을 하는 등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찍는다. 그 가운데에서 자신감 있는 표정과 포즈를 취하며 춤을 춰야 한다.    

자신감 있는 표정과 포즈는 고사하고 ‘틀리면 어쩌지...... 개망신인데.’ 하는 걱정이 들었다. 만약 틀리면 나 때문에 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집에서는 안 틀리고 완벽하게 안무 연습을 끝냈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서는 막상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자신이 없었다.  

홀 가장자리에 앉아 사람들은 홀 중앙에서 영상 찍는 과정을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역시나 그들은 카리스마 있는 표정으로 무대를 제압했다. 옷도 다들 세련되게 입고 있었다. ‘안 나가길 잘했어.’ 라고 애써 생각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영상을 찍은 후에 새로운 안무를 배우지 않고 홀에서 나와 버렸다. 어차피 나 하나 사라졌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었다. 지하철역으로 바로 가지 않고 카페에 들렀다.      

캐모마일 티 주세요.  

그토록 연습해 놓고 자신감이 없어서 막상 찍지 못한 나 자신이 미웠다. 지난 번 영상 찍는 날, 온통 여자뿐인 그 안에서 완전 뚱뚱한 남자 한 명이 자신감 있게 춤 췄던 게 기억났다. 사람들이 그를 향해 얼마나 환호했는지도. 난 왜 그런 자신감이 없을까, 스스로를 자책했다. 

차는 따듯했다.  

나에게 캐모마일 허브티는 ‘안정’을 의미한다. 언제나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을 때 캐모마일 티를 마신다. 캐모마일 티를 마시고 있자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 나는 그 누구의 위로가 아닌 스스로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했다. 나만이 지금까지의 내 노력을 알고 있었으므로.   


용기를 내 학원에 등록한 나. 

잘 추지도 못하면서 매번 수업 끝에 구석진 곳에서라도 춤추던 나.

독감에 걸렸어도 학원 한 번 빠지지 않은 나. 

아무에게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안무를 열심히 외운 나. 

이렇게 여기까지 온 나. 

충분히 잘했어. 

서른 넘어서 누가 그렇게 당당하게 애들하고 영상 찍을 수 있겠어. 

그 누구라도 너처럼 어려워했을 거야. 

그 동안 고생 많았어.      

따듯한 차를 마시고 집에 가려고 일어서자 내 마음의 키가 훌쩍 커진 듯 느껴졌다. 참으로 값진 한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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