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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Feb 01. 2021

약은 나의 힘!

약은 나의 힘!     


작년부터 지금까지 일 년 간 신경 정신과에 다니고 있다.

“기분이 자주 이유 없이 다운되고 남편이 별 의도 없이 한 말도 내 식으로 왜곡하고 받아들여서 싸우는 경우가 많아요. 집 현관문도 잘 잠겼나 강박 증세처럼 확인을 자주 해야 하고 작은 소음에도 참을 수가 없어요.”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평가하는 바로는 무척 활발하고 좋은데 객관적인 지표로는 우울증이 있어요. 적절히 자기감정을 표현하지 못할 경우에 이렇게 내가 보는 나와 객관적인 지표 간에 간격이 크게 나와요. 불안이 상당히 높은 상태에요.”

그럴 경우 몸에 장애가 올 수도 있다고 의사가 보여준 도표에 쓰여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당시 내가 앓고 있던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그림을 보여주었다. 한 사람이 뱀을 만났을 때, 그걸 피하기까지 머릿속의 회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그림이었다. 사람은 뱀을 보고 이게 불안하고 위험한 것이다, 라는 판단을 한 후에 도망가거나 싸우거나를 결정하게 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뱀을 만나는 일과 같은 치명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아주 사소한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불안 회로가 갑작스럽게 작용해서 무언가를 판단할 새도 없이 불안 회로가 돌아간다고 했다. 쉽게 말해 불안으로 가는 회로가 남들보다 아주 넓고 강한 것이다.

선생님은 내가 ‘불안 장애’와 ‘우울증’이 합쳐져 있는 상태라고 말씀하셨다. 불안 장애, 다양한 형태의 비정상적인 불안이나 공포로 인해 일상생활에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 질환. 우울증, 흔한 정신질환으로 마음의 감기라고도 불리며 심한 경우 자살이라는 심각한 결과에 이를 수 있는 뇌질환.  

그 날부터 난 아침저녁으로 꼬박꼬박 약을 먹으면서 일주일에 한 번 의사선생님께 상담을 받았다. 일주일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난 그 주에 있었던 일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을 이야기했고 의사 선생님은 컴퓨터에다가 뭔가를 빠르게 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을 먹고 나서 갑자기 화나는 게 줄어든 거 같아요. 지난 주말에 남편하고 서울에 놀러갔는데 피곤하다고 밖에 안 나가고 도착하자마자 잠을 자는 거예요. 예전 같으면 벌컥 화가 올라왔을 텐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화가 안 나더라고요. 남편이 깰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밖으로 나가서 야경을 구경하고 왔어요. 너무 좋았어요.”

예전에는 남편이 내 ‘바람’대로 애정표현을 해주기를 원할 때 따라주지 않을 때마다 욱하고 화가 올라왔다. 예를 들어 길을 걸을 때 남편이 내 손을 잡아주기를 간절히 원하는데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손잡고 다니는 다른 커플들을 보면서 화를 내거나 삐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먼저 남편 손을 잡거나 “손잡아 줘.”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생기고 있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얼마간은 잠자리가 뒤숭숭해서 죽는 줄 알았다. 엄마, 아빠, 동생이 꿈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면서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새벽에 ‘헉’하고 깨면 한 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그 과정이 한 달 여간 되풀이 되었다. 정말 신기한 건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부모님에 대해 갖고 있던 원망이 저절로 사그라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아빠가 내 대학 진학에 개입해서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에 가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아주 큰 원망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 때 내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자책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일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부모님은 누구보다 나를 가장 사랑해주시는 분들, 이란 생각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마음에 응어리가 풀어지니 지금은 부모님과 매일 통화를 하며 허물없이 지내고 있다. 그리고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긍정적이 되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어 글도 열심히 쓰고 청소를 비롯한 집안일도 열심히 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뭔가를 한 건 아니다. 난 그저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은 것뿐이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왜 예전에 학원을 일 년 이상 근무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문제를 일으켜서 도망치듯 퇴사를 해 왔던 건지. 의사 선생님은 내가 너무 많이 참으면서 살았다고 했다. 문제는 내 머릿속에서 사실과는 전혀 다른 해석, 즉 망상을 하며 참고 살았다는 것이다. “물어보고 싶으면 물어보세요.”, “말하고 싶으면 말하세요.” 이게 선생님이 내게 해 준 조언이었다. “표현하세요.” 내가 잦은 해고를 당한 이유도 마음에 있는 걸 표현하지 못하고 뚱해 있다가 갑자기 폭발하는 못난 습관 때문이었다. 지금은 내 인생 처음으로 한 학원에서 일 년 이상 근무하고 있다.  

약을 먹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긍정적이 되니 이제는 제법 사람들과 능숙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하는 일은 생각도 못했는데 이제는 필요하면 말도 잘 건다. 상점을 가더라도 점원과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웃으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약으로 인해 활기가 생기자 아파트 주민으로 구성된 ‘댄스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나를 포함해 세 명의 주부들이 전문 댄스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한 달간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두 명은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다며 중도에 포기해 버리고 댄스 동아리도 공중 분해되었다. 중요한 건 실패했다는 데 있지 않았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활기 있게 살기 시작했다는 데 그 중요성이 있었다.

지금 나는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나 자신으로 다시 돌아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시절, 몸도 마음도 건강했던 나로 말이다. 친구들과 잘 지내면서도 나를 자연스럽게 잘 표현해내던 그 때로.

이제는 남편이 오히려 놀랄 정도이다. “예전에는 자기한테 농담도 못할 정도였는데. 농담하면 정색하고 째려봐서. 이제 바뀐 당신이 너무 좋아.”

지금은 남편이 “자기 점차 ‘조석’만화 ‘마음의 소리’에 나오는 ‘애봉이’ 닮아가고 있어.” 하고 말해도 아무렇지 않다.

어쩌면 나는 아주 청소년기부터 불안 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의 일로 집안의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살면서 마음속 응어리가 생긴데다가 대학 진학도 마음대로 못했던 바람에 자신감이 하락하고 우울증이 심화되었던 것 같다.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에 가족들과 속 이야기를 전혀 나누지 않은 채 나만의 성을 쌓았고 현실을 도피하려 말도 안 되는 ‘이상형 리스트’를 만들고 결혼 후에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았나 싶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정신과의 도움을 받도록 하라. 정신과 약은 먹음으로서 일상생활을 편안하게 영위하도록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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